깎아놓은 듯한 인형 같은 외모와 끼워 맞춘 듯한 노래와 춤, K-POP의 열풍 뒤에는 천편일률적으로 기계로 찍어내는 듯한 댄스 아이돌의 획일성이라는 한계가 자리한다.

외모 보다는 실력을 외치고 회사의 규모가 아닌 가수의 근성을 강조하며 K-POP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한 케이윌과 씨스타, 보이프렌드 등의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이하 스타쉽)를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올해요. 학점으로 따지면 A 정도로 봐요. 케이윌이 건재하고 씨스타가 큰 일을 해줬죠. 보이프렌드도 해외에서 결과물을 내고 있어요. 쉽지 않은 주변 상황에도 회사 구성원이 모두 열심히 해 준 덕분이죠. 내년에는 A+가 될 겁니다."

무뚝뚝한 성격과 적은 말수에도 눈가에 슬쩍 잡히는 주름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대신하는 이 남자. 스타쉽의 수장 김시대 대표는 올 한 해 성과를 묻자 "자신은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물론 지나친 겸손이다. 1994년 쿨의 매니저로 시장에 뛰어들어 단 하루도 휴가를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주변 동료들은 알고 있다. 입이 아닌 발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사상가 보다 행동가 기질이 강하다. 불철주야 현장을 돌며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여느 기획사 보다 강도가 높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타쉽의 트레이닝 과정이 그를 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김시대 대표는 인터뷰 중 실력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회사 내부에도 실력이 우선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짙게 깔려있다고 했다. 연습생은 정해진 연습 시간을 넘기는 것이 보통이고 데뷔 뒤에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선배들의 모습은 후배들에게 침묵의 가르침이 됐다. 누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자신을 담금질하는 데 모든 걸 걸었다.

"5년 전에 지금 회사를 설립할 때 직원이 3명이었어요. 맨땅에 헤딩한다는 기분이었죠. 후발 주자에게 다른 건 없어요. 앞선 이들을 따라잡으려면 그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해요. 가수나 연습생에게 그리고 직원들에게 3년만 죽어라 해보자 부탁했어요. 생각해 보면 그게 우리의 경쟁력이었죠."

스타쉽은 올해 순항을 거듭했다. 케이윌은 올해 발표한 두 장의 앨범을 모두 차트 1위에 올렸다. 씨스타는 걸그룹 서열 판도를 뒤흔들며 정상으로 발돋움했다. 보이프렌드는 부침이 심했던 일본 시장에 진출해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자식 같다는 소속 가수들과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는 김 대표의 얼굴은 은은한 미소가 배어 나왔다.

"케이윌은 작곡가 박창현의 노래를 가이드했던 친구였어요. 한국적인 감성에 어울리는 음색이 마음에 들었어요. 만나보니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더군요. 데뷔 당시 지금처럼 아이돌이 판을 치던 때라 사실 성공한다는 확신은 없었죠. 그래도 이 친구가 재치가 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도 입심으로 안 질 정도죠. 노래 잘하고 친근한 매력을 가진 발라드계의 아이돌로 만들어 보자 했어요. 뮤직비디오에 아이돌을 출연시키고 젊은 느낌을 주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았죠."

케이윌과 달리 씨스타는 데뷔 전부터 성공을 장담했다는 김 대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아이돌 대표 보컬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효린의 존재감을 일찌감치 확인했기 때문이다.

"'괴물이다'고 직감했어요. 그만큼 기대가 컸고 잘 될 거라 확신했죠. 보라도 끼와 재능이 데뷔 전부터 상당했어요. 이 친구 성실성이 남달라서 뭐든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죠. 다솜과 소유는 근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승부욕이 강한 반면 긍정적이라 주변을 즐겁게 하는 재주도 있어요. 멤버들의 실력이 뒷받침됐고 팀의 인지도가 차츰 쌓이면서 그 '포텐'이 올해 터진 거라 봅니다."

물론 김 대표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내달린 것은 아니다. 건설회사를 다니다가 지인의 소개로 쿨의 소속사에 첫 발을 내 디딘 것이 1994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관리직으로 일하던 그는 내부 사정으로 매니저들이 모두 회사를 그만둬 갑자기 현장으로 배치됐다. 서울 지리가 어두워 이재훈이 운전하는 차 보조석에 타야 했던 웃지 못할 일도 겪으며 그는 차분히 시장에 적응했다. 5년을 준비한 끝에 2003년 그룹 파이브를 제작해 반짝 성공하는 듯했지만 멤버들의 군입대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좌절은 길지 않았다. 젝스키스를 떠나 홀로서기에 한창이던 은지원을 만난 것은 김 대표의 인생그래프 첫 변곡점이 됐다.

"당시 (은)지원이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힙합을 하고 싶다고 하길래 한 번 해보자 했죠. 어떤 일이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걸 그 때 배웠어요. 손발이 잘 맞으니 저도 신바람 나게 일했던 기억이 나네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임정희 케이윌 에이트 이현지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그는 2007년 스타쉽을 통해 본격적인 제작자의 길에 재도전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거친 그는 원칙을 중시한다. 소속 가수에게 그는 엄격한 아버지이자 정도를 걷는 파트너다. 서로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한다.

제작에 있어서는 대중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트렌드를 좇기 보다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한때 대형기획사가 '넘사벽'처럼 시장에서 군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콘텐츠의 힘이 담보된다면 그 경계는 사라질 거라 확신한다. 대중성은 가장 날카로운 창이자 가장 든든한 방패다. 유행을 읽기 위해 해외 출장길에는 클럽에서 질리도록 음악을 듣고 서점에 들러 닥치는 대로 잡지를 훑는다.

"트렌드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성을 잃은 음악은 시장에서 존재 가치가 희미해지죠.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둔 콘텐츠를 생각할 때가 됐기 때문에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 밖에 없어요."

부단히 해외 트렌드에 민감한 그가 이끄는 스타쉽은 역설적으로 다른 기획사에 비해 해외 진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경쟁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국내 시장이 우선이라고 봤어요. 내실을 탄탄히 다지지 않으면 해외진출의 동력도 금세 힘을 잃을 거라 판단했죠. 보이프렌드의 일본 진출을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어요. 케이윌도 이제 공연형 가수로 일본에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요. 씨스타는 아시아권 보다 북미나 유럽 쪽에 어울리는 콘텐츠라 생각해요. 개성 있는 콘텐츠만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K-POP은 다 비슷해'라는 편견을 스타쉽이 꼭 깨뜨리고 싶어요."



김성한기자 wi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