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안보일 만큼 깊어 '월은치'경사 완만해 사색하며 걷노라면시나브로 행복감에 빠져 들어
남창계곡은 입암산, 갓바위, 시루봉, 장자봉, 상왕봉, 사자봉, 향로봉, 가인봉 등의 준봉 사이로 굽이치는 멋진 계곡이다. 내장산 국립공원 지역에 편입되어 있지만 내장산과는 그 뿌리가 다르며 진입로도 동떨어져 있다. 남창계곡은 산성골(남창본계곡), 은선골, 새재골(반석동), 하곡동, 자하동골, 내인골 등의 여섯 지류가 흘러들면서 이루어져 있다. 산성골 상류에서 황룡천에 이르는 남창계곡의 총길이는 8㎞ 남짓하다.
버스 종점인 남창마을은 장성 특산물인 대봉감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감을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대봉감은 '과실의 왕은 감이요, 감의 왕은 대봉'이라 하여 옛날부터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꼽혀올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난 과일이다. 11월경에 수확한 대봉감을 깎아 그늘에서 50~60일 자연 건조시킨 후 다시 햇볕에 10일 정도 말리면 당도가 매우 높은 곶감으로 변신한다.
명상과 사색에 잠겨드는 행복한 산책길
주차장에서 삼나무 숲과 단풍 숲길의 정취에 젖어 20분쯤 걸으면 장성새재 옛길 입구 갈림길에 다다른다. 흔히 새재라고 하면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에 있는 고갯길인 문경새재를 떠올리지만 이곳에도 새재가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통행하는 사람이 많아 주막까지 들어서 있었던 정취 있는 오솔길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길을 넓히고 군용 차량들이 오가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었다. 1970년대 들어 차량 통행을 금지했으나 한번 훼손된 자연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법이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 측에서는 길을 다시 좁히는 한편 생태계 복원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장성새재 옛길은 경사가 완만해 편안하게 산책하며 오를 수 있는 숲속 탐방로다. 길 오른쪽으로는 새재골을 굽이치는 계곡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왼쪽으로는 우거진 수풀이 늦가을로 치달으며 알록달록 물들어가고, 머리 위로는 산새들이 재잘대며 합창한다. 그럴진대 걷는 내내 명상과 사색에 잠기다가 시나브로 행복감에 빠져들 수밖에.
허물어진 집터에 주춧돌만 나뒹굴고
장성새재 옛길 입구에서 40분쯤 걸어 오르니 오른쪽으로 제법 넓은 집터가 보인다. 옛날에는 장성새재 일원에 열댓 가구가 흩어져 살았다고 하지만 1971년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로는 모두 떠나 허물어진 집터에 주춧돌만 나뒹군다.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달도 숨은 고개를 아시나요?'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달도 숨어 안 보일 만큼 깊은 고개여서 월은치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사실 옛 지도에서 장성새재라는 명칭은 찾아볼 수 없으며 대동여지도나 대동방여전도에는 월은치(月隱峙)로 표기되어 있다.
옛길 입구로부터 45~50분쯤 걸어 장성새재에 이르렀다. 장성새재는 순창새재를 넘어 내장사로 가거나 입암지킴터(정읍시 신정동)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남창계곡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왔다면 되돌아가는 게 낫다. 입암지킴터까지 오가는 왕복 2시간 남짓한 구간은 울퉁불퉁한 돌들이 튀어나온 거친 길이 태반이어서 좀 피곤하기 때문이다.
차에서 해방된 필자는 입암지킴터 쪽으로 내려갔다. 한산하고 호젓한 분위기가 감도는 숲길을 내려가다가 올려다본 삼성산(삼신산)의 멋진 암봉은 덤이다. 도선국사가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는 삼성산 정상에는 약수가 있으며 조선조 말까지 절도 있었다고 한다.
장성새재에서 1시간쯤 내려와 입암지킴터에 이르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성새재 옛길 입구에서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만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 아름다운 길을 나 홀로 독점했다니 야릇한 기분이 든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꼭 한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길이다.
백양사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백양사 방면으로 달리다가 남창계곡 쪽으로 좌회전한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열차를 타고 백양사역에서 내린다. 사거리 버스터미널에서 남창계곡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오전 8시 20분과 10시, 오후 1시 50분과 4시 50분 등 하루 4회 운행.
# 맛있는 집
북이면 사거리에 있는 홍길동한우(061-392-9393)는 신선하고 질 좋은 1등급 한우 암소만을 취급하는 맛집이다. 식당 안에서 구워 먹을 수도 있고 구이용, 장조림용, 보신용(우족, 사골, 등뼈), 세트 메뉴 등을 포장해 구입할 수도 있다. 식사 메뉴로는 신선한 야채와 어우러진 불고기백반, 육회와 갖은 나물을 얹어 쫄깃하고 고소한 생고기비빔밥, 육개장, 곰탕, 사골떡국 등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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