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남 망명설'의 실체는…한때 정치권 등 요동 국정원 "루머일 뿐" 기획설 해명베이징 대북 정통 소식통 "김정남, 해외 업무 수행중 '파워 게임'설 등 사실과 달라장성택 부위원장과도 끈끈한 관계 유지"

때아닌 '김정남 망명설'로 대선 정국이 출렁거렸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이복(異腹) 형인 김정남(41)의 망명 여부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요동을 친 것이다.

만일 '김정남 망명'이 사실이라면 당장 대선판은 다시 짜여지고 국가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국가정보원 등이 나서 '망명설'을 부인하고 여러 의혹을 해명하면서 충격파는 어느정도 완화했지만 여진은 아직 남아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의구심이 여전히 민심 언저리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망명설'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을 이해하는 관점(통로)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 향후 대북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망명설의 발단이다. 지난 10월 말 대북 소시통들의 전언을 통해 "김정남이 최근 제3국에서 한국 정부의 정보 채널을 통해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망명설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급기야 정치권으로 번져 여권은 망명설의 실체를 따졌고, 야권은 '국정원 기획설'을 의심하며 캐물었다. 국정원은 망명설에 대해"일본의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누군가 올린 글이 확산된 것이 루머처럼 번진 것이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 망명설'은 이전에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김정남이 일본 언론에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힌 이후에 망명설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지난달 15일 핀란드 공영방송 yle에 출현해 김정은 통치를 '독재'로 표현하고 김정일을 독재자로 언급한 이후 망명설이 나왔다. 김정남이 한솔의 입을 통해 북한 체제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분석에서였다.

김정남을 둘러싸고 망명설이 제기되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이복동생 김정은과의 권력 갈등을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그러한 배경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는 데 공을 들였다거나 김정남이 해외에서 체류할 수 밖에 없는 것도 김정은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2009년 4월 김정은파가 김정남이 평양 체류 시 머무르던 우암각 별장을 급습해 관련자들을 잡아갔다는 사건이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김정은이 권력을 거머쥔 직후 김정남이 행방을 감춘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망명설'이나 '김정은-김경남 파워게임설', '습격설' 등이 사실과는 전혀 다른 '소설'일뿐이라고 단정한다.

오랜기간 북한과 무역을 하면서 그곳 핵심층과도 인연이 깊은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추측이 난무하는 것 같다"며 "김정남이 망명할 이유가 없고, 망명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세 아들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분담시켜 장남인 김정남에겐 해외임무를 맡기고, 둘째 김정철은 군에, 막내인 김정은은 노동당에 전략적으로 배치했다는 것이다.

김정남이 마카오와 중국,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해외에 머무는 것은 그가 담당한 해외 임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며 김정은에게 밀려난 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우암각 습격설에 대해서도 김정은 집권과는 무관하며 실체가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김정남의 소재와 관련해 그는 "김정남이 김정은 체제 후 자취를 감췄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김정남이 자신의 임무에 대한 중국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주생활 무대를 마카오와 베이징에서 싱가포르로 옮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일부 언론에서 지난 10월 초 김정남이 신병 치료차 싱가포르에 들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만났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오보"라고 확언했다. 김경희가 싱가포르에 올 이유도 없고, 신병 치료라면 러시아로 갈 것이라며 싱가포르 입출국 내역을 확인해보면 분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의 또 다른 북한 소식통 역시 김정남을 둘러싼 여러 설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한 설들이 근본적으로 '3대 세습'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소위 북한 전문가들조차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보고 '3대 세습' 체제가 이뤄졌다고 하는데 북한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은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고 '후계자'로 비춰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이 후계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당과 군부의 고위급 인사는 다 안다"면서 "김일성 주석도 후계자로 김정일 위원장을 인정했을 뿐 손자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일성-김정일 때와 달리 김 위원장 사망 전까지 김정은에 대해 '후계자'란 용어를 쓰지 않은 것도 김정은이 후계자가 아니라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3대 세습)'를 생각했다면 장남인 김정남에게 '제왕학(帝王學)'을 가르쳤을 것"이라며 "김정남과 김정은의 나이 차이(11살)가 많은 상황에서 뒤늦게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이다. 장 부위원장 중심 체제에서 김정일 세 아들의 임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북한 내부 문제로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김정남과 장성택 부위원장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장성택 등이 '경제'에 올인하면서 정치적으로는 김정은을 앞세워 북한 체제를 이끌고 있는 상황이어서 '망명설'이나 '파워게임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김정남 망명설'은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김정남의 거취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