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ㆍ문재인 대선 패자는…박, 일단 정치권과 결별… 보수진영 후견인 역할문, 친노 진영 수장 유지… 바로 당지도부 복귀 힘들 듯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2일 고양시 능곡시장을 방문해 한과을 직접 튀겨보고 있다.오대근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후보간 대선 전쟁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사퇴로 두 후보는 모두 사력을 다하면서 마지막 싸움에 임하고 있지만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둘 중 한 명은 20여일 뒤 치러지는 18대 대통령선거의 최종 승자가 돼 차기 정권 5년을 이끄는 대한민국 호의 선장으로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된다. 물론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강지원, 박찬종 예비후보 등도 당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현재의 정치 여건상 박근혜, 문재인 후보 중에 당선자가 나온다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이들 두 후보는 모두 내년 2월의 청와대 행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겠지만 한 명은 무조건 대선 패배라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양측이 모두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지만 대선 패배 시 이들의 정치적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도 세인들의 또 다른 관심거리다.

박근혜, 삼성동 자택으로

5선의 국회의원인 박근혜 후보는 대선 후보 등록과 함께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를 공언했다. 대선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결기를 나타낸 것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선 패배 시 무조건 여의도 정치권과는 이별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미 대구 달성 지역구도 올해 4월 총선에서 떠난 바 있다. 대선 패배로 새누리당 후보 지위가 없어지면 평 당원이 되는 것으로 사실상 ‘자연인 박근혜’로의 복귀가 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2일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 전시장을 찾아 장애인 사진가들과 함께 작품을 보고 있다.류효진기자
연령 면에서 보면 1952년생인 박 후보(60)는 과거 대선을 비춰봐도 대선의 재도전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대선 패배 시 재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이번 대선을 처음이자 마지막 승부로 여기는 눈치다.

물론 대구 등 고향 유권자들을 비롯한 박 후보 열성팬들은 정치 재개를 거듭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국 단위로 구성돼 있는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정치 재개 요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박 후보는 일단은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 자연인으로 살 것이 유력하다. 그러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 후보의 복귀를 강력 요청할 경우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음 총선도 4년 후의 일이기에 곧바로 정치권 전면에 재등장하는 일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치권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둔 상태에서 보수진영 및 새누리당의 후견인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박 후보의 차기 대선 도전은 그때 정치 상황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이회창 후보의 ‘2번 실패’라는 아픈 경험이 있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박 후보의 재도전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공산이 크다.

문재인, 현역의원은 유지하지만…

세 후보 중 문재인 후보는 유일하게 현역 의원으로 남게 된다. 그는 또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이자 주류인 친노(親盧)진영의 수장이다. 대선의 승패와 상관없이 의원직을 자진 사퇴하기 전까지는 4년간은 이런 닉네임이 유지될 수 있다.

문 후보는 1953년생으로 만 59세다. 차기 대선인 5년 후에는 64세가 되므로 대선 재도전에 나서더라도 연령적으로는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당내 신진 세력들의 거센 도전이 예상되는 데다 문 후보 자체가 권력을 향한 의지가 3김씨 등 과거 정치인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비쳐지고 있어 곧바로 대선 재도전을 천명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일단 당 대표권한대행으로 돌아가는 문 후보는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새로운 민주당 지도부 구성에 전념할 것이 분명하다. 대선 패배라는 멍에가 있기에 지도부에 바로 입성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

사퇴한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과 함께 한동안 당의 원로그룹이나 상임고문단에 남은 상태로 차기 정권에서 민주당 호의 항해를 놓고 큰 틀의 방향 제시 등을 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에서는 이번 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고문과 재기를 노리는 정동영 전 의원 등 메이저 급 후보군을 포함해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 386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당의 전면에 나서려고 할 것이 예상된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어떻게 꾸려지는지에 따라 민주당의 간판도 바뀔 수 있지만 정치쇄신 등을 외치며 이번 대선에서 새 바람을 일으킨 안철수 후보 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변화와 개혁, 세대교체의 바람이 민주당 내부에도 강하게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문 후보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돌아갈 여지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부산ㆍ경남(PK)지역 의석이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점을 감안해 차기 총선에서는 PK의 민주당 열풍을 위해 재출마에 나설 수 있다.

안철수 대선 재도전 가능성

비록 후보직을 사퇴했지만 대선 재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가장 큰 쪽은 말할 것도 없이 안철수 후보다. 연령면에서도 1962년 생인 그는 5년 후에는 55세가 돼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나이가 된다. 단순히 나이만 보면 박 후보가 60세임을 감안, 차기와 차차기 모두 도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가능해진다.

안 후보는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는 말로 이번 대선에 임하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이 발언의 의미를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다른 정치인의 삶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선에는 도전하지 않지만 정치 활동만큼은 계속 이어간다는 의지 표명이다.

새 정치를 강조한 안 후보는 내년 초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전후해 곧바로 신당 창당의 깃발을 세우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 내년 초 새로운 정당의 대표로 정치권 전면에 재등장할 것이란 관측이다.

문제는 안 후보가 현역 의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정 활동과 거리가 멀다는데 있다. 따라서 내년 초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안 후보의 도전이 예상된다.

안 후보의 높은 지명도와 ‘아름다운 양보’를 한 것 등을 생각한다면 19대 국회 내 여의도에서 안철수 의원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여의도 진입에 성공한 안 후보가 계속 새 정치 구현을 강조하면서 여야 현역 의원들을 자신의 정치적 영향권 안으로 포섭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번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치며 적잖은 피로감을 국민에게 안겼다는 점이 걸림돌이긴 하다. 안풍(安風ㆍ안철수 바람)의 재현이 기대만큼 클 지는 속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한번 바람이 크게 일었던 후보에 대해 그와 같은 지지나 기대감이 꾸준히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예측하긴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역대 패자(敗者)들은

대통령 직선제가 재도입된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이후 3김씨 등 대선에서 패한 인사들은 국회 활동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은 대부분 쓸쓸히 장막 뒤로 퇴장하는 등 대선 후유증에 적잖이 시달리곤 했다.

13대 대선의 패자(敗者)인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는 각각 민주자유당 대표와 새정치국민회의 대표 등 여야 정당의 수장 자리를 거쳐 14대 대선과 15대 대선에서 승자(勝者)가 됐다. 13대 대선 당시 4위에 그쳤던 김종필 전 총리도 15대 대선에서 DJP연대를 통해 총리 자리에 다시 올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외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박찬종 김옥선 전 의원, 이병호 대한정의당 후보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분루를 삼켰다. 정 전 회장은 대선 패배 이후 통일국민당을 스스로 해체한 뒤 정계를 영영 떠났고 박찬종 김옥선 전 의원 등은 정치권에 계속 남아있었지만 그다지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진 못했다. 박 전 의원은 이번 18대 대선에서도 무소속 예비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백 소장은 여전히 재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5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2,3위에 올랐다. 이회창 후보는 16대, 17대 대선에도 연속 출마해 3번의 대선 도전에서 2위 2번, 3위 1번의 기록을 안고 있다. 이인제 후보도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자민련, 통일선진당 등 소속을 옮겨가며 국회의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새누리당과의 선진당의 합당으로 15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권영길 국민승리 21 후보는 민노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진보계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한동안 자리매김했다. 통일한국당 신정일, 바른정치연합 김한식 후보 등은 대선 이후 바로 잊혀졌지만 공화당 허경영 후보는 10년 후인 17대 대선에서도 출마했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각종 기행을 보여줘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2년 16대 대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석패로 요약된다. 권영길 이한동 김영규 김길수 후보 등이 패자의 반열에 섰지만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를 제외하곤 모두 정치권과 멀어졌다.

5년 전인 17대 대선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이인제 권영길 정근모 허경영 전관 금민 후보 등이 패자가 됐다. 정동영 후보는 민주당 의원으로 정치적 재기에 나섰으나 19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도로 위축됐다. 문국현 후보도 이어 열린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내 정계를 떠났다.

되짚어 보면 대선 패자 중 재도전에 나서 성공한 정치인은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 밖에 없다. 나머지 대선 패자들은 대부분 세인들의 관심 범위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 중 1명에게도 이 같은 고난의 길이 예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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