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가지 키워드로 살펴본 검찰 흑역사

부끄러운 줄 아나?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했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된 전모 검사가 11월 2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에 들어서면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최흥수기자
'1999년 대전법조비리' 변호사에게 사건 알선하고 소개비 받았지만 처벌 받은 검사 아무도 없어
'2010년스폰서검사보도' 부산 지역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 받은 사실 알리려는 방송 관계자 협박하기도
'2011년 벤츠 여검사' 사상 첫 특임검사 임명 불구 제식구 감싸기 논란 일어
최근 검찰개혁 여론 압박에 평검사 회의 등으로 내부 자정 노력 보였지만 자작극으로 밝혀져 국민 실소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요즘 검찰에서 터져나오는 충격적인 소식들은 막장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관객은 저질스럽고 불쾌한 검찰의 막장 행태에 분노하며 야유를 보내고 있다.

"부장 검사란 작자가 시골 할머니에게 사기를 쳐 갑부가 된 조희팔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니…."

"도대체 검사 선발을 어떻게 하나? 막내 검사가 조사 도중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하다니 말이 돼?"

해마다 겨울이면 터지던 검찰 비리가 최근 며칠 사이에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검찰 개혁을 부르짖었던 평검사가 '실제로는 개혁을 촉구한 것이 아니었다'고 실토해 막장 드라마를 넘어 코미디에 가깝다. 검찰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상대 검찰총장은 11월의 마지막 날 사퇴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검찰 비리를 되짚어본다.

검찰을 상징하는 조형물에 비친 대검찰청 건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박서강기자=
정치검사와 떡값검사

검찰은 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일한다. 검찰 수뇌부와 평검사들이 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항명 파동은 검찰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일선 검사가 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사건은 1999년에도 있었다. 옷 로비 사건이 터져 국면 전환용 희생양이 필요한 시점에서 김태정 검찰총장이 대전법조비리를 이용해 후배 검사들을 감찰하자 일선 검사들이 발끈했다.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은 김태정 총장을 정치검사로 규정하고 사퇴를 요구했고, 일선 검사들은 검찰 수뇌부 퇴진을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렸었다.

대전법조비리 사건은 검찰과 법원 직원이 이종기 변호사에게 사건 수임을 알선하고 소개비를 받다 1999년 1월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사건 수임 장부에는 현직 검사와 판사, 경찰 등 200여 명이 소개비로 건당 20만~3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됐다. 이 변호사에게서 금품을 받은 현직 검사는 25명이었는데 검찰은 검사장 2명을 포함해 총 6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7명을 징계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 하지만 처벌을 받은 검사가 단 한 명도 없어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전법조비리로 내홍을 겪은 검찰은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눈총을 받았다. 안기부(현 국정원)가 도청한 자료에는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가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특정 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하기로 공모한 내용과 검사장급 이상 간부 5인을 비롯해 검찰 고위 간부 10인에게 명절마다 떡값을 건넸다는 대화가 담겼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돈을 주고받은 것으로 거론된 검찰 관계자 명단을 확보하는 대로 자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으나 검찰은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다. 떡값 검사는 사회 지탄을 받았으나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처벌을 받진 않았다.

스폰서 검사

스폰서 검사라는 말은 2009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용산 철거 현장 화재 사건과 MBC 광우병 보도 수사를 지휘했었는데, 2009년 3월 강남 아파트를 사면서 사업가 박경재씨에게서 15억 5,000만원을 받았다. 승승장구하던 천 지검장은 6월에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정됐다. 그러나 국회 청문회에서 스폰서 의혹이 불거졌고 부인과 아들을 둘러싼 의혹도 쏟아졌다. 천 후보자는 "박경재씨와 잘 아는 사이가 아니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 드러나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스폰서 때문에 검찰총장 내정자가 낙마하자 검사와 스폰서에 대한 질타가 솟구쳤다. 천성관 총장 내정자는 스폰서 검사의 대명사로 남았다.

MBC 은 2010년 4월 스폰서 검사의 실체를 낱낱이 폭로했다. 은 '검사와 스폰서편'을 통해 부산지역 건설업자에게서 25년 동안 성접대를 받은 전ㆍ현직 검사 57인에 대해 보도했다. 박기준 당시 부산지검장은 최승호 PD에게 "내가 다른 사이드로 당신한테 경고했을 거야. 그러니까 뻥긋해서 쓸데 없는 게 나가면(방송되면) 물론 형사적인 조치도 할 것이고 민사적으로도 조치가 될 거에요"라며 협박했다. 당시 법무부 이귀남 장관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지만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또 어디서 찾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성접대와 촌지를 받았던 검사들에겐 별 탈이 없었지만 제작진은 올해 들어 해고되거나 대기발령을 받았다. "네가 뭔데, 검사한테 전화하냐"고 막말했던 박기준 지검장은 면직됐으나 형사처벌을 받진 않았다. 특별검사가 향응수수 의혹에 대해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소를 포기했고 부하 검사에게 지시한 직권 남용 의혹에 관해선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나 최승호 PD는 올해 6월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정치권력이 검찰과 방송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뇌물 검사

11월은 검찰에 잔인한 달이다. 2010년 11월에는 그랜저 검사 사건이 터졌고, 2011년 11월에는 벤츠 여검사 사건이 생겼다. 그랜저 검사 사건은 검찰 사상 첫 특임검사를 임명하는 계기가 됐다. 특임검사제도는 검사가 저지른 범죄와 사건에만 예외적으로 운영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에 검찰 비리가 밝혀졌다. 서울고검 김광준 부장검사(51)가 다단계 사기왕 조희팔 측근과 유진기업으로부터 약 10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가 발견됐다.

정인균 서울중앙지검 전 부장검사는 2009년 모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그랜저 승용차를 받은 대가로 후배 검사에게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청탁했다. 건설업자와 소송을 벌였던 변호사 등은 2009년 3월 검찰이 뇌물 때문에 무리하게 기소했다며 그랜저 검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그랜저 검사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언론이 2010년 11월 그랜저 검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비난 여론이 속출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2011년 6월 항소심에서 그랜저 검사에게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3,514만원, 추징금 4,614만원을 선고했다.

벤츠 여검사는 그랜저 검사보다 더 큰 충격을 줬다. 부산지검에 근무했던 여검사 이모(37)씨는 부장판사 출신인 최모(51) 변호사와 부적절한 관계였다. 최 변호사는 내연 관계였던 벤츠 여검사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고, 여검사는 벤츠 승용차를 비롯해 명품 가방과 신용카드를 받았다. 벤츠 여검사가 자신의 인사에 대해 의논하자 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검사장에게 인사 청탁까지 했다. 벤츠 여검사 사건은 최 변호사와 불륜 관계였던 대학 여강사가 대검에 진정하면서 불거졌다. 삼류 불륜 드라마를 연상시킨 벤츠 여검사 사건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사건 축소 의혹을 낳았고, 결국 특임검사가 재수사한 끝에 벤츠 여검사는 법정에 서게 됐다.

그랜저 검사와 벤츠 여검사 파문에 이어 올해도 11월 검사 비리가 터졌다. 서울고검 김광준 부장검사가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보도(11월 9일)가 나오자 한상대 검찰총장은 재빨리 특임검사를 임명했다. 경찰이 뇌물 검사 사건을 수사하겠다고 나섰지만 김수창 특임검사는 11월 19일 뇌물 검사를 구속했다.

性검사와 총장 퇴진

검찰 역사상 세 번째 특임검사가 뇌물 검사를 수사할 때, 풋내기 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었다.

목포지청 소속으로 실무교육차 서울동부지검에 파견된 전모(30) 검사는 11월 10일 여성 피의자를 조사하다 검사실에서 성행위를 했다. 이틀 뒤엔 피의자를 불러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전 검사는 통화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피의자는 전 검사의 강요로 검사실과 승용차에서 유사 성행위까지 했다고 밝혔다.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다 성관계를 맺은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고, 서울중앙지검 소속 모 검사는 "어디 가서 검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은 전 검사를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했다. 피의자 법률 대리인인 정철승 변호사는 "이 사건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행이다"면서 "피해자가 뇌물 공여자로 몰리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 검사와 피의자는 성관계를 문제로 삼지 않겠다고 합의한 상태. 성폭행과 달리 뇌물 수수라면 피해자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단 검찰은 여성 피의자를 뇌물 공여로 입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성추문 검사까지 등장하자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이 거셌다. 평검사마저 검찰 수뇌부를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했다. 통일부에 파견된 윤대해(42) 검사는 11월 24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실명으로 검찰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윤 검사의 진심은 잘못 보낸 휴대전화 문자 때문에 들통 났다. 윤 검사는 "일선 청에서 평검사 회의를 개최하고 이런 분위기 속에 총장님이 큰 결단을 하는 모양으로 가야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동료 검사에게 보낸다는 게 실수로 언론사 기자에게 보냈다. 개혁 자작극을 벌였던 윤 검사는 11월 28일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가운데 한상대 검찰총장은 막장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는모양으로 물러났다.

뇌물검사, 성검사 파문으로 인해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한 총장이 개혁 카드로 들고 나온 중수부 폐지론은 거대한 역풍을 몰고 왔다. 한 총장이 돈검사, 성검사 사건에 따른 비판을 무마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중수부를 폐지하는 검찰 개혁안을 꺼냈다는 비판이었다. 여기에 한 총장이 회삿돈 600억원대를 횡령한 혐의를 받는 SK그룹 최태원 회장 구형량 결정에 개입했다는 구설은 그의 입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사면초가에 빠진 한 총장이 검찰개혁안으로 중수부 폐지를 들고 나온데 대해 중수부를 비롯한 검찰 간부들이 집단 반발한 상황에서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11월 28일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내부에선 "총장은 검찰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총장이 자리 보전을 위해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는 성토가 쏟아졌고, 11월 29일 대검찰청 간부 전원과 평검사들이 한 총장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한상대 총장이 물러났지만 비난 여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검찰판 막장 드라마는 언제쯤 끝날까.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