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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트라브존, '동서고금' 공존하다

고대 그리스·로마·오스만제국 등 수많은 왕조 지배 받아
천년 세월 버텨온 쉬멜라 수도원 길목엔 세련된 카페 즐비
첫인상 투박하지만 정겨움 가득
  • 보즈테페 언덕에서 조망한 도심과 흑해
터키 트라브존의 첫 인상은 투박하고 탁하다. 흑해 연안 도시가 던져주는 연상의 힘은 도시의 이미지마저 편견으로 퇴색시킨다. 겨울 트라브존의 길목에는 오후 3시만 넘어서면 어둠이 내린다. 터키 여행의 로망인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안탈리야 등의 화려한 잔영을 이곳에서 섣불리 찾아보기는 힘들다.

서쪽 끝자락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면 동북부 트라브존까지는 버스로 16시간을 쉴새 없이 달려야 한다. 언어만 같을 뿐 심리적인 거리가 멀다. 트라브존은 흑해를 사이에 두고 오히려 그루지아 등의 옛 러시아 문화권과 맞닿아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이곳에 넘어와 둥지를 틀었다. 도심 메이단 공원에만 나서도 러시아인들의 얼굴과 흔하게 마주친다. 실제로 도심 노천카페에서 햇살을 즐기는 러시아인의 정취는 방문자들의 모양새가 아니다.

절벽 아래 들어선 쉬멜라 수도원

역사를 되짚으면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후 로마, 비잔틴, 트레비존드 왕국, 오스만 제국 등 수많은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트라브존의 최대 유적은 '아슬아슬한' 비잔틴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쉬멜라 수도원이다. 지가나 산의 수직 암벽 아래 들어선 수도원은 '트라브존=쉬멜라 수도원'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낼 정도로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리는 필수 코스다. 5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천년의 세월을 버텨 왔으며 절벽 밑 그리스도의 삶을 다룬 프레스코화도 7~13세기에 그려진 것이다. 수도사들이 은둔하며 기거했던 70여개의 방들 역시 일반에 공개돼 있다.

  • 오르타히사르 성벽
쉬멜라 수도원 가는길 마치카 마을 역시 소박한 흑해지역 도시의 단상이 담겨 있다. 찻집에 빼곡히 모여 담소를 나누는 할아버지나,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금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금을 실로 짜듯 엮어 만든 장신구인 '하스'는 트라브존 일대에서 오래전부터 성했다.

트라브존의 도심으로 들어서면 아야소피아, 오르타히사르 등 오래된 유적들과 조우한다. 흑해를 바라보며 서 있는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의 것과 이름이 같지만 규모는 아담하다. 14세기 트레비존드 왕국때 지어진 성벽인 오르타히사르에서는 트라브존의 시련의 역사가 묻어난다. 터키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별장은 수려한 정원으로 도시를 장식한다.

검푸른 바다에 기댄 보즈테페 언덕

보즈테페 언덕에 오르면 흑해 연안 도시의 편견은 아름다움으로 빠르게 전이된다. 언덕 꼭대기 주변으로는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노천 테이블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트라브존 청춘들에게 이곳은 데이트코스이자 한낮의 한적한 아지트다. 터키 '차이'는 주문하면 주전자 채로 넉넉하게 나온다. 트라브존에서 홍차의 산지로 유명한 리제까지는 지척거리다. 이곳 차는 좋은 이웃 도시를 둔 덕에 맛이 깊으면서도 은은하다.

차이 맛보다 가슴을 먹먹하게 적시는 것은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이다. 비탈길에 가득 늘어선 붉은 지붕과 모스크들 사이로 검푸른 흑해는 끝없이 이어진다. 검고 붉은 물결 너머 언덕 위로 다가서는 바람은 정갈하다. 단 한순간의 강렬한 장면은 언덕에서 조우한 도시와 흑해의 단상을 추억으로 아로 새긴다.

  • 쉬멜라 수도원
도심 거리는 보즈테페 언덕과 이어지는 메이단 공원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어 있다. 트라브존의 명동격인 '우준' 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리고 해변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세련된 카페들이 눈길을 끈다. 클럽 등 트라브존의 화려한 밤문화는 터키 내에서도 꽤 정평이 난 편이다.

더욱 독특한 풍경은 거리의 가로등에 죄다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트라브존은 흑해 해산물중 '하므시'(큰 멸치) 튀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번화가에도 생선가게가 버젓이 들어서 있고 도시의 상징물도 하므시로 세워져 있다.

트라브존은 이방인들에게 분명 낯선 도시가 맞다. 검푸른 흑해의 바람을 맞으며 걷는 행위 역시 이질적이다. 터키사람들에게 흑해는 오히려 '손님을 좋아하는 바다'라는 정겨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편견을 털어내면 도시가 따뜻하게 다가서는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깊게 배어 있어서다.

여행메모

가는길=트라브존까지는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이스탄불까지는 터키항공이 매일 운항하며, 트라브존까지는 하루 3~4편의 비행기가 있다.

  • 쉬멜라 수도원 내부 벽화
인근 관광지=트라브존에서는 우준 호수나 터키의 알프스로 불리는 아이데르 등을 둘러보면 좋다. 흑해지역의 자연과 울창한 숲을 감상할 수 있다. 홍차의 산지로 유명한 리제도 트라브존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걸린다.

기타정보=트라브존은 축구로 익숙하다. 2002년 월드컵이후 이을용이 현지에서 활약했고 FC서울의 기네슈 전 감독은 트라브존에서는 축구 영웅의 칭호를 받고 있다. 트라브존의 날씨는 겨울에도 평균 5도로 온화한 편이며 평균 10~20도를 유지한다.

  • 소박한 트라브존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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