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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살겠다 갈아보자'에서 '실천하는 경제대통령'까지 시대 반영

● 포스터로 본 역대 대선
"썩은 정치 뿌리 뽑자" 60·70년대 독재청산 화두 13대 김영삼 후보 "군정종식"
14대 김옥선 후보 남자로 변신 15대 권영길, 얼굴 대신 태극기 16대 김길수 "불심으로 대동단결"
사람이 먼저냐, 여성 대통령이냐?

대통령선거 벽보를 보면 후보자의 삶과 공약이 보인다.

새누리당 박근혜(60) 후보 포스터에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이란 단어를 사용해 경쟁자와 비교할 때 정치 경력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59) 후보는 포스터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정권 심판론을 앞세운 문재인 후보는 재벌과 기득권층보다 서민과 일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사람이 먼저다'고 외쳤다. 통합진보당 이정희(43) 후보도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란 문구를 앞세워 경제 민주화를 강조했다.

선거 포스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인물과 정책이 제 아무리 좋아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면 헛수고. 따라서 각 후보자는 포스터 등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지를 잘 표현해야 한다. 과거 선거 포스터를 보면 공약이 빼곡히 적혀 있지만 요즘엔 간단명료하게 구호만 적는 추세다. 정책보다 인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정책으로 관심을 끌고 인상으로 표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책이 좋다고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순 없다는 의미. 후보자들은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11월 27일 0시부터 전국 곳곳에 붙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포스터를 살펴보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 눈에 띈다.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옷을 입고 살짝 웃는 얼굴을 포스터에 담았다. 원칙을 지킨다는 인상을 지키되 냉정하다는 인상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TV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를 쏘아붙였던 이정희 후보는 포스터 속에서 활짝 웃었다. 문재인 후보는 포스터 속에서 미소와 함께 입술을 다물면서 시선을 살짝 위로 두었다.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개혁 의지를 시선으로 표현했다.

시대정신 반영

국민에게 호소하는 선거 포스터는 1952년 제2대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처음 등장했다. 초대 정ㆍ부통령 선거가 열렸던 1948년엔 당시 헌법에 따라 제헌국회가 대통령을 뽑았다. 자유당이 1952년 대선을 앞두고 만든 포스터에는 '解放의 恩人 李博士를 次期大統領으로', '전가족이 이박사에게 표를 드리자' 등의 구호가 적혔다.

제3대 정ㆍ부통령 선거가 열렸던 1956년엔 역대 최고로 손꼽히는 선거 포스터가 등장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 신익희 대통령 후보와 장면 부통령 후보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이승만 정권 심판론을 주장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을 추진한 터라 민주당 포스터에 실린 구호는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첫 슬로건이란 평가를 받았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구호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자 놀란 자유당은 '갈아봤자 더 못산다'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자유당 선거 포스터는 '나라 위한 八十평생 합심하여 또 모시자'란 구호가 적혔다. 파죽지세로 승기를 잡았던 신익희 후보는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한 탓에 어부지리를 얻은 이승만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다. 미완의 구호로 그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당시 독재 정치에 항거한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역대 대선 포스터를 잘 살펴보면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제3대 정ㆍ부통령 선거부터 13대 대통령선거까지 야당은 줄기차게 독재 청산을 외쳤다. 신민당 윤보선 후보는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에서 '빈익빈이 근대화냐 썩은정치 뿌리뽑자!'란 구호를 포스터에 적었다. 여당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근대화를 주장하자 빈익빈 현상을 꼬집었다. 그러나 5ㆍ16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후보는 조국 근대화를 앞세워 썩은 정치론을 잠재웠다.

썩은 정치론은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화두였다. 신민당 김대중 후보 포스터를 살펴보면 '10년세도 썩은정치 못참겠다 갈아치자'란 구호가 눈에 띈다. 신민당이 내세운 썩은 정치론은 서울과 호남에서 호응을 얻었으나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이 경상권에서 신라 대통령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김대중 후보의 썩은 정치론은 선전했지만 지역감정과 부정선거의 벽을 넘지 못했다.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군정종식'을 강조했고,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에는 바꿉시다"를 외쳤다.

군부 독재가 끝나자 경제와 개혁이 대통령 선거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경제 문제는 각종 선거를 좌우하는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외환위기 속에서 치러진 15대 대선(1997년)에서 "경제를 살립시다"를 외쳤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경기 침체로 불만이 많았던 17대 대선(2007년)에서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을 주장했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여당인 새누리당(전 한나라당)은 정권 심판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18대 대선에서 국가 경제를 망친 장본인으로 새누리당을 꼽으며 정권심판론을 외쳤고,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실정에 대한 책임을 민주통합당이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 포스터에 준비된 여성대통령이 강조됐는데 정권심판론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위한 전술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후보도 실패한 정부의 주역이란 역공을 피하고자 '사람이 먼저다'란 구호로 개혁과 복지를 강조했다.

시대별 변천사

선거 포스터는 제헌의회 국회의원을 뽑았던 1948년 총선거부터 사용됐다. 당시 제헌의원 198명을 뽑는데 출마한 후보자는 약 1,000명이었다. 포스터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었기에 포스터 크기와 모양은 제 각각이었다.

숫자 대신 막대기로 기호를 표시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기호 1번은 ┃, 기호 2번은 ┃┃, 기호 기호 4번은 ┃┃┃┃로 표기했다. 당시 문맹률이 80%에 육박했기에 숫자를 모르는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한 셈이다. 막대기로 기호를 표시하는 방법은 6대 대선(1967년)까지 계속됐다. 기호 3번이었던 신민당 윤보선 후보는 숫자 대신 ┃┃┃을 표시했다.

가난했던 시절 선거에 포스터는 무척 중요했다. 후보자 이름을 들어봤어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데 포스터는 무척 중요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열풍이 불었던 3대 정ㆍ부통령 선거부터 포스터에는 구호가 실렸다.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구호는 민주당 조재천 선전부장이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6대 대선 포스터를 살펴보면 후보자 얼굴과 구호, 이력 등을 빼곡하게 실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후보는 이름과 정당만 적은 채 사진을 큼지막하게 배치했다. 7대 대선(1971년)에선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사진과 이름만 강조한 포스터를 제작했다. 박정희, 김대중 후보의 포스터를 제외하면 대선 포스터는 간접선거로 치러진 12대 대선(1981년)까지 얼굴과 구호, 이력 등을 촘촘히 소개했다.

13대 대선(1987년)부터 포스터가 후보자 얼굴과 구호 중심으로 단순해졌다. 당선자 포스터를 살펴보면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13대 대선(1997년)에서 '이제는 안정입니다'를 속삭였고,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는 14대 대선(1992년)에선 "신한국 창조!"를 강조했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15대 대선(1997년)에서 "경제를 살립시다"라고 외쳤다. 공약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보다 압축된 한마디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공약을 나열하는 포스터가 존재한다. 18대 대선에 출마한 무소속 박종선 후보와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 15대 대선에 등장했던 공화당 허경영 후보 등은 각종 공약을 소개했다. 이들 군소후보는 대중과 만날 기회가 적기 때문에 포스터에라도 자신의 주장을 적극 소개해야만 했다.

남장 여자로 유명했던 김옥선 후보는 14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3선 의원이었던 김옥선 후보는 포스터 속에서 영락없는 남자였다. 유신 독재 시절 김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해 의원직에서 제명당했다. 이름만 들었던 유권자들은 포스터를 통해 김 후보 얼굴을 보며 "정말 여자가 맞냐"고 서로 묻는 촌극을 벌였다. 김 후보는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해 감옥에 갇혔다.

15대 대선에선 권영길 건설국민승리21 후보가 자신의 얼굴 대신 태극기를 큼지막하게 배치해 눈길을 모았다.

육군 하사 출신인 승려 김길수 국태민안호국당 후보는 16대 대선(2002년)에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란 표어를 앞세워 출마했다. 당시 대학생 사이에서 '○○으로 대동단결'이란 말이 유행어로 퍼질 정도로 김 후보의 포스터는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동안거(冬安居)를 하는 등 남다른 행보를 보였지만 불교계에선 교세 확장을 노리는 이단이라며 등을 돌렸다. 총 5만 1,104표를 얻었던 그는 대통령이 되면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며 선거 자금을 받는 등 사기 행위로 처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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