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YB '닥치고 공연' 현장올 블랙 리쌍 속사포 랩… 흰 장막의 YB 기타리프갑작스러운 결합에도 남녀노소 즐기는 공연으로 환상적인 조화

2012년 12월 24일 오후 8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에서는 '평화의 전당'이라는 공연장 이름과는 상반된 콘서트 하나가 열렸다. "든든한 형님"들과 "착한 양아치들"은 평화의 전당이란 이름이 풍기는 성스러움에 반기를 들 듯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어떤 반응이 오든, 무엇을 원하든, 그저 '닥치고 공연'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예수 탄생' 이래 가장 화끈하고 도발적인 크리스마스를 역사에 남겼다. 23,24,25일 3일간 1만2,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밴드 YB와 힙합그룹 리쌍의 '닥치고 공연'(이하 닥공) 현장을 다녀왔다.

크리스마스는 존재만으로 로맨틱한 날이다. 올해는 눈까지 내려 거의 10년 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런 날, 조금의 노력이 보태지면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는다.

철장에 갇힌 리쌍, 기괴하고 음산한 콘셉트의 무대. '닥공'의 1부는 로맨틱함을 넘어 섹시했다. 그 동안 TV에서 본 리쌍의 모습에 익숙했던 관객들은 "리쌍은 역시 힙합스피릿!"이라며 반가워했고, "이 숨죽이게 되는 분위기는 뭐지?"라며 긴장했다. 연인들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리쌍의 무대에 빨려 들어갔다.

길과 개리는 '마초' 성향을 한껏 드러냈다. 올 블랙 패션으로 맞춘 두 사람은 개리의 속사포 같은 랩핑과 길의 소울 짙은 음색으로 공연장을 채웠다. 리쌍과 뗄 수 없는 가수 정인의 피쳐링에 관객들의 몸은 힙합 리듬에 취해갔다. '우리 지금 만나'를 부르며 관객들과 "격하게" 만난 이들은 몇몇 팬들과 악수를 하며 '닥치고 친구'가 되기도 했다.

잠시 풀어진 공연 분위기는 YB의 등장으로 다시 쫀쫀해졌다. '블랙 리쌍'이 가고 '화이트 YB'가 무대에 나타났다. 거둬진 흰 장막과 함께 드러난 YB의 모습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계를 모르고 음계를 높인 기타 리프는 관객들의 환상을 자극했다. 관객들은 "머리 털고 같이 느껴주면 된다"는 윤도현의 주문에 걸렸고, 피아노 앞에서 '너를 보낼게'를 부르는 윤도현에게 홀렸다.

사진=쇼노트제공
이날 '닥공'의 백미는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윤도현은 "이번 콜라보레이션 공연은 갑자기 결정됐고 기분 좋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정은 쉽지 않았다. 1,2부로 나누어 각자의 전문분야인 힙합과 록에 집중하는 데도 부족한 시간이 '힙록 합동 무대'의 완성도에도 할애돼야 했다. 윤도현은 "착한 양아치 리쌍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고 즐기는 마음으로 공연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리쌍의 개리 역시 "못난 두 놈을 이끌어준 YB형님들에게 감사하다"며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갑작스럽게 결정됐다는 콜라보레이션 무대였지만 신곡까지 준비할 만큼 YB와 리쌍은 공을 들였다. 공연 콘셉트에 꼭 어울리는 '성난 남자들'이란 뜻의 '매드 맨(Mad Man)'은 이날 공연 순서 중 관객들의 몰입을 최고치로 끌어 올렸다. 크리스마스에 빠져선 안될 캐롤도 '힙록'으로 편곡됐다. 리쌍의 히트곡 '겸손은 힘들어'와 YB의 대표곡 '오 필승 코리아'로 마무리 됐다.

음악적으로 국내 가요계에서 잔뼈 굵은 베테랑으로 입지를 굳힌 이들이지만 '닥공'은 올해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남녀노소가 즐기는 공연'으로 자리잡은 원년이 된 것. 그 배경에는 어느 때보다 활약이 돋보였던 YB와 리쌍의 예능프로그램 행보가 있었다.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 시즌1'으로 마니아 층이 즐기는 록을 전 국민적인 음악장르로 격상시킨 YB. 이후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친화력과 재치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랑을 끌어냈다. 길은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리쌍은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으로 주말 안방극장에서 안 보면 서운한 '예능인'으로 성장했다.

'닥공'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한국에 "예능 이미지가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다행히 TV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될 기회도 있었기 때문에 시너지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40대부터 60대까지 남녀 관객층의 예매율이 높아져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리쌍에게 '닥공'은 더욱 특별한 무대였다. 리쌍은 '무한도전' 방송과는 별개로 연말공연을 목표로 멤버들끼리 준비한 '슈퍼7콘서트'가 고가의 티켓판매 등으로 상업성 논란에 휘말려 전격 취소된 아픔을 겪었다. 리쌍컴퍼니가 주최할 정도로 길과 개리에게 큰 의욕을 안겼던 콘서트가 진심과 달리 왜곡된 면에 멤버들이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개리는 "무엇보다 찌질이 두 놈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도와준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며 성황을 이룬 '닥공'의 공을 객석으로 돌렸다.



강민정기자 eldol@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