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백호의 재즈 데뷔무대 현장삭풍의 끝보다 날 선 노장의 풍부한 성량 어쿠스틱 기타에 녹아바흐 재현한 조윤성과 두 세대의 소통 보여줘

"눈을 감고 걸어도..." 다 말라버려 물기라곤 하나도 없는 갈대의 소리로 최백호는 무대를 열었다. 약간은 수척한 듯한 얼굴에서 토해내는 소리는 삭풍의 끝보다 날 선 것이었으나 풍부한 성량으로 연주장을 압도해 갔다. 바지 밖으로 기게 늘어뜨린 셔츠 차림은 꾸밈없이,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다짐이었을까.

1월 19~20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을 가득 메운 중장년들의 기대는 배반되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 '루팡' 등 이 공연장이 자랑하는 호화 뮤지컬.

무대에 가려 존재감마저 사라져버린 듯했던 그들의 문화 아니었던가. 두 시간 가까이, 인터미션 없이 펼쳐진 열정의 무대는 그들의 집단 무의식을 배반하지 않았다.

개막전 홀에 은은히 퍼지는 얼 클루의 어쿠스틱 기타 재즈는 단순한 무드 음악이 아니었다. '신인 재즈 가수' 최백호의 탄생을 조용하게 축하하는, 일종의 사곡이었다. 무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최백호는 일찍 나와 분주히 무대를 점검했다.

첫 곡 '보고 싶은 얼굴'. 콧소리를 머금은 그가 "허황한 거리"라며 기식음(氣息音)을 객석에 흩뿌리자 아코디언이 끊일 듯 말 듯 뒤를 따랐다. 선율을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노장의 노래와 몸을 섞었다.

탄력을 얻은 목소리의 샤우팅은 더욱 힘찼다. 그러면서 보다 여유로웠다. 바싹 마른 갈대숲을 가르는 허황한 바람 같다가도 극장 구석까지 그대로 꽂히는 비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일부였다.

핵심은 스윙감(swing feel)에 있었다. 그 날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60줄 재즈 가수의 탄생을 선언한 요체였다. 최백호라는,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어덜트 컨템퍼래리한 기성 가수가 지금껏 그를 지탱해 준 버팀목을 박차고 재즈라는 이름의 신지평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말로, 박주언 등 자신을 재즈로 감염시킨 후배들은 대선배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해 내듯 그들이 헌정한 곡들을 부르며 그는 "거듭난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중간에 (가사가) 틀리더라도 모른 척 해 달라"도 했지만 새 모험에 접어든 노장의 엄살이었다.

그러나 보다 인상적인 것은 재즈를 매개로 한 두 세대의 소통이었다. 한국 재즈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 깊은 애정을 표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거듭 나게 해 준 최대의 은인들 아닌가 . 특히 바흐를 나름의 피아노 솔로로 재현한 조윤성에게 보낸 것은 깊은 신뢰를 넘어선 감사였다. 무대 오른편에는 여성 주주들로 이뤄진 전형적 현악4중주단이 클래식의 품위로 홀을 감쌌다.

비록 조윤성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지만 "소중한 인재"라 한 것은 기타, 퍼커션, 아코디언 등 모든 주자들에게 바친 헌사였다.. 특히 자신과 나란히 서서 듀엣을 들려준 말로에 대해 그는 각별한 애정을 표했고, 말로는 답하듯 '베사메 무초'를 열창했다. 그의 말을 빌면 재즈에 대해 무지했던 그를 재즈라는 신지평에 안착시킨 은인이다. "앞으로도 많이 괴롭히겠다"는 말이 너스레는 아니리라.

조윤성의 피아노 반주로 부른 '봄날은 간다'는 백설희도, 정말로도 아닌 최백호만의 것이었다. 육순에 재즈에 의식화돼, 재즈 가수로 거듭난 최백호의 미래를 섣불리 점칠 수 없다. '장래가 몹시 촉망되는' 신인 재즈 가수 최백호의 일취월장을 지켜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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