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곽 드러나는 새 정부 권력 지형도김용준 정치·행정 경험 없어 '관리형 총리'에 머물 가능성대통령 비서실장 파워 커져 소수 인사에게 권한 집중주요 현안 오류 발생 우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새정부 첫 총리로 지명한 뒤 얘기를 나누고 있다. 손용석기자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김용준 위원장이 24일 차기 정부의 초대 총리로 지명됨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권력 흐름도가 어슴푸레 그려지고 있다.

당초 총리 인선을 앞두고 책임총리제 실현을 위한 전문가형, 호남 출신 인사를 고려한 탕평형, 국민통합에 무게를 실은 비영남 중도 진보인사형 등의 관측이 제기됐지만 예상을 깨고 김용준 위원장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택함으로써 '법치와 원칙 확립'을 염두에 둔 인사를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즉 차기 정부를 원칙에 입각한 정통 스타일로 꾸려가면서 내정과 외치를 '박근혜 청와대' 중심으로 철저히 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이야기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지명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가 여러 면에서 질서가 잡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그러면서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권한을 갖는 제2의 최고 행정기관'이라고 헌법에 규정된 국무총리의 권한을 그대로 옮겨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지명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간은 엇갈린다. 특히 야권은 김 후보자의 활동에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박 당선인이 공약했던 책임총리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김 후보자가 갖고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회의실에서 대통령취임식 준비위원회 위원들로부터 취임행사 준비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손용석기자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책임총리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풍부한 행정 경험과 부처 장악 능력이 필요한데 과연 그와 같은 경험과 능력을 지녔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고령에 청력도 좋지 않아 역동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정치와 행정 분야의 업무를 접해본 적도 없어서 차기 정부의 '얼굴마담'수준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938년생인 김 후보자는 75세로 역대 총리 중 가장 고령에 총리 후보자가 됐다. 2000년 김대중정부 당시 73세 때 총리가 돼 5개월 간 재임한 박태준 전 총리를 넘어선 연령이다.

먼저 고령의 김 후보자가 세종시를 오가는 국내외 출장 등 과중한 업무 부담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란 얘기부터 나온다. 또 좋지 않은 청력 부분에서도 업무 수행은 물론 대국민 소통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당장 24일 인수위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부터 불편한 장면이 노출됐다. "질문 요지가 뭐냐", "확실히 못 알아듣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시(질문하라)!"를 외쳐 기자들을 난감하게 했다. 깊이 있고 효율적인 언론과의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국무회의를 주재하거나 외국 총리ㆍ각료 등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런 풍경이 재연된다면 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이다. 여기에 김 후보자가 장애인으로서 군 복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군대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 볼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 후보자가 정치ㆍ행정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일선 장차관에 대한 업무 지시는 물론, 여당과의 당정협의 과정도 주도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관리형 총리'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과 청와대의 파워가 더욱 커질 것이란 예상이 자연스레 나온다. 정부를 장악하고 여당과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도 결국은 모든 것이 청와대의 결정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박 정부의 '얼굴마담'

어쨌든 김용준 총리 후보자 지명을 통해 박 당선인은 친박 핵심이나 유력 정치인을 배제함으로써 또다시 '2인자는 없다'는 자신의 인사스타일을 유지했다는 평이다.

이 같은 '실세 배제'는 박 당선인이 대선 승리 이후 보여준 일관된 인사스타일이다. 김 후보자를 비롯해 대표적 탈박(脫朴) 인사였던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 모두 '실세'와는 거리가 있다.

박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2004년 이후 실세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한 인사를 찾아보긴 어렵다. 2005년 박 당선인의 대표 시절 친박계 핵심이었던 김무성 사무총장과 유승민 비서실장은 채 1년이 안돼 직을 떠났다.

최근 들어선 4ㆍ11 총선 당시 권영세 사무총장에게 공천을 맡겼으나 이후 경선 캠프에선 역할을 주지 않았다. 경선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의 경우 대선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가 자진 사퇴한 뒤 현재까지 거리를 두고 있다.

때문에 실세가 아닌 총리에게 관가가 납작 엎드릴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이전 사례만 보더라도 대학 총장 출신 총리들은 대부분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자리를 뜨곤 했다.

현정부에서 정운찬 전 총리 정도가 그나마 역할을 한 편이다. 정 전 총리의 경우 차기 후보군 물망에도 오르는 등 나름대로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관가는 언제 교체될지도 모르는 총리의 위상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처럼 확실한 정치권 지분이 있거나 고건 전 총리처럼 행정력이 뛰어난 인사가 아닌 다음에는 그저 대통령의 수많은 메신저 중 한 명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장차관은 물론 관가 전체가 5년 내내 '박근혜 청와대'에만 안테나를 곧추 세울 것이란 전망이다.

朴, '與의 처음과 끝'

'책임총리제'의 현실화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많은 가운데 '그렇다면 책임장관제는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새롭게 제기된다. 이 때문에 정가의 모든 관심은 조각(組閣)에 쏠려 있다. 박 당선인의 공언대로 어떤 전문성 있는 인사들이 부처를 완전 장악해 국정을 책임 지고 이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 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5년 만에 부활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매머드급'부처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인선이 가장 큰 관심사이며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진용이 어떻게 짜일지도 주목 대상이다.

김 총리 후보자와 호흡을 맞춰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무엇보다 '실무형'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경제부총리에 경제정책 관련 전권(全權)을 맡길 것이라는 예상도 있기에 더욱 무게 있는 인사가 지명될 것이란 전망이다.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강석훈 인수위원도 16일 경제부총리의 역할과 관련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할 경제 책임 주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당선인의 신임이 두터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주도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 현실 경제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재경부장관 등이 꼽힌다. 관가에서는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등 전직 고위 관료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차기 정부의 '왕장관'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는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을 지낸 황창규 전 지식경제부 국가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과 이석채 KT 회장,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 교수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청와대 비서실장에는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권영세 전 의원, 최외출 전 대선캠프 기획조정특보, 유일호 현 당선인 비서실장, 이정현 당선인 정무팀장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국정원장에는 김회선 의원과 민병환 전 국정원 2차장 등의 이름이 나온다.

권력 집중화 전망 엇갈려

차기 정부가 박근혜 당선인 1인 중심으로 흐를 것이란 전망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부정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정국과 국내 상황 등에 맞춰 발 빠르고 통일된 입장을 내놓을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인 특정 인사들에 의해 국정 운영이 주도될 경우 자칫 중요한 현안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의 안위와도 직결될 수 있기에 더욱 심각하다.

5년 단임제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박 당선인도 필연적으로 임기 후반부에는 레임덕 현상을 맞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이 집행되거나 야권과의 마찰이 심화할 경우 의외로 레임덕은 빨리 찾아올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해 거의 1년을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했다. 박 당선인도 이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총리를 비롯한 장차관이 대통령을 대신해 그 현안에 대한 총대를 메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박 당선인 1인 중심의 국정 운영이 지속된다면 국민은 자칫 모든 화살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킬지도 모른다.

물론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아 책임지고 국정을 수행하는 건 맞다.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도 없는 차기 정부에서 대통령 1인이 국정 현안을 모두 챙기면서 그늘 진 곳과 소외된 이들을 찾아 다니는 봉사활동에도 힘쓰고, 1년에 6~7차례에 달하는 해외 순방도 빠짐없이 소화해 국익 신장을 위한 외교 활동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하는 건 다소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