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25일 출범했다. 아직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정상적인 출범은 늦어졌지만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 완료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첫 걸음을 누구와 함께 떼는지는 분명해졌다.

국무총리와 함께 17부 장관, 청와대 보좌진으로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과 9개 분야 수석비서관이 발표되자 시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성ㆍ시ㆍ경 내각’이라는 신조어였다.

고려대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이 다수를 차지해 '고ㆍ소ㆍ영 내각'이라고 불렸던 5년전 이명박정부의 조각에 빗대 새 정부가 성균관대와 고시, 경기고 출신이 많이 포진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내각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성균관대 법학과 출신이고 청와대에서는 허태열 비서실장과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이남기 홍보수석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등이 성균관대 출신이다. 30명 중 7명이 성대 출신으로 서울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또 '고시파'도 국무위원 전체 18명 중 11명, 청와대는 12명 중 6명이고 경기고 출신도 전체 30명 중 7명에 달한다. 가히 ‘성시경 내각’이라고 불리울 법도 하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고소영 내각’이란 비아냥을 받은 것은 영남 출신에 고려대를 졸업했고 소망교회를 다니는 신자인 MB가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연이 닿아 있는 측근 인사만 골랐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ㆍ시ㆍ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서강대 출신인 박 대통령이 특별히 성균관대를 키워줄 이유도 없거니와 고시 출신과 경기고 출신에 남다른 애정을 가질 리도 더더욱 없다. 지역 형평성과 친박을 배제한 전문가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다 보니 우연찮게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데에서 이명박정부 조각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특정 학맥이 다수를 차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은 이 같은 출신 학교가 아니다. ‘성시경 내각’이란 말에 가려서 간과된 측면이 바로 중용된 인사들의 출신 지역이다.

30명의 내정자 중 서울 등 수도권이 10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ㆍ경남(PK)이 7명으로 뒤를 잇고 있다. 호남은 광주ㆍ전남 4명에 전북 1명 등 5명이고, 이어 충청(4명), 대구ㆍ경북(3명), 강원(1명) 순이었다. 제주는 1명도 없다.

부산 경남(PK)이 7명으로 2위에 올라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PK를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총리, 靑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에 PK 중용

PK출신 인사가 단순히 많다는 것뿐 아니라 이들이 지명된 자리가 모두 국가의 기간정책을 좌우하는 핵심 포스트란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각각 경남 하동과 김해다.

내각에서는 서승환 국토교통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경남 양산과 부산 출신이다.

청와대에서는 허태열 비서실장과 최성재 고용복지수석 내정자가 경남 고성, 박흥렬 경호실장 내정자가 부산이다.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및 경호실장 등 박 대통령과 늘 얼굴을 맞대야 하는 핵심 3자리가 모두 PK출신인 것이다.

책임총리란 명제 아래 박근혜정부의 총리는 이전 정권의 총리와는 위상이 다르다.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장관들을 지휘하고 실제 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

더구나 외국 정상 부부가 방한했을 때 총리 부인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할 수도 있는 정치적 의미도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단순히 대통령 보좌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박정희ㆍ전두환정부 청와대에서 10여년 경력을 쌓은 허태열 실장이라면 총리와 호흡을 맞춰 정부의 핵심 정책 추진에 상당한 조율 역할을 맡을 게 분명하다.

박흥렬 경호실장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에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육사 동기다. 박 대통령이 박 실장을 통해 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파악하면서 군 통수권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이렇듯 정권의 가장 중요한 3대 축이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ㆍ경호실장인데 이들 자리를 모두 한 지역 출신으로 메웠다는데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핵심 3인방이 호흡을 맞춰 정국 운영을 지원해달라는 교과서적인 의미 외에도 이들 출신지를 향한 박 대통령의 구애 의지도 담겨 있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호남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호남 출신을 핵심 요직에 앉히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데다 중용한다 해도 이 지역에서 탕평 인사라는 칭찬을 받기는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의 고향인 TK는 사실상 역차별을 받은 셈이지만 그렇다고 TK 민심이 박 대통령을 떠날 리는 없다. 변하지 않는 든든한 우군세력이기에 박 대통령이 의식적으로 홀대하더라도 용납할 것으로 믿는 것이 분명하다.

수도권과 충청은 동향 출신 인사들의 요직 기용에 대해 영ㆍ호남처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분위기다. 영ㆍ호남에 비해서는 의식이 도시화한 측면이 있어서다.

PK는 좀 다르다.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출신 인사를 중요하느냐 여부에 따라 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느낌이 전혀 달라질 수가 있다. 박 대통령이 30명의 고위직 인선에서 무려 7명을 이곳 출신 인사로 기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PK에 대한 트라우마도 한 원인

사실 역사적으로 박 대통령과 PK의 관계는 애증으로 점철돼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7대 대통령 선거에서 PK지역에서 압도적 득표를 얻어 이 곳이 당선에 일등 공신이었다. 부산에서는 55.7%, 경남에서는 73.4%의 득표율을 얻어 김대중 신민당 후보를 크게 제쳤다.

투표 때에는 고향인 TK지역과 함께 철저한 우군이었지만 집권 이후에는 지역 민심이 크게 변화했다. 더구나 제1 야당인 신민당의 당수가 PK 출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되면서 박 전 대통령에게 PK는 지역적으로 골치덩이가 됐다. 1979년 10월 초 김 전 대통령의 총재직 박탈과 국회의원직 제명이 결정되자 PK 민심은 반(反) 유신으로 들끓었고, 결국 10ㆍ26사태에 단초가 된 부산ㆍ마산 항쟁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ㆍ마산 지역에서 벌어진 반 유신독재 투쟁이다.

박 전 대통령 시해 직전 궁정동 안가의 술자리에서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이 문제로 박 전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았고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 이를 놓고 김 전 부장을 은근히 비난했던 사실이 훗날 수사 발표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PK 민심을 집권 내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맞붙었던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도 PK이며, 미국에 머물며 호시탐탐 정치권 복귀를 꿈꾸는 안철수 전 대선 후보도 PK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PK가 박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준 셈이지만 이들 야권 주자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지역 민심이 어떻게 요동칠지 장담하기 어렵다. 즉 혹시라도 정책이나 인선에서 PK가 현정부에게 홀대를 받는다고 생각할 경우 민심 이반이 급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의식한 박 대통령이 고위직 인선에서부터 PK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PK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이후 TK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가 김종필 전 총리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만들면서 TK 출신 의원들이 대거 합류했다. 이 때문에 1996년 15대 총선에서 TK의 상당 부분 의석을 신생 정당인 자민련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TK는 ‘우리가 남이가’란 대선 유행어를 만들며 PK 출신 김영삼 후보를 전폭 지지했는데 집권 이후 별다른 수혜가 돌아오지 않자 YS 정부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을 수도 있다.

PK 우호 정책 나올까

인선에서는 PK를 껴안았다 하더라도 지역 민심에 직결되는 것은 역시 정책이다. 그 중 지역 현안인 신공항 문제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5일 부산시청 앞에서는 신공항 가덕도 유치 염원을 담은 수천 개의 종이비행기가 하늘을 날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압박성 시위다.

허태열 실장도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덕도 공항 유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경북 등 다른 지역을 후보지로 마음에 품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부산 저축은행 사태도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은 현정부의 국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또 새누리당은 대선 과정에서 부산을 국제영상콘텐츠밸리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센텀 영화·영상콘텐츠밸리와 아시아 종합촬영소 등을 구축해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토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또 아시아·영상 콘텐츠 펀드를 조성해 영화·영상 콘텐츠산업 및 관광산업 등의 융합을 시도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이 밖에 ▦남해안 철도고속화사업 단계적 추진 ▦부산 신발산업 육성 ▦도시재생사업 시행 및 사상 스마트밸리 조성 등도 약속했다.

하지만 부산 유치 가능성이 높아 보이던 해양수산부는 결국 세종시에 두는 것으로 확정됐다. 부산 주민 입장에서는 정부 시작부터 그리 기분 좋은 뉴스는 아니지만 별반 표현은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구애로 시작된 PK와의 관계가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 이곳 민심이 향후 5년의 성적표를 좌우할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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