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전경련 회장김우중 해외 도피… 손길승 임기중 구속 불명예

왼쪽부터 이병철, 정주영
'재계 대통령'이라 불리며 큰 명예를 안겨다 주는 전경련 회장직이지만 역대 회장들에게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전경련 회장들은 만만찮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됐던 기업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든 '경제재건촉진회'가 모태인만큼 전경련 회장들의 기구한 삶은 이미 예견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전경련의 산파역할을 한 것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다. 이 창업주는 평생을 통틀어 딱 한 번 공적 직책을 맡았는데 한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전신) 회장이 그것이었다. 이 창업주는 당시 부정 축재 등의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재계의 이미지 쇄신에 앞장섰다. 특히 외자도입안을 필두로 하는 정책들을 제안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탄생시킨 것에는 전경련 회장으로서 이 창업주의 공이 컸다.

이 창업주와 함께 전경련 역사에서 돋보이는 인물이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이다. 정 창업주는 1977년~1987년까지 총 11년 동안 회장직을 맡으며 재계를 이끌었다. 정 창업주는 세일즈외교를 통해 한미관계 개선, 88서울올림픽 유치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을 듣는다. 1980년 들어선 신군부가 재계 장악을 위해 주요 경제단체장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려 했을 때 정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은 권력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뚝심으로 버틴 일화는 유명하다.

정 창업주에 이어 전경련 회장직을 맡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재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을 들였다. 1987년 6.29 이후 전경련에 비난이 쏠리던 시절 회장을 맡은 구 명예회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행보였던 셈이다. 경제사회개발원을 설립하고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재계의 힘을 모으기도 했다.

고 최종현 SK 명예회장은 1993년~1998년 전경련을 이끌었다. 최 명예회장은 문민정부의 업종전문화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고 '국가경쟁력 강화사업'을 통해 대기업 관련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규제를 다 풀어라"라며 정치권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SK 세무조사라는 역풍을 맞은 바 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할 때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맡고 있던 대우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이다. 이후 김 전 회장은 검찰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주하는 불명예를 안아야만 했다.

손길승 SK 명예회장도 임기 중 구속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 손 전 회장은 1998년부터 2002년 8월 사이 SK해운에서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7884억원을 빼내 선물투자에 사용하고 대선 때 한나라당에 100억원 등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손 전 회장의 비자금 사건으로 전경련 또한 큰 이미지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