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봉갤러리 '책으로 보는 단군오천년'전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창립 50주년 전시삼국유사 정덕본 등 6개월간 3000점 선보여태조 개국공신 포상 기록 '좌명공신녹권' 필사본 일반인 첫 공개

30여년간 수집한 3000여점의 책으로 단군 50년 등 전시회를 여는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가 12일서울 종로구 관훈동 화봉갤러리에 전시된 광개토왕비 탁본 앞에서 수집한 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신상순기자
한 나라의 브랜드나 위상을 궁극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잣대는 역사와 문화다. 매년 반복되는 독도 분쟁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최고의 무기는 구호가 아닌 역사의 증좌들이다.

이들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생명력을 갖지만 '기록'만큼 견고한 틀은 없다. 책은 가장 일반적인 '기록의 틀'이다. 특히 시대를 담아온 책은 그 주체들의 현재를 이루고 미래를 열어간다.

이런 우리나라의 책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관훈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책으로 보는 단군오천년>전이다. 고서 수집에 30여년을 바친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79)가 회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장장 6개월에 걸친 전시회를 기획했다. 화봉문고에서 30여년 동안 수집한 고서와 자료를 선보이는 동시에 책과 함께 걸어온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기획전은 '책으로 보는 단군오천년'(3월5~30일)을 시작으로 ▦한국의 고활자(4월3~28일) ▦한국 문학작품 산책(5월1~29일) ▦한국 교과서의 역사(6월1~29일) ▦고문서 이야기(7월1~31일) ▦무속사상, 불경·성경·도교·동학 자료(8월3~31일) 등을 소주제로 6개월에 걸쳐 열린다.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는 첫 전시 '책으로 보는 단군 오천년'에는 총 271종 491점의 고서 및 유물이 관객을 맞는다. 특히 '눈으로 보는 화봉문고 50년'을 주제로 한 물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좌명공신녹권
첫 전시는 단군조선개국부터 삼국ㆍ고려ㆍ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탄생시절까지를 시대 순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고문서들로 구성됐다. 이 중에는 단군의 기록이 최초로 등장하는 고려시대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를 조선 중종 7년(1512년)때 목판화로 찍은 (正德本)을 비롯해 광개토대왕릉비 탁본, 이순신 장군 유고집인 '이충무공 공전서', 조선 최초의 교과서 '동몽선습', 한국 최초의 국한문혼용 기행문인 '서유견문' 등 사료적 가치와 의미가 큰 고문서들이 상당하다.

특히 태조가 개국공신 47명을 선정해 좌명공신 호칭을 내리고 포상한 기록을 담은 '(佐命功臣錄券)' 필사본과 정조가 경서에서 좋은 문장을 골라 편집한 '(御定諸圈)' 필사본은 이번에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3,000점의 수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여승구 대표는 "단군신화에 대한 기록부터 그동안 일반에 선보이지 않았던 고서들을 꽤 준비했다"며 "우리 역사 5000년을 직접 보고 배우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02)737~0057 박종진기자

● 여승구 대표는


30년간 10만권 모은 고서 수집가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는 30여년에 걸쳐 10만권의 고서(古書)를 모은 국내 몇 안되는 수집가다. 여 대표는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 역사의식을 갖고 후대에 남을 가치 있는 책을 모아왔다는데 더 의미가 있다.

1963년 한국 최초로 브리태니커를 들여오는 등 외국 서적ㆍ잡지 수입상으로 큰 돈을 번 여 대표는 1976년 <월간 독서>를 창간해 독서대상ㆍ독서문학상ㆍ문화세미나 등 독서운동을 펼쳤으며, 1982년에 주최한 '울북페어'에서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을 들고 온 사람에 끌려 고서수집가의 길로 들어섰다.

어정제권
이후 문학박물관을 설립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고서ㆍ유물 수집이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돼 10만여점의 고서를 수집하는 동안 서울시내 빌딩 두 채ㆍ자회사 매각대금이 모두 들어갔다.

여 대표는 2008년 모란갤리리를 인수해 화봉갤러리로 새롭게 개관했으며, 2013년부터 수천 점의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관리ㆍ전시ㆍ대여ㆍ유통하는 화봉미술은행 업무도 시작했다. 특히 1만여점의 고서를 모아 일반 연구자들에게 열람을 허용하는 화봉서지학문고도 운용하고 있다.

여 대표는 한평생 모은 책이지만 그는 지금이라도 국립 책 박물관이 생기면 미련 없이 기부하겠다고 한다. "미래의 후손을 위해, 그리고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책만큼 귀중한 자산은 없다.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 등 뿔뿔이 흩어져 있는 중요 고서와 문헌들을 한 데 모아 우리나라의 책과 인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 책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료를 기꺼이 기증할 생각이다."


삼국유사 정덕본

jjpa가 @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