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 소송전에 라면·생수 전쟁까지신격호-춘호 라면으로 격돌… 백두산 생수로도 '티격태격'신격호-준호 유산 법정타툼… 우유사업에서도 대립각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나무는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잎이 흔들려서 잠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는 이 속담은 많은 형제ㆍ자매들로 주목을 받고 있는 범롯데가 신씨 일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구다. 무려 10남매에 달하는 범롯데가에는 장남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을 필두로 신춘호 농심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등 한일 양국의 재계를 주름잡은 총수들이 포진해있다.

현재 규모 및 위상이 더욱 큰 것은 한국에 위치한 롯데이지만 사실 롯데는 일본에서 처음 설립됐다. 새로운 세상에서 기회를 찾겠다며 밀항선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건너간 신 총괄회장이 1949년 세운 회사가 바로 롯데였던 것이다. 큰형 신 총괄회장이 롯데를 세운 이후 신씨 일가의 형제들은 상당 기간 힘을 모아 회사를 잘 이끌어나갔다.

그러나 현재 범롯데가의 형제들은 말 그대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지 오래다. 끈끈한 형제간의 우애가 지금처럼 어그러지기까지는 여러 사건이 있었다. 범롯데가 형제간의 불화는 주로 신 총괄회장이 여타 형제와 겪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기인해왔다.

롯데-농심 라면·생수전쟁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춘호 회장과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라면' 때문이었다. 일본롯데에서 이사 직함을 달고 있던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에게 한국에 돌아가 라면사업을 하겠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니 그만두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형의 만류에도 신 회장은 1965년 한국에 돌아와 일본롯데의 이름을 딴 롯데공업을 설립했고 그 해 '롯데라면'을 최초로 선보였다. 다행히 라면사업은 성공했으나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이후 신 회장은 '롯데'의 이름을 쓰지 말라는 신 총괄회장과 충돌, 결국 롯데공업의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하며 롯데에서 분리해나왔다.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이후로도 지속돼 부친인 신진수씨의 제사에 신 회장이 불참하는가 하면 신 회장의 고희연에도 신 총괄회장이 참석하지 않는 등 불편한 모양새가 계속돼왔다.

형제간의 갈등은 롯데-농심 간 라면ㆍ생수 전쟁으로도 이어졌다. 농심의 분가 이후 서로의 사업영역을 한동안 지켜주던 묵계가 깨진 것이다. 롯데제과가 스낵사업을 시작하고 농심이 유통업(1981년 메가마트 인수), 호텔업(1985년 동래관광호텔 인수)에 뛰어들면서 시작된 양사의 사업영역 침해 갈등은 2010년 롯데가 '롯데라면'을 각각 부활시키면서 극에 달했다.

롯데와 농심은 최근 '백두산 생수'를 놓고서도 전쟁 중이다. 그룹의 캐시카우였던 '삼다수' 사업권을 잃어버린 농심이 야심 차게 시작한 백두산 생수 사업에 롯데칠성음료가 뛰어든 것이다.

농심은 신 회장의 특명으로 수년간 전략적으로 계획한 끝에 백두산 천연광천수인 '백산수'를 중국에서 출시했다. 그러나 롯데칠성음료가 지난해 백두산 자연보호구역 내에서 생산하는 '백두산 하늘샘'을 선보이며 양사의 치열한 물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앞서 롯데칠성음료는 농심이 놓친 삼다수 유통권 입찰에도 참가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땅' 싸움이 우유전쟁으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준호 회장은 현재 롯데제과가 위치한 서울 양평동 부지를 놓고 격돌한 바 있다. 양평동 부지 논란은 1996년 정부가 부동산실명제를 시행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전국 일곱 곳의 토지 37만평 (약 110만㎡)를 회사 명의로 변경하려 했지만 신 회장의 반대에 부딪혔다. 신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받은 유산"이라며 양평동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에 신 총괄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의신탁 해지로 인한 소유권이전 등기청구 소송'을 냈고 신 회장과의 법정다툼 끝에 결국 승리했다. 이듬해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45%를 받으며 경영영역이 대폭 축소된 신 회장은 2007년 롯데우유를 갖고 그룹에서 분가했다. 또한, '롯데' 브랜드를 사용하지 말라는 신 총괄회장의 요구에 따라 지난 2008년 '푸르밀'로 사명을 변경했다.

푸르밀이 계열분리해나간 이후 한동안 우유사업에 진출하지 않았던 롯데는 2010년 말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하며 싸움을 걸었다. 이에 푸르밀은 농심과 연합광고를 펼치며 롯데를 견제, 눈길을 끌었다. 신춘호-신준호 회장이 큰 형 신격호 총괄회장에 맞서기 위해 손을 잡은 당시 모습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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