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김비오 후보 적극 지원개성공단 기업인들과 간담회박근혜 대북정책에 훈수 등… 연일 광폭 행보 이어가내년 6월 지방선거서 안철수 신당과 일전 대비사전 준비작업 돌입한 듯

문재인(왼쪽) 민주통합당 의원이 13일 부산 영도구 영선동 남항 시장 일대에서 4·24 부산 영도재선거에 출마한 김비오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며 시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선 패배 후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출석 정도의 제한적인 동선만 유지하면서 사실상 공개적 활동을 자제해온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4ㆍ24 재ㆍ보선 지원을 계기로 정치권에 전면 복귀하는 분위기다.

문 의원은 부산 영도에서 출마한 민주당 김비오 후보의 지원을 계기로 지역구인 부산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며 '다시 한번 문재인'이란 이미지 각인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문 의원은 박근혜정부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던질 태세다. 당장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해 넌지시 북측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아직 국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책을 제대로 펴지 않은 상태이기에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반대하고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부적절 의견을 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임명 강행을 계기로 할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세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국세청장을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내부를 향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5ㆍ4 전당대회를 앞두고 문 의원이 속해 있는 주류 친노 진영의 공개적 활동은 그다지 득표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끝나고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강한 야당'을 기치로 활동의 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번 4ㆍ24 재보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가 국회에 등원해 새 정치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경우 그에 걸맞은 야권 수장으로서의 정치 행보를 밟을 생각이다. 가만히 앉아서 '안철수 신당'에 민주당의 상당 부분이 잠식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1953년생인 문 의원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연령적으로 보면 다음 대선에서 65세가 된다. '한번 더'를 외치기에도 손색이 없는 나이다. 문 의원은 이를 위해 지금부터 서서히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정치 생활을 부산에서 시작했기에 재기의 모습도 다시 부산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차기 대선을 향한 문 의원의 재도전 의지가 이렇게 꿈틀거리고 있다.

부산에서 재출발

문 의원은 최근 김 후보 지원을 위해 부산 남항시장을 방문했다. 형식은 김 후보 지원이었지만 지난 대선의 유세 과정을 재현한 듯 했다.

문 의원을 만난 상인들은 악수를 하면서 "재래시장 장사 좀 잘 되게 해주소", "고가도로 때문에 (인근 시장 상권이) 다 죽겠소"라고 하소연했다.

문 의원도 적극적으로 화답하면서 한 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특히 어떤 상인은 "물건들을 옮기느라 손이 더러워져 악수하기 미안하다"며 손을 뒤로 뺐지만 문 의원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아 끌며 김 후보의 지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또 한 대학생이 문 의원의 책에 사인을 요청하자, "사람이 먼저다"라고 대선 때의 슬로건을 그대로 적었다.

여기서 문 의원은 "(박근혜정부가) 부산 민심을 너무 모른다"고 운을 뗀 뒤 "지난 번 대선 때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내가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남북관계 발전, 지방균형 발전, 새 정치 등의 가치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때 했던 약속들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이어 14일에는 영도 올레길에서, 17일에는 노인복지회관과 장애인복지관 등을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김 후보와 함께 선거 운동을 계속했다. 김 후보 캠프와 조율된 일정 이외에도 문 의원은 별도로 선거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민주당 김비오 후보는 새누리당 김무성 후보에 비해 큰 격차로 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문 의원은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김 후보 지원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적어도 김무성 후보의 득표율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끌어 올린다면 나름대로 큰 성과라고 자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비오 후보 측은 "여러가지 여건상 새누리당 김 후보에게 열세인 편이지만 문 의원의 지원이 천군만마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문 의원 측도 명분은 자당 김비오 후보 지원이지만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문 의원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승패와 관계없이 흡족한 표정이다.

문 의원은 이어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에 반발, 단식에 들어간 김용익 의원의 농성 현장을 직접 찾는가 하면 소속 상임위인 기재위에서도 추가경저예산안 편성 등을 놓고 정부와 각을 세우는 등 상임위 활동도 본격 재개했다. 부산에서 시작한 재출발의 바람이 서울을 향해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로 정부에 훈수

선거 지원으로 공개활동을 시작한 문 의원은 정부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쓴소리를 하기보다 한반도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 제 목소리를 냈다.

문 의원은 1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갖고 "박근혜정부가 이명박정부와 다르게 대북 정책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것 같다"며 "(북한이) 박근혜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의원은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북한이 대화에 응하도록 명분을 주면서 실질적인 대화 제의를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며 "남북간의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은 표현 하나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문 의원은 또 "개성공단은 참여정부에서 이뤄진 사업으로 그 자체가 통일로 가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반드시 정상화시켜야 하며, 공단 정상화는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은 개성공단 진출 당시 정부의 권유로 정부를 믿고 한 것인데, 정부가 이제 와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마음이 무겁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계속 역할을 찾아보겠다. 내가 할 일이 있으면 힘을 보태겠다"고 우회적으로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당시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문 의원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통일부에 개성공단 방문을 신청했을 정도로 개성공단 문제에 애착을 보여왔다. 때문에 이날 간담회도 문 의원의 제안으로 이뤄졌을 정도다.

자신이 관심을 쏟고 있는 개성공단 등 북한 문제에 이어 문 의원은 앞으로도 국가 주요 현안에 대해 계기가 있으면 직접 챙기거나 입장을 밝히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재개의 계기가 부산 영도 선거 지원이었다면 정치권 중앙무대로의 복귀 신호탄은 개성공단 등 북한 문제가 된 셈이다.

안철수와 재격돌

문 의원이 정치를 본격 재개하자 그가 반드시 넘어야 할 '안철수'라는 커다란 산이 또다시 다가왔다. 상황 변화에 따라 금방이라도 야권의 무게 중심이 안철수신당 쪽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4일 개최되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비주류 측 김한길 의원이 당권을 잡을 게 유력한 상태다. 주류인 친노 진영은 당분간 민주당의 향배를 김 의원 등 비주류 쪽에 맡겨 놓을 수밖에 없다.

이에 문 의원은 당 지도부와는 별도로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친노 진영을 비롯해 범 주류 측 의원들을 단단히 붙잡아 놓을 생각이다. 안철수신당이 창당되면서 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경우 민주당은 사실상 와해 상태를 맞을 수밖에 없기에 그 정지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YS와 DJ가 손잡고 만든 신한민주당이 창당되자 단번에 야당 지지층은 민주한국당을 버리고 신민당으로 표를 던졌다. 결국 총선이 끝나자마자 당선된 민한당 의원들은 거의 모두 신민당으로 말을 갈아 탔고 민한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향후 안철수신당이 세를 얻어갈 경우 1985년의 야권 재편이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문 의원을 위시한 친노 진영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가 이것이다.

때문에 문 의원은 일단 다음달 출범하는 새 지도부의 활동상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당권을 향해 움직일 태세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가 1차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신당과 민주당이 일전을 벌여야 할 승부처가 이곳이다. 여기서 야권의 대주주 격인 호남이 안철수신당에 힘을 실어줄 경우 민주당은 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 문 의원이 아무리 부지런히 호남을 들락거린다 해도 호남의 민심은 새누리당을 꺾을 수 있는 세력에게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고배를 마신다면 안철수신당으로 상당수 의원들이 20대 총선을 겨냥해 옮겨 갈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민주당은 옛 열린우리당 잔존 세력만 남는 친노 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문 의원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겠지만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같은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문 의원이 부산 선거 지원을 계기로 서둘러 전면에 나선 것이다. 더 이상 복귀 시점을 늦췄다가는 또다시 안철수 열풍에 휩싸여 제대로 도전장을 내밀어보지도 못한 채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마는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문재인과 안철수. 차기 대선을 향한 그들의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고 있고, 그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 문 의원이 정치적 기지개를 다시 켜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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