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옥 '시각과 인식'전

3년만이다. 한중옥(54) 작가의 '제주'를 다시 만난 건. 서울 경운동 그림손갤러리에서 펼쳐진 한 작가의 '제주'는 한층 깊어지고 세련됐다.

3년 전 인사동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의 '제주'는 바위, 해녀, 소나무, 부처 등 제주의 다양한 소재를 선보였는데 이번 전시 '시각과 인식'에서는 제주도의 '돌'만을 다뤘다. 그런데 구상적 극사실에 가까웠던 예전의 돌과는 많이 다르다.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화면이 훨씬 발을 오래 머물게 한다. '제주의 돌'이상이다.

오래 전 "크레파스를 매개로 '실존적 삶 앞에 흐르는 인간 의식의 형상화 작업'에 전력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기대 이상으로 실현된 느낌이다.

한 작가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국내외적으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크레파스에 대한 종래의 고정된 인식과 활용의 한계를 넘어 독창적 가치를 발현함으로써 특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혼이 담긴 치열한 작업과 창조적 조형의식이 중요하다"고 한 그의 말대로 크레파스라는 재료적 특성은 이번 전시에서 더욱 부차적인 인상을 준다. 그만큼 작가의 치열하고 내밀한 의식이 촘촘하게 새겨진 '돌'이 먼저 눈으로, 가슴으로 와 박힌다.

고향인 서귀포의 돔베낭굴 바닷가에서 늘 용암석을 봐온 작가는 그 돌(바위)에서 제주의 역사와 개인의 삶, 시간의 무게를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 했다. 그런 돌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묵직함 감흥으로 인생과 역사와 자연을 돌아보게 한다.

더욱이 크레파스로 여러 층 두텁게 올리고, 예리한 칼날로 긁어내고 새기고 문질러 제주 돌의 특유의 형태미를 창출하는 과정은 마치 삶을 조각해가는 듯 하다.

작가는 제주에 대한 애정을 오롯이 '돌'에 담았다. 돌의 표면은 추상적인 형상을 지니면서 보는 이의 눈에 온갖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한다. 움푹 페인 구멍으로 여겼는데 어느 순간 피부가 볼록한 돌이 되는 착시. 그래서 다시 보게 되는 '돌'에서 제주를, 시간이 엮어낸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02)733-1045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