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속엔 크낙새 울고 청정계곡선 열목어 노닐어더덕·송이버섯도 지천에 밤이면 은하수의 향연계곡길 따라 걷다보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비수구미계곡은 항상 물이 넘쳐흐른다.
"드드드드드득....드드드드드득...."

어느 초여름 날 새벽녘. 작은북이나 목탁을 연달아 빠르게 두드리는 소리 같은 트레몰로 음률이 자욱한 안개를 뚫고 울려 퍼진다. 크낙새 소리다.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크낙새는 '골락골락' 우는 소리가 10여리 밖까지 들릴 만큼 커서 골락새라고도 일컫는다. 이 새는 딱따구리처럼 나무를 쪼아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있는 벌레를 먹고 살아가는데 새벽 공기를 울린 트레몰로는 바로 그 소리다. 크낙새가 막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크낙새는 숲이 울창하고 고목이 많은 곳에서 산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희귀한 텃새로 천연기념물 197호로 지정되었다(천연기념물 11호로 알고 있는 이도 있으나 그것은 광릉의 크낙새 서식지를 가리킨다). 이제는 생태 환경 훼손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진 크낙새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 자연은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반가운 증거다.

여기는 비수구미(秘水九美).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인가. 그러나 마을 뒷산 바위에 비소고미금산동표(非所古未禁山東標)가 새겨진 점으로 미루어 옛 이름은 비소고미였을 것으로 보인다. 금산동표는 조선 초기에 궁궐 건축에 쓰일 소나무 군락을 보호하기 위해 무단 벌목을 금지하는 표시였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혜택을 누리는 오지 마을

비수구미 마을 앞 계곡에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장장 시오리가 넘는 비수구미계곡은 원시 그대로의 빽빽한 숲 터널을 헤치고 적막하게 흐른다. 1급수에만 산다는 열목어, 기름종개, 버들치, 산천어 등이 제 맘대로 휘젓고 다니는 청정 계곡으로 그냥 떠 마셔도 될 만큼 물이 맑으며, 낚싯대를 드리우면 팔뚝만한 쏘가리가 귀찮을 만큼 올라온다.

산수 건강한 곳에서는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혜택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비수구미가 그렇다. 음력 정월부터 석 달 동안에는 마실 물이 따로 필요 없다. 그 귀한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수액으로 밥을 지을 정도니 보통 축복이 아니다. 더덕과 송이버섯도 지천으로 널려 있고, 2009년에는 일반 산삼의 10배 크기인 187.5g의 80년 묵은 산삼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거금을 들이고도 차릴 수 없는 귀한 먹거리들로 식탁이 풍성하다. 밤이면 쏟아질듯 하늘을 메운 은하수의 향연을 벗 삼아 약초와 산열매로 빚은 토속주도 맛볼 수 있다.

비수구미에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외지인들이 모여들어 주로 화전을 일구며 살기 시작했다. 한때는 100여 가구나 살았지만 1970년대 초반 화전이 금지되면서 거의 다 떠나고 지금은 세 가구만 단출하게 남았다. 비수구미는 그래도 인근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다. 파로호 하류로 방개, 법성, 지둔지 등의 마을이 이어지지만 고작 한두 가구만 산다.

2시간 남짓한 계곡길 트레킹에 심취하면서

비수구미로 가는 길은 육로와 물길 두 가지다. 해산령에서 내려오는 육로는 지프형 차량이 간신히 다닐 만한 험로였지만 그나마도 2001년 수해로 망가졌다. 그 후 길은 복구되었으나 주민들의 요청으로 일반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여 지금은 해산령 입구에 차단기가 걸려 있다. 그래서 미리 전화 연락을 한 뒤, 평화의 댐 못미처 수하리 나루에서 주민들의 모터보트에 올라 10분쯤 호수를 헤쳐야 비수구미에 닿는다.

마을 계곡 옆에 초롱꽃이 피었다.
한데 2002년 평화의 댐 보강 공사로 화천댐이 물을 빼면서 파로호가 바닥을 드러내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파로호 주변 어민들은 생계가 막막해졌고 생태계도 파괴되었으며 비수구미로 가는 뱃길도 막혔다. 주민들은 비상수단으로 호반에 임시 도로를 내기도 했다. 그후 파로호에 다시 물이 차면서 뱃길은 제구실을 되찾았다.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비수구미. 이번에는 계곡 따라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를 더듬는다. 1986년 열린 아시안게임을 기념하여 뚫린 길이 1986미터의 해산터널을 빠져나오면 해산령이다. 차량 통행을 막는 차단기를 지난 다음,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임도를 따르는 길이 정겹다. 산새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여느 명산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계곡 풍광에 심취하면서, 2시간 남짓 내려오면 비수구미 마을이 반긴다. 산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진 아늑한 마을이 고향을 찾은 듯한 감회에 젖어들게 하여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 찾아가는 길

46번 국도를 타고 춘천 쪽으로 달리다가 의암교 앞에서 화천 방면으로 간다. 화천에서 평화의 댐 쪽으로 달리다가 해산터널을 지나면 육로 트레킹 코스 입구인 해산령이고, 12㎞ 남짓 더 달린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를 타는 수하리 나루에 이른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과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으나 화천에서 비수구미 입구 쪽으로 가는 버스는 없다.

비수구미로 가는 모터보트
■ 맛있는 집

비수구미 마을의 민박집들은 을 토속 별미로 낸다. 10여 가지의 자연산 나물에 된장국이나 찌개가 곁들여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웰빙 상차림이 입맛을 돋운다. 처음에는 나물을 반찬 삼아 먹다가 절반 정도 남기고는 고추장과 참기름에 썩썩 비벼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화천읍내에서는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인근 춘천 막국수의 명성에 가려 있을 뿐, 화천 막국수도 그에 못지않은 별미다.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서야 반죽해 면을 뽑는데 국수 가락이 부드럽다. 다진 파에 돼지고기를 갈아 넣은 양념장도 독특하니 일품이다. 식성에 따라 육수나 동치미를 부어 먹는데 육수는 구수하고 동치미는 시원한 맛을 낸다. 화천읍내의 여러 집 가운데 천일막국수(033-442-2127)와 삼대막국수(033-442-2742)가 유명하다.


비수구미로 가는 임도 트레킹 코스
시골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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