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 조사하며 고강도 압박…이명박 전 대통령, 전두환 은닉재산 이슈화로 '맞불''혈투냐 화해냐' 6월 말 '윤곽'전두환 추징금·원전비리 관련… 과거정부 거론 강하게 비판'MB맨' 원세훈 선거법 기소

박근혜(왼쪽)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남북회담, 원전비리 등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정부에서는 해결 않고 뭘 했나. 새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난센스다."

박근혜 대통령이 단단히 뿔 났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 원전(原電) 비리 등과 관련해 '과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우선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추징금 미납 문제와 관련해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 못 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면서 "차제에 새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난센스적인 일"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원전 비리에 대해선 "이런 문제는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쌓여온 일로 여야 정치권 모두 책임감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며 "새 정부에 전가할 문제는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 대통령이 거론한 문제들은 이명박 정부는 물론 민주당 집권기에도 걸쳐 있는 것들이다. 전직 대통령 추징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언급은 야당의 공세에 대한 비판 성격이 강한데 반해 원전 비리의 경우는 MB 정권 책임론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7일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어머니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모인 원불교 김윤남(신타원 김혜성) 원정사(圓正師)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박 대통령의 '뿔 난' 발언은 사실 전직 대통령 추징금 논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원전 비리는 이전에도 "발본색원 하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예상밖 강성 발언은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야당의 공격의 빌미가 된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함께 거론한 원전 비리 관련 발언은 '속내(진의)'를 가리기 위한 연막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배경을 알고는 대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와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 비자금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수사과정에서 튀어 나왔다고 한다.

채동욱 검찰 총장은 5월21일 대검찰청 간부들과의 주례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특별 대책을 지시했고, 서울중앙지검은 24일 신속하게 대규모 전담팀을 꾸렸다.

이는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6월3일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4차 명단을 발표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기 전의 조치였다.

검찰이 14일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은 지난 4월 30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즉, 채동욱 총장은 뉴스타파의 공개 훨씬 이전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추적하는데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당시 채 총장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 발표는 '느닷없는' 일이었다. 사전에 어떤 '낌새'도 없었다. 어딘가로부터 정보를 듣고 채 총장이 독자적으로 결행한 셈이었다.

그즈음 검찰은 원 전 국정원장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국정원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던 때였다.

검찰 행보의 전후 과정을 볼 때 전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원 전 국정원장 수사 과정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 배후가 원 전 국정원장 측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것에 대노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은 그러한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박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데 강한 '신뢰'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자신을 향한 원 전 국정원장 측의 공세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원 전 국정원장 측은 왜 전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 낸 것일까? 또한 그 배후가 원 전 국정원장이냐, 아니면 그 이상인가? 하는 의문이 따른다.

이와 관련해선 우선 이번 사건이 원 전 국정원장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 전 국정원장이 사건의 단초이자 핵심이라는 얘기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13일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ㆍ사회ㆍ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정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 10 · 26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6억원 환원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발끈하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원 전 국정원장은 철저하게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람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2~2006년 원 전 원장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 등 요직을 거치며 MB와 손발을 맞췄다. 특히 행정1부시장 시절엔 청계천 복원과 뉴타운, 대중교통 개편 등 굵직한 사업을 이끌면서 MB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이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는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되는 등 요직에 두루 등용됐고, 2009년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국정원장이 되면서 'MB의 오른팔'로 불렸다. 이번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배후에 MB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노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도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박 대통령 측 사람들에 따르면 '대노'의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 그 배후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즉, 박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은 그 배후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을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7일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밝힌 것은 그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정현 수석은 친박 실세로 대통령의 입이자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이 수석의 발언은 청와대가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다루는 검찰총장과 검찰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비자금 사건의 실체가 다른 데 있다고 판단(MB측)하고 있는데 검찰이 엉뚱한 태도를 취하자 이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이면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간의 파워게임이 읽힌다.

실제 박 대통령 집권 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를 비롯해 이명박정부가 최대 최적으로 꼽는 4대강사업에 대한 전방위 수사,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구속 연장, 최근 이명박정부 특혜 의혹이 있고 MB맨들과 가까운 CJ그룹 이재현 회장 수사 등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 쪽(MB측)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박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구속까지 염두에 둔 것 같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른바 'MB맨'들이 잇따라 공직에서 사퇴하거나 교체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몹시 안타까워 하고 있다"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박 대통령 측이나 이 전 대통령 측 모두 양측의 갈등이 쉽게 봉합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측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가장 문제로 지적된 것이 '인사'였는데 청와대에 와보니 인사 파일은 물론, 임기내 존안자료가 사라진 것을 알고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며 "MB정부가 비협조적이거나 무언가 구린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MB와 관련된 인물이나 기관에 대한 수사나 조사는 사정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일 뿐 어떤 의도를 갖고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뒤집어 보면 그만큼 MB정부의 국정운영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이번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는 박 대통령을 궁지에 몰려는 이명박-원세훈 합작품이라는 인상이 짙다"며 "실제로 야당이 박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박 대통령이 MB를 겨냥해 '보복성' 수사나 조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MB정부 시절 청와대 요직을 지낸 한 인사는 "박근혜정부 들어 사정기관의 표적이 된 인물이나 기관 중엔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며 "보복성 조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만 해도 MB 사람이니 어떻게든 구속시키려고 해도 안되니 별건으로 구속하려고 다른 사건을 파헤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정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힘겨루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들은 '박-이 전쟁'의 핵심이 정권 교체에 따른 '인수인계'에 있다고 말한다. 즉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전임 대통령이 임기내 존안자료, 통치자금 등 국가운영의 기본사항을 후임 대통령에게 인수인계 하는 게 전례인데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인수인계의 대의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고, 이에 이 전 대통령이 반발하면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 측이 원 전 국정원장ㆍ4대강사업 수사, MB 관련 인물과 기관에 대한 조치 등의 압박 카드를 쓰고 있는 데 대해 MB 측은 버티거나 반격을 하는 모양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는 MB 측의 반격으로 해석된다.

이번 검찰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불구속 기소는 '박-이' 양측의 '타협'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원 전 국정원장의 처리를 놓고 검찰과 청와대, 정치권은 구속-불구속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내 주류와 야당은 구속수사를 주장했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불구속 수사론을 폈다. 결국 원 전 원장에 대해 불구속 수사로 결론지어진 것은 MB 측의 또 다른 반격 카드가 힘을 발휘했다는 전언이다. 그 '반격 카드'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서 '인수인계'와 관련 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간의 '최후의 결전'은 아직 남아있다.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또 다른 수사가 진행중이고, 이 전 대통령과 사돈 집안인 효성그룹 세무조사 등 MB를 향한 압박 수위는 점차 높아가고 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과 가장 많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원 전 국정원장이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고,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핵심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것에 비춰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이 비리와 관련된 단서가 나온 게 없고, 쥐고 있는 반격 카드 또한 만만치 않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하다.

정계 소식통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박 대통령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친다. 원 전 국정원장 처리에 대한 '타협' 이후 박 대통령 측이 연일 강수를 두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의 반영이라는 해석이다. 또한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6월 말 방중을 전후해 한반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남북 관계는 물론, 국내 정ㆍ재계에도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산적한 과제들을 강도 높게 실천하면서 사정기관도 속도를 내 업무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재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강대강으로 맞부딪칠 지는 미지수다. 그때 쯤이면 박 대통령에게 힘이 더 실린 상황이고, MB 측과 관련된 여러 수사도 진행된 터이기 때문이다.

원 국정원장에 대한 불구속 수사는 박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간의 타협의 산물이지만, 사실 이 전 대통령의 반발에 박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6월말을 전후해 위상이 달라진 박 대통령의 보폭은 훨씬 커질 것이고 이 전 대통령에 더이상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전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최후의 결전'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다시 불붙을 '박-이 전쟁'이 혈투가 될 것인지, 조용한 화해로 끝날 지는 이달 말쯤에 윤곽이 그려진다. 이에 따라 국내 정국도 요동을 치거나 박근혜호의 순항으로 이어질 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