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에 걸쳐 크고 작은 폭포수와 깊고 짙푸른 웅덩이기묘한 바위 어우러져 한여름에도 시원한 일급 피서지

조무락골 으뜸의 비경인 복호등폭포
온종일 해가 들 틈이 없을 만큼 빽빽하게 숲이 우거진 어두컴컴한 협곡에서 수십 미터 높이의 3단 폭포가 푸른 이끼 낀 암벽을 타고 굴러 내린다. 폭포를 에워싼 고목들도 온통 물기와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어 으스스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여름에도 무더위와는 담을 쌓고 지낼 수 있는 일급 피서지다.

호랑이가 엎드린 것 같은 형상이어서 복호(伏虎)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 폭포 모습을 살펴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옛날 이 골짜기에는 호랑이들이 득실댔다고 한다. 폭염에 지친 호랑이들이 폭포 아래 바위에 엎드려 더위를 씻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래서 복호등폭포라고 부르는 걸까? 그럴 듯한 일이다.

고대 중국 신화의 전설상 삼황(三皇) 가운데 하나인 복희(伏羲)는 150년 동안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인간에게 큰 성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에 착안해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기잡이와 목축을 가르쳤으며, 거문고 비슷한 악기인 슬(瑟)과 <가변(駕辯)>이라는 악곡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음양의 변화 원리에 따라 팔괘(八卦)를 창안하고,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여덟 부호로 천지간의 만사만물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복희는 인류문화의 서광을 밝힌 신적인 존재인 셈이다.

사람의 머리에 뱀 또는 용의 몸을 하고 있었다는 전설상의 복희를 닮아서일까? 복호등폭포는 복희등폭포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또한 그럴 듯하지만 굳이 유래를 밝히려 애쓸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복희가 인간을 다스렸다는, 저 머나먼 옛날의 태고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선경임에는 틀림없다.

호랑이들 득실대던 골짜기

두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쌍룡폭포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경계에 솟은 석룡산(1,155m) 기슭에서 생명을 얻어 굽이치다가 가평천과 만나는 청정 계곡이 조무락골이다. '산새들이 조무락거린다(재잘거린다의 사투리)' 해서 조무락골이니 이름만 되뇌어도 어렴풋이 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한자를 끌어다 조무락(鳥舞樂), 즉 '새들이 춤추며 즐긴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아름다운 우리말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한문을 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만든 사대주의 산물일 터이니 씁쓰레할 따름이다.

이름부터 정감 넘치는 조무락골이지만 옛날에는 호랑이들 세상이었다. 또 1928년 일어났던 백백교 집단살인사건 때 교주 전해룡의 잔당들이 숨어들기도 했다니, 예전에는 얼마나 깊고 무시무시한 골짜기였을까? 본디 이곳에는 어른 세 명이 팔을 벌려 마주잡아야 할 만큼 줄기가 굵은 전나무와 노송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그러나 일제 때 일본인들은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생명을 빼앗긴 아름드리 고목들은 현해탄을 헤엄쳐 일본 땅으로 건너갔고 원시림은 황량한 민둥산으로 변했다. 그러나 자연 스스로의 복원 능력은 놀라운 것. 어언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옛날 같은 거목이나 상록수 대신 낙엽 활엽수가 대부분일지언정 조무락골은 건강한 숲을 되찾았다.

숱한 폭포수와 짙푸른 웅덩이 이어져

길이 5㎞ 남짓한 조무락골은 크고 작은 폭포수와 깊고 짙푸른 웅덩이, 기묘한 바위들이 서로서로 손잡고 아름다운 자연을 빚는다. 조무락골이 가평천으로 흘러드는 38교에서 계곡을 끼고 드리운 좁다란 찻길을 따라 1.4㎞ 남짓(도보 약 20분) 가면 아담하고 소박한 산장이 나오면서 길이 좁아진다. 이곳까지는 한여름 피서객들이 제법 찾아들지만 이후로는 인적이 뜸하다. 이제부터 수풀 우거진 오솔길로 빨려 들어가 20분 남짓 다리품을 팔면 지계곡과 조무락골 본류를 건넌 다음 갈림길과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 지류를 5분쯤 거슬러 오르면 멋들어진 폭포수가 눈길을 잡는다. 앞서 말한 복호등폭포다.

아무리 가물어도 조무락골은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복호등폭포도 그렇다. 비가 잘 오지 않는 봄가을에도 용꼬리나 넥타이를 연상시키는 물줄기가 암벽을 흥건히 적신다. 비가 많은 여름철에는 5미터 너비의 벼랑을 꽉 채우고 20여 미터 높이에서 우렁차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그 대신 용꼬리 또는 넥타이 같은 절묘한 자태는 볼 수 없다. 복호등폭포는 아무 때나 찾아도 매력이 넘친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래 머물 수 없어 아쉽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한기가 엄습하는 까닭에….

짙은 숲 사이로 흐르는 조무락골 계류
복호등폭포 입구에서 조무락골 본류 옆 산길로 10분 가량 오르다가 왼쪽 비탈길로 내려서면 쌍룡폭포가 손짓한다. 이곳 역시 인적이 드물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데다 들머리 찾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울퉁불퉁한 기암절벽 좌우로 두 가닥 물줄기가 쏟아지는 쌍룡폭포에는 두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 찾아가는 길

46번(경춘) 국도-가평-75번 국도-목동을 거친다. 목동 삼거리에서 왼쪽 75번 국도로 21㎞ 가량 달리면 조무락골 초입인 38교를 건넌다.

대중교통은 경춘선 전철 또는 ITX 청춘열차를 타거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가평으로 온다. 가평에서 용수동 방면 시내버스 이용.

■ 맛있는 집

조무락골 하류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다.
가평에서 목동으로 오다 보면 캐나다전투기념비 옆에 명지쉼터가든(031-582-9462)이 있다. 가평 특산물인 잣을 이용해 독자 개발한 잣국수로 이름난 집이다. 잣을 갈아 만든 국물에 면과 잣, 오이 등을 넣은 맛이 콩국수처럼 고소하고 담백하며 체내의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을 제거하는 건강식이기도 하다. 이밖에 막국수, 산채비빔밥, 곰탕, 매운탕, 엄나무백숙 등 다양한 음식을 낸다.


조무락골을 끼고 드리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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