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보단 '경제'로 풀어야해주항 건설 전력 북한 활용땐 '윈-윈' 새로운 남북경협의 전환점 될 수도'NLL 덫' 걸려 관계 악화땐 남북 모두의 피해여·야 정략적 공방 멈춰야

‘정치’보다 ‘경제’로 풀어야…해주항 건설 전력 北 활용땐 ‘윈-윈’

‘NLL 덫’에 걸려 남북관계 악화되면 무력충돌 가능성 배제 못해

노무현정부 NLL 문제 경제적 접근 옳아…대통령 직접 나서고 논란 여지둔 건 문제

‘NLL(북방한계선) 정국’열기가 뜨겁다. 여야 모두 ‘NLL 승부’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판세도 이슈에 따라 널띄기를 하고 있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이제 ‘NLL 정국’은 여야 모두에게 물러설 수 없는 승부처가 됐다.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정국 주도권은 물론,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2007년 10월 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그런데 요즘 여야의 ‘NLL 전투’는 정치논리에 함몰돼 본질을 모른 채(또는 덮어두고) 적진을 향해 난사하는 모양새다. 당장의 승부에 집착할 뿐 향후 남북관계는 안중에도 없는듯 하다.

이번 NLL 공방의 단초이자 핵심은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나온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이다.

여권은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부정하거나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다.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에 동조하고, NLL을 폄훼하는 표현을 한 게 그 증거라는 입장이다.

반면 야권은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적이 없고 활용방안을 논의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여권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수사로 궁지에 몰리자 ‘물타기용’으로 NLL 카드를 꺼냈다는 주장도 편다.

전문가들도 견해가 갈린다.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공동어로구역 주장에 동조한 것은 사실상 NLL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과 NLL 포기에 동의한 게 아니라 평화구상에 인식을 같이 한 것이라는 상반된 분석이 맞서고 있다.

NLL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은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향후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여야 모두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나온 ‘NLL 발언’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거나 알았다면 당리당략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강하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의 ‘공동어로구역’발언과 노 전 대통령의 ‘서해 평화협력지대’구상은 그 뿌리를 같이 한다. 즉 남북 정상의 NLL과 서해에 관한 기본 구상은 대북사업가인 장백산 해외동포재단 이사장의 ‘한반도 그랜드 프로젝트’(Korea Grand Project, 일명 K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초에 나온 ‘K프로젝트’는 남ㆍ북ㆍ러 3국이 공동발전할 수 있는 ‘그랜드 디자인’으로 핵심적 내용은 ‘38(DMZ) 접경지역 7개 프로젝트’와 ‘극동러시아(연해주)개발’이다.

7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한강 하구 개발 프로젝트’는 한강, 임진강 하구의 강화도앞 교동도에 800만평의 민족공단(공동평화구역)을 조성하고 연해주 개발 재원을 마련, 남ㆍ북ㆍ러 3국이 경협을 통해 공동 발전하는 방안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록
극동러시아 개발은 한강 하구 개발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며 연해주를 물류기지화하고 남북철도를 복원하는 TKR-TSR 연결사업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극동러시아 자원을 북한 및 남한에 공급하고 남북한 공동 생산품을 러시아ㆍ유럽 등에 수출하거나 남한의 생활필수품을 북한이 수입해 극동러시아 전역에 판매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한강 하구 개발 프로젝트’는 북한 황해도 해주와 남한의 인천을 연계하는 ‘서해평화수역’ 프로젝트와도 연결된다.

이에 따르면 남북한은 NLL의 일정 지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해 일정기간 남과 북이 각각 어로작업을 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매년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 어선의 NLL 구역 불법 조업도 막을 수 있다.

노-김 ‘K프로젝트’에 공감대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원들이 지난달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NLL 발언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 ‘한반도 그랜드 프로젝트’는 장백산 이사장이 2001년 4~5월 주한 러시아 무역대표부 대표 일행과 함께 강화도 교동도를 찾는 등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그해 7~8월에는 러시아 정부의 지시를 받은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관 일행과 북한 군부가 함께 현장을 시찰했다. 이어 9월25일에는 장 이사장과 러시아 측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를 창립하는 등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장 이사장의 ‘K프로젝트’의 밑그림과 7개 프로젝트 중 ‘한강하구개발사업’ 문건은 당시 폴리코프스키 푸틴 대통령 전권 대표 측을 통해 모스크바에 전달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듬해 2002년 4월 장 이사장 등을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장 이사장의 ‘K프로젝트’는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이사장은 2007년 5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프로젝트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도 익히 알고 있고 이에 대해 특별 지시를 내린 바도 있어 구체적으로 실행될 경우 남ㆍ북ㆍ러 정상이 만날 수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0년 10월 실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주목되는 것은 당시 정상회담에 참여한 노 전 대통령을 비롯 친노 인사들이 ‘한반도 그랜드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정상회담에 임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공개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통해 재확인 되고 있다. NLL 관련 발언과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상, 해주공업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등이 지난달 28일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의원 74명 공동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며 국정원의 NLL 대화록의 일방공개와 관련 임시국회 소집과 청문회 개최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측이 K프로젝트를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초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L씨가 오랜 인연을 가져온 S실업 Y회장을 통해서다. 이에 앞서 Y회장은 장 이사장을 알고 있는 Y 전 의원을 통해 K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직접 장 이사장을 만났다.

당시 장 이사장은 K프로젝트는 정파와 관계없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활용되야 한다는 생각에 Y회장에게 자료 일부를 전했고, 이는 곧바로 L씨에게 건네졌다. 이 자료는 노 전 대통령은 물론, 대북 정책을 추진한 이해찬 전 총리, 이광재 전 의원 등 친노그룹 주요 인사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리고 2010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K프로젝트는 수면 위로 부상했다. 노무현정부에서 정상회담에 대비해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다. 그해 8월 초 김만복 국정원장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할 때 NLL 문제도 거론됐다는 얘기가 들렸다.

당시 김만복 원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최근 공개된 대화록에서 알 수 있듯남북정상은 NLL에 대해 상당한 대화를 나눴다.

최근 정상회담 대화록에 나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은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K프로젝트’에 담긴 ‘남북공동(어로)수역’과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에서 언급한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K프로젝트의 공동어로수역은 기존 우리 측이 주장해온 NLL을 기준으로 남북 간 각각 2km해상지역을 의미한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공동어로수역은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 한계선 안쪽 지역을 포함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측이 고수해온 NLL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권이 노 전 대통령 발언 중에 ‘포기’라는 말은 없어도 사실상 NLL이라는 영토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NLL 왜 문제인가?

NLL 대화록을 주의깊게 살펴 보면 ‘해주’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해주항을 여러 번 언급하고, 노 전 대통령도 해주를 비롯한 서해 공업단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오늘날 여야가 NLL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제4, 제5의 서해교전이나 제2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NLL 문제를 집요하게 쟁점화하거나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해주(황해도)’에 있다. 해주는 북한에게 ‘생명선’과 다름없다.

북한 경제를 동서로 구분할 때 서쪽은 평양에서 가까운 남포항이, 동쪽은 원산항이 대외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남포항은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무역선이나 한국이 지원하는 쌀ㆍ비료를 실은 배 등이 드나드는 거의 유일한 관문이다. 그럼에도 남포항은 시설 및 입지조건이 형편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남포항은 바다(서해)에서 14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수심이 얕아 큰 배가 드나들 수 없어 국제 무역항으로 부적합하다. 게다가 황해도와 평안도를 연결하는 육상운송로 활용하기 위해 갑문을 설치한 탓에 항구로서의 기능이 더욱 약화됐다. 갑문을 닫게 되면 선박은 입항하지 못한 채 먼 해상에 머물 수 밖에 없고, 시간을 다투는 물류운송 선박에겐 치명적이다

남포와 멀지 않은 곳에 제법 수심이 깊은 은률이 있지만 무역항으로서의 조건은 충분하지 않다. 남포를 대체할 유일한 항구이자, 북한에서 무역항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은 해주이다. 수심이 깊어 대형 무역선이 드나들 수 있고, 남한과의 뱃길도 가까워 남북경협의 최우선 항구로 꼽힌다.

반면 해주는 군사지역에 위치한 데다 NLL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북한은 군이 경제에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있고 경제난 해결의 주체로 나서면서 스스로 변화를 해갔다. 해주를 군사 요새로서의 가치보다 북한 경제 해결의 생명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북한 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해주는 NLL로 인해 여지껏 항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1999년과 2002년, 2011년 세차례의 서해교전을 일으킨 실질적인 이유는 NLL을 무력화시켜 해주항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남북한은 NLL을 놓고 날선 대립을 해왔다. NLL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NLL의 유효성 여부와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귀속 관계이다.

우리 정부는 NLL이 남북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며 서해 5도가 남측 영역에 속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NLL이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무효이며 그들의 해상분계선(99년 9월 2일 주장)에 따르면 서해 5도는 북측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남ㆍ북한의 NLL에 대한 상이한 시각차는 결국 서해교전이라는 무력충돌을 가져왔다.

NLL 문제 ‘경제’가 해법

북한에게 해주항이 대단히 중요한 만큼 이를 실효화 하기 위해 NLL을 무력화시키려는 북측의 요구와 도발도 집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무력충돌이 재발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남북대화, 또는 정상회담에서 해주항 개발과 서해 평화지대, 서해공업단지 조성 등을 거론한 것은 북한의 속내를 읽고 접근한 측면이 강하다.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한 방향은 옳았으나 실무진을 놔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부적절하다는 평이다. 더욱이 대통령으로서 오해의 소지가 많은 발언을 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난제로 남아있는 남북 간 NLL 문제는 ‘경제’로 풀어야 한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는 북한이 해주항 건설에 전력하고 있고, 남북이 해주항을 활용할 경우 ‘윈-윈’하는 것을 넘어 대대적인 남북교류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경제적 측면에서 남북 양측은 무해통항권(無害通抗權) 확보와 해안수송에 따른 물류비용 절감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북한으로 운항되고 있는 정기운항선의 경우 인천에서 출발, 공해로 10마일을 나간 뒤 ‘ㄷ’자 형태의 항로로 북쪽 남포항으로 들어간다.이 때문에 항해 시간도 18시간이 걸리고 물류비용도 그만큼 비싸다. 만일 남북 양측이 해양합의에 따라 영해를 가로지를 경우 운항 시간을 10시간 정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에서도 일본으로 가는 경우 2일이나 절약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처럼 남포항이 유일하게 가동되는 경우 우리 기업에도 불리한 측면이 많다. 남포항이 과부하가 걸릴 경우 입항하려면 3~5일을 해상에서 머물러야 하는 상태가 자주 발생한다. 만일 해주에 새로운 항구가 들어선다면 바로 입항할 수 있고 특히 남북이 서로 NLL 통과를 인용할 경우 양측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현재 남북한 해상운송은 서해의 경우 인천-남포, 인천-해주의 두 항로가 있다. 인천 본항에서는 무역선이, 남항에서는 어선과 여객선, 북항에서는 시멘트나 원목 등을 실은 배들이 오간다.

해상운송에 있어 남북 양측이 영해 통과를 수용하느냐 여부에 따라 경제적 효과는 천양지차다. 가령 인천 북항에서 해주로 들어갈 경우 현재처럼 공해를 이용하면 거의 24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영해를 통과해 바로 해주로 갈 경우 8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주의 경우 인천과의 사이에 영종대교가 있고 파도도 있지만 바지선을 이용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결국 남북 양측이 안보에 위협을 주지않는 범위에서 무해통항권을 보장하고 해주를새로운 항구로 개설한다면 남북경협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현재 정치권이 NLL 문제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것은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처럼 정략적 공방으로 치닫거나 장기간 대치할 경우 박근혜정부에서 모처럼 기대를 모았던 남북관계 변화는 경색국면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나 NLL문제는 그 특수성에 비춰 정치보다는 경제로 풀어야 하고, 그래야 정치도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역대 정부는 반면교사로 증명해왔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