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노 운명 北에 달렸다?여·야 치열한 공방… 북한 대화록 원본 소장해친노 가장 큰 영향 받아

최경환(오른쪽 두번째)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증발 논란과 관련, "여야 정치권은 정쟁을 중단하고 검찰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도리"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화록 핵심은 DJ-김정일 ‘약속’…‘북한판 원본’ 공개땐 핵폭풍 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일로에 있다.

정치권이 대화록의 실체를 놓고 사생결단을 벌이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대화록 실종에 관련됐을 만한 인사들을 고발하면서 검찰까지 관여하는 형국이 됐다.

이제 ‘대화록 실종’ 사건이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 정국 지형은 물론, 국가ㆍ사회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이 예상된다.

야권 또한 국정조사 외에 특검 도입과 함께 장외 투쟁까지 총공세를 펼칠 분위기여서 본격적인 검찰 수사 개시 전부터 ‘대화록 정국’은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24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에 NLL 공방을 중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화록의 실체, 진실에 모든 게 걸린 국면이다. 그런데 대화록에서 파생된 최근의 정치, 사회적 논란은 ‘본질’을 비켜간 듯한 인상이다. 즉 대화록이 문제가 되는 근본 원인과 대화록에 내장된 ‘뇌관’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 보수ㆍ진보 진영 간 치열한 쟁점이 돼 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공방이 그렇고, 남재준 국정원장의 대화록 전문 공개에 따른 진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다시말해 대화록의 핵심은 NLL 논란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외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화록의 요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비밀 약속’이다.

이 ‘밀약’으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능했고, 대화록 실종과도 관련 있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밀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우리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하는 6ㆍ15 선언과 10ㆍ4 합의 이행의 진짜 이유도 ‘밀약’에 있다고 전해진다.

여야 대통령 기록물 열람위원들이 22일 성남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서 대통령 지정 기록물 열람실을 떠나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200년 정상회담 핵심은

최근 격화되고 있는 ‘대화록 정국’의 단초는 지난해 대선 기간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다. .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정 의원 등을 고발했고 올 2월 검찰이 정 의원 등 전원에게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하면서 일단락 되는 듯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후 야권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 지난 6월 민주당 박영선이 의원이 “NLL 포기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주장하면서 재점화됐다.

여야의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이 과연 NLL 포기, 또는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느냐에 집중됐다. 이에 대한 공방이 오가면서 정치권은 물론, 국민까지 갈등을 보이며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은 NLL이 아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 ‘약속’이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2000년 1차 정상회담에서 김 전 대통령이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그는 DJ-김정일 ‘밀약’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을 꺼리면서 “상상 이상의 대규모 북한 지원”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북한의 물적 기반을 탄탄하게 해 줄 수 있는 총력적인 지원”이라고 했다.

미국 워싱턴의 대북 소식통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1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정부와 현대그룹이 북한에 지원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지원을 약속해 미국 정부가 긴장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긴장한 것은 그러한 지원이 북한 핵 개발로 전용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그 ‘밀약’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가능했다고 귀띔했다. 워싱턴의 소식통도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퇴임 2개월여를 남긴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정상회담을 한 것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국제관계에서 갖는 의미와 파장을 고려할 때 2차 정상회담은 파격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빅 이벤트였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 고위층 사이에선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 약속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정보 관계자는 “2007년 8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갈 때 ‘밀약’ 카드를 들고 갔을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DJ정부와 노 전 대통령 시기를 전후 해 ‘밀약’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소식통들은 이구동성으로 ‘밀약’은 상상을 넘는 대규모 북한 지원으로 남한에 적잖은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밀약이 이행될 경우 남한 내부에 큰 부담이 되고,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밀약을 은밀하게 추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DJ, 노 전 대통령 모두 ‘밀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북한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DJ와의 밀약부터 확인했고 이행이 어려운 것을 알고 낙담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은 경제 계획을 수립할 경우 10년, 20년을 내다보는데 김대중정부의 ‘약속’은 그 기반이었다”며 “그러나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북한은 크게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밀약’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2차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밀약의 이행이 가능하지만 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2007년 11월 대선을 한달 가량 앞두고 느닷없이 남한을 방문한 것이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 통전부장은 비밀리에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이명박 후보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약속’을 거론했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선 김 통전부장과 이명박 후보와의 만남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선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북한이 2009년 9월, 김 전 대통령 사망 때 조문단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조문단 파견은 ‘밀약’을 확인하기 위한 게 주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조문 단장인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함께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김양건 통전부장은 1차 정상회담의 주역인 박지원 의원 등을 만나 ‘밀약’을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1ㆍ2차 남북정상회담의 내막에 따르면 북한은 김대중ㆍ노무현 사람들에게 ‘큰 무기’를 쥐고 있는 셈이다. ‘밀약’을 한 것으로 알려진 DJ의 사람들과 그 ‘밀약’에 기반해 2차 정상회담을 했다는 친노(친 노무현) 인사들에게 북한은 언제든 ‘약속 이행’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화록 누가 손댔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둘러싼 여야의 대결은 6월 21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대화록 원본과 녹취자료를 전면 공개하자”고 주장하면서 일순간 ‘대화록 정국’으로 급변했다. 그로부터 3일 뒤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 전문을 전격 공개하면서 여야는 대화록의 실체를 놓고 전면전에 나섰다.

7월 2일 국회에서 국가기록원 회의록 원본제출 요구안이 의결되면서 가닥이 잡힐 듯한 대화록 정국은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최종 결론이 나면서 틀어졌다. 정국은 ‘사초(史草) 게이트’ 공방으로 비화되면서 또 다른 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

새누리당은 노무현정부에, 민주당은 이명박정부에 대해 각각 대화록 실종의 책임을 떠넘기며 대화록 공방을 이어갔다. 급기야 새누리당이 대화록 실종 사건과 관계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을 25일 검찰에 전원 고발하면서 한 달 넘게 정치권을 마비시켜 온 ‘대화록 논란’은 검찰이 그 진상을 가리게 됐다.

대화록의 실종은 여야 공방을 떠나 국가적으로도 중차대한 문제다. 자연스레 대화록이 생산되고 이관됐다는 2007년 말~2008년 초 정권 교체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대화록이 만들어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7년 10월 3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은 디지털 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했고, 회담 후 녹음기를 국가정보원으로 보내 녹취록 작성을 맡겼다. 국정원은 녹취록을 2부 만들어 1부는 청와대에 전달했고, 1부는 자체 보관했다. 이어 조명균 비서관이 국정원 초안과 관련 자료를 종합해 최종본을 만들었다.

이후 최종본은 전자문서 형태로 만들어졌고, 2007년 12월쯤 참여정부의 청와대 온라인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도 이지원에 보관된 것과 같은 대화록 1부가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상경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 등 참여정부 인사들은 “조명균 비서관이 작성한 대화록 최종본은 12월경 ‘이지원’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며 “대통령 보고와 재가를 거친 이지원 문서는 1부속실에서 기록물을 담당했던 이창우 행정관에 의해 지정기록물로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이 사라진 것을 두고 여야, 특히 여권과 참여정부 인사들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대화록을 처음부터 이관하지 않았거나 이관 후 폐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민주당은 대화록은 이관 됐으나 기술적으로 찾지못했거나 이명박정부가 대화록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친노 인사들은 “2008년 초 ‘이지원’ 시스템 전체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했기 때문에 이지원 시스템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된 대화록은 100% 이관 됐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보고가 완결된 전자문서는 이지원 시스템상 빠짐없이 이관돼 누락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여권에서는 이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참여정부 청와대가 애초에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청와대 기록물은 이지원, 대통령 비서실 기록관리 시스템(RMS), 이동형 하드디스크, 팜스(PAMS) 등 4단계를 거쳐 국가기록원으로 이동되는데 대화록은 팜스뿐 아니라 이동형 하드디스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대화록이 애초부터 국가기록관 이관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대화록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고 지정기록물 선정 등의 작업을 거치면서 삭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2008년 2월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 측이 ‘이지원’ 자료를 봉하마을로 가져갔다가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회의록이 빠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친노 측에서 ‘이지원’에 올라간 자료는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참여정부 말 청와대가 이지원에 삭제 기능을 추가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규명 대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 여부와 조명균 비서관이 실제 삭제에 관여했는지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대화록 실종은 北에 유리?

‘대화록 실종’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가장 먼저 대화록이 폐기된 것인지, 아니면 여야가 못찾은 것인지부터 규명돼야 한다. 만일 폐기된 게 사실이라면 누가, 언제, 왜 폐기했는지를 밝히는 게 과제다.

대화록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을 낮게 본다면 결국 대화록 실종은 대화록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측이나 대화록으로 인해 부담을 갖게 되는 측이 벌인 소행이라는 게 중론이다.

야권은 대화록 실종으로 ‘이득을 보는 측’으로 이명박정부를 지목한다. 국가기록원으로 대화록이 이관됐는데 그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훼손되거나 보관 과정에서 분실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대통령 기록관에 있던 ‘이지원’ 사본의 봉인이 해제되고 2차례 무단 접속이 이뤄진 흔적이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이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새누리 의원들의 국정원 대화록 접촉 사실에 근거해 대화록 실종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 대통령 측이 직간접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권은 ‘부담을 갖는 측’이 대화록 실종을 주도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을 의심한다.

최근 국내외 정보통 사이에서는 ‘DI-김정일 밀약’을 근거로 대화록 실종 사건을 새롭게 보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대화록을 없앴다면 근본적인 이유가 ‘밀약’ 때문이라는 추론이다.

북한 정토통인 국내 한 전문가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공개한 대화록을 눈여겨 볼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화록을 보면 NLL 문제와 관련, 김정일 위원장은 대화를 피하거나 실무진에게 맡기려는데 반해 노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김 위원장이 최대 관심사였던 ‘밀약’ 부분을 확인한 터라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북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논란을 부를 정도로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은 ‘밀약’에 상응하는 카드를 내보이려고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2007년 11월 대선을 한달 가량 앞두고 남한을 방문한 것도 주목된다. 당시 김 통전부장은 비밀리에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이명박 후보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밀약’을 거론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 즈음 노 전 대통령도 이명박 후보와 만나 ‘밀약’에 대해 얘기하고 그의 입장을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어서 노 전 대통령의 밀약과 관련한 요구를 거부했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소문대로라면 MB가 집권할 경우 ‘밀약’은 노 전 대통령 측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담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 입장에선 대화록에 손을 댈 만한 이유가 되는 셈이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동선도 노 전 대통령의 행보, 대화록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 그가 대선을 하루 앞둔 2007년 12월 18일 북한을 방문한 것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당시 국정원 측은 김 국정원장의 방북 목적에 대해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소나무의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명이었다.

김 전 원장은 나중에 김양건 통전부장이 남측 대선 결과를 궁금해하자 “내일(12월 19일)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말한 뒤 “(이명박 정부가)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밝혀 부적절한 처신으로 파문을 불러왔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이 대선 직전 북한을 방문한 것이 ‘밀약’과 관련됐다는 소문이 있다. 즉 남북정상회담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북측에 대화록 원본을 요청했고 이를 갖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모종의 ‘거래’를 시도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거절하면서 김 전 원장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대화록이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파기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때문에 현재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공개한 대화록에는 ‘밀약’에 관한 부분이 생략돼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대화록 실종’과 관련, 그 원인과 목적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추정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화록 원본은 북한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북한판 대화록이 공개될 경우 국내에 미치는 후폭풍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어느 쪽에 유ㆍ불리하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대화록의 한 축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라는 점에서 친노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여권 일각에서 북측에 대화록 공개를 요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북한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할지는 미지수다. 북한 입장에서 대화록은 DJ정부와 노무현정부 사람들에게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박근혜정부를 상대하는 북한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칫 친노의 운명이 북한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 형국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