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돈 받은 정치인 명단 공개한다"뇌물 관련 기록 열람 신청… 검찰 수사 압박 차단하고 '전 재산 29만원' 해명용정치권 후폭풍 거셀 듯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이 지난달 29일 전 전 대통령의 차남이 설립했던 데이터베이스 보안업체 웨어밸리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이날 오후 이 회사 관계자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전(錢)의 판도라 열리나… 검찰 압박에 전두환 측 반격 나서

전씨 돈받은 정치인 “나 떨고있니?”… 정치권 후폭풍 거셀 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반격’에 나섰다. 검찰의 추징금 환수 작업이 전 전(前)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재산 등에 대한 수사로 확대 전환될 조짐을 보이면서다.

전 전 대통령은 우선 1995~1996년에 진행된 그에 대한 뇌물 수수 사건 수사 기록 일체를 분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따라 전 전 대통령 측 정주교 변호사는 5일 전 전 대통령 명의로 ‘12ㆍ12 및 5ㆍ18 사건 특별수사본부’가 수사한 뇌물 혐의 관련 기록 일체에 대해 열람하도록 해달라고 신청서를 냈다.

이에 앞서 전 전 대통령 측은 최근 검찰이 압류한 그의 부인 이순자씨의 30억 원짜리 연금보험에 대해 압류 해제를 신청했다.

한편, 17년간 전 전 대통령을 보좌한 민정기(71) 전 청와대 비서관은 6일 검찰의 환수 작업과 관련해 ‘보도 참고 자료’를 베포해 전 전 대통령 일가족이 재산을 형성한 과정을 해명했다. 민 전 비서관은 항간의 논란이 된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한 것에 대해 압류 재산 중 현금은 29만원짜리 통장밖에 없다는 것을 언론이 왜곡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이 억울하다며 ‘반격’에 나선 것에 대해 일반의 시선은 싸늘하다. 대국민사죄를 해도 부족할 처지에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무익한 꼼수라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근거 마련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수사자료 열람 요청에 대해 당시 수사 기록상에 나온 자금들을 분석해 반박 논리를 구성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즉, 재임 시절 재벌 총수 등으로부터 받은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정치 자금’, ‘통치 자금’이었고, 정치 활동 과정에서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에 추징금을 낼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전 전 대통령 측 정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재임 기간에 현대ㆍ삼성 등의 총수들에게 돈을 받았지만 이를 민정당 운영비나 대선자금 등 정치 활동비로 썼고, 남은 자금은 수사를 받은 뒤 검찰에 냈다”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220억원,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서 220억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게서 150억원 등 뇌물을 받아챙긴 혐의로 기소돼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 선고됐으나 17년 동안 변제한 금액은 전체 추징금의 24%인 533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이 수사기록을 앞세운 ‘반격’은 일반의 생각이나 법조 관계자들의 추정을 뛰어넘는 매우 치밀한 계산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전 전 대통령 재임시, 또는 퇴임 후까지 그로부터 돈을 받은 인사들을 공개해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압박을 차단하면서 돈의 사용처를 밝혀 ‘전 재산 29만원’을 해명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이 1995~1996년에 진행된 그에 대한 뇌물 수수 사건 수사 기록 일체를 열람하겠다고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수사 기록에는 전 전 대통령의 자금 사용 내역이 나와 있고, 그중에는 전 전대통령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의 명단과 금액 등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1980년 무렵 그에게는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금을 포함해 약 1조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5600억원은 재임 중 사용한 것으로 신고됐고, 1500억원은 후임 노태우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건넸으며, 5공 신당 창당에 500억원, 현금을 갖고 있다가 추징된 300억원 등을 빼고나면 2200억원가량이 남았었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주목되는 것은 2200여억원의 행방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이 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갔고,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이 돈을 받지 않은 정치인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정치자금으로 활용됐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1996년 년 ‘5ㆍ18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총괄했던 최환 전 서울지검장의 주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11일 국무회의 시작 전 전두환 추징금과 원전 비리 문제에 한마디 했다.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나 원전 비리 문제도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 못하고 이제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새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넌센스다.”

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문제나 원전비리 문제 모두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쌓여온 일이며 여야 정치권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야지 새 정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주목되는 것은 전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를 ‘10년 이상 쌓여온 일’로 표현한 부분이다. 이는 역대 정권이 전 전 대통령 추징금(또는 비자금)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전 전 대통령을 사면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그를 법정에 세운 김영삼 전 대통령도 전 전 대통령 추징금을 거론하지 않았다. 뒤를 이은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에서도 전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왜일까? 전직 대통령 사람들이 함구하고 있는 가운데 1996년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총괄했던 최환 전 서울지검장의 발언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검찰은 1996년 전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수사 당시 돈의 사용처를 정치자금으로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했고, 전 전 대통령이 개인적인 용도로 쓴 2205억원만 뇌물죄로 기소했다. 검찰은 뇌물로 받은 돈을 환수하기 위해 2205억원의 사용처를 캐려 했으나 ‘외압’으로 의심되는 인사조치로 수사를 중단했다.

“(전 전 대통령 대법원 확정 판결 전) 추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자금을 누가 보관하고 어디에 있나를 알아 보려고 사용처 조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1997년 1월 말 돌연 내가 서울지검장에서 대검 총무부장으로 갑자기 좌천됐다.”

한마디로 수사 책임자인 최환 고검장의 윗선에서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을 막은 것이다.

전 전 대통령 측근은 “김영산 전 대통령 시절이니 그만한 힘을 가진 곳에서 손을 쓴 것”이라며 “그렇게 한 이유야 뻔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즉 ‘구린 데’가 있는 당사자들이 권력의 힘으로 검찰을 눌렀다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김영삼(YS)ㆍ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당 대표나 중진 정치인이던 시절, 이들을비롯해 그를 따르던 상동동계(YS게), 동교동계(DJ계) 인사들 상당수가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현재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도 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이 돈의 용처를 밝히는 과정에서 당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명단이 공개된다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며 “그들 중 그러한 후폭풍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대검찰청 예규에 의하면 수사기관의 내부문서 중엔 공개 대상이 아닌 것이 있다”며 “전 전 대통령이 요구한 수사기록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전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정치자금 수령자 명단을 밝히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 전 전 대통령 측에서 과거 수사 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것과는 무관하게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전 전 대통령이 막상 정치자금 수령자 명단을 공개할 지는 미지수라고 했다.전직 대통령 입장에서 그런 공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부 반론도 있고, 검찰이 추징금 환수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는 “결국 전 전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검찰의 지나친 조치에 화가 나 있는 상황이어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면서 “수사 기록을 요청한 것만으로도 관련 정치인들에게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의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 인사들이 검찰의 과속(?)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내놨다.

전 전 대통령의 ‘전(錢)의 판도라’ 상자가 열려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올지, 아니면 찻잔 속 미풍에 그쳐 헤프닝으로 막을 내릴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