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그늘진 곳곳을 비추다

호암재단은 매년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사들을 대상으로 호암상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31일 서울시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3 호암상 시상식. 주간한국 자료사진
경제민주화 논란 속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가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던 만큼 기업을 키우는 것이 바로 애국이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창업 1세대들의 '함께 잘 살자'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주요 기업 창업주들에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단순히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공감대가 넓게 형성돼 있었다. 그리고 창업주들은 대부분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 혼은 남아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다. 고인의 '호'(號) 또는 이름을 따 만든 공익재단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창간 49주년을 맞아 국내 주요 그룹 창업주들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재단 및 사업들을 그룹별로 살펴봤다.

한국의 노벨상 만든 이병철

"나는 인간사회에서 최고의 미덕은 '봉사'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이것 이상으로 의의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 없고 삶의 목표로서 이토록 숭고한 것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경영하는 기업의 사명도 의심할 여지없이 국가, 국민 그리고 인류에 대하여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했다는 이 말은 그가 주창했던 '사업보국'을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그룹 내에는 이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재단이 있다. 이 창업주의 호인 '호암'(湖巖)을 그대로 이름으로 하고 있는 호암재단이다. 삼성을 비롯해 CJ, 새한, 한솔, 신세계 등 4개 가족사가 공동 출연해 1997년 설립한 이 재단은 호암상 운영, 학술연구 지원 및 출판, 전시시설의 설립ㆍ운영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더불어 이 창업주의 추모식도 호암재단에서 맡고 있다.

호암 이병철 호암재단
호암재단의 가장 큰 사업으로 꼽히는 호암상은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 학술과 예술ㆍ인류 복지 증진에 공헌한 인사에게 상을 주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1990년에 만든 상이다. 과학ㆍ공학ㆍ의학ㆍ예술ㆍ사회봉사상의 5개 부문으로 나뉘어있고 그 이외의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이룩했거나 한국문화와 국가사회발전에 협력한 인사들에게 수여하는 특별상으로 구성돼있다.

한국의 노벨상이라는 별명답게 수상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현재까지 총 117명에 달하는 수상자들 중에는 발레리나 강수진씨, 소설가 고 박완서 작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 임권택 감독을 비롯,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총망라돼있다. 수상자 선정을 위해 국내외 각계 주요기관과 전문 인사들로부터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운 사람들을 추천받고 있다.

호암미술관도 이 창업주의 호를 따 1982년 만들어졌다. 우리 국민에게 문화 창조의 꿈을 주고 민족문화의 산 교육장이 되는 장소이기를 원했던 이 창업주의 뜻에 따라 설립된 호암미술관에는 그가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미술품이 전시돼있다. 또한, 1997년 개원한 전통정원인 '희원'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조경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맨주먹 정신 키워주는 정주영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0대 그룹 창업주 중에서도 특별하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자산을 갖고 시작한 다른 창업주들과 달리 말 그대로 맨주먹을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창업 활성화와 글로벌 리더 육성의 기치를 앞세우고 있다. 사진은 2011년 8월 16일 서울시 종로구 현대문화센터에서 열린 아산나눔재단 설립식. 주간한국 자료사진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복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자신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기에 창업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정 명예회장의 뜻을 기려 세워진 것이 바로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이다. 정 명예회장의 호인 '아산'(峨山)에서 이름을 딴 두 재단은 각각 의료지원과 청년창업이라는 전문분야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걷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대건설이 창립 30주년을 맞은 1977년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정 명예회장의 뜻을 담아 설립됐다. 정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건설 지분 50%를 내놓으면서 만들어진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함께 잘사는 공동체'라는 대명제 하에 산간벽지의 의료취약지역에 종합병원을 세워 현대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산사회복지재단은 1978년 정읍을 시작으로 같은 해 보성, 인제에 이듬해에는 보령, 영덕에 아산병원을 설립, 의료서비스를 제공해다. 이어 1989년에 서울 이촌동에 금강아산병원과 홍천 아산병원, 1996년에 강릉 아산병원을 개원했고 1989년에는 풍남동에 서울아산병원을 개원하며 지금의 틀을 만들었다.

사회복지 지원사업은 노인복지시설, 아동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 각종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하는 간접지원 방식으로 시행해왔다. 학술연구 지원사업은 경제와 사회 발전에 필요한 분야의 학술연구 지원으로 시작, 2000년부터는 지원분야를 사회복지 및 관련분야로 특정화했다. 그밖에 숭고한 봉사정신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해 온 인사를 발굴해 시상하는 아산상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정 명예회장 서거 10주기를 맞아 탄생했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을 비롯한 정 명예회장의 가족 및 관련기업이 5,000억원을 출연해 2011년 설립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1,000억원 규모의 '정주영 엔젤투자기금'이 조성되며 재단기금 규모가 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아산 정주영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나눔재단
아산나눔재단은 청년들에게 용기를 줘서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청년창업 활성화와 글로벌 리더 육성이라는 두 개의 사업 축을 통해 정 명예회장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우리 사회에 전파하겠다는 비전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유망한 초기기업을 지원하고 '정주영 엔젤투자기금'을 통해서도 예비창업자들 및 창업 3년 이내의 기업들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및 UN 국제기구에 인턴을 파견, 견문을 넓히게 하고 저개발국가 위주로 청년 해외봉사단을 보내는 등 글로벌 리더 육성에도 열심이다.

인재양성 강조한 최종건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는 10대 그룹 창업주 중 가장 짧은 생애를 살다간 사람이다. 1973년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최 창업주는 기업을 이루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며 기업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보은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또한, 뛰어난 인재의 양성이야말로 기업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최 창업주의 인생철학인 '애국보은'과 '인재양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재단이 SK그룹 내에 존재한다. 바로 선경최종건장학재단이다.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의 사명에 최 창업주의 호인 '담연'(湛然) 대신 이름을 그대로 붙여 쓴 점이 이색적이다.

선경최종건재단은 학생들에게 매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8일 해비타트 봉사활동에 참가한 선경최종건재단 장학생들. 주간한국 자료사진
선경최종건장학재단은 최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최신원 SKCㆍSK텔레시스 회장을 비롯해 최창원 전 SK건설 부회장, 최신원씨, 최혜원씨, 최지원씨 등 직계 가족들이 힘을 모아 2004년 설립했다. 최 회장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학업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부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선경최종건장학재단의 설립취지를 강조해왔다.

선경최종건장학재단의 목표는 올바른 덕성을 갖추고,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장학금)를 지원해 줌으로써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경최종건장학재단은 2004년 수원 지역의 고등학생 20명에게 처음으로 장학금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 현재까지 총 1,500여명의 중ㆍ고등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 지역도 SK그룹의 모태 지역인 수원에서 서울, 경기, 진천, 천안, 태안, 울산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재단에 속해 있는 학생들은 장애인 자활농장 봉사,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중증장애아동시설 방문 봉사, 국립서울현충원 비석 닦기 및 환경정화 활동 등 매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학업뿐만 아니라 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배워 나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최 창업주의 정신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명의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비롯한 복지단체에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왔다는 최 회장은 2009년 포브스 아시아판이 선정한 기부영웅으로 선정되며 눈길을 끌었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 부르짖은 구인회

담연 최종건 선경최종건재단
LG그룹의 창업주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해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으로 꼽힌다. 아들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 하지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 기업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복리를 먼저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의 백년대계에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기업을 일으킴과 동시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엄하게 교육했을 정도다.

실제로도 구 창업회장은 1968년 자신의 회갑 기념으로 경상남도 진주에 연암도서관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LG연암문화재단을 설립, 대한민국 과학기술 진흥 및 인재 육성에 힘써왔다. 구 창업회장의 가르침 덕분일까. LG그룹은 10대 그룹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사회공헌을 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 창업회장의 호인 '연암'(蓮庵)을 이름으로 하는 LG연암문화재단은 분야별로 5개에 달하는 LG그룹 공익재단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깊다. LG연암문화재단에서 하는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대학원생 장학금 지원과 교수 해외연맏?지원 등의 장학사업이다.

학업능력이 뛰어난 석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후원하는 '연암장학생 지원사업'은 올해까지 44년간 2,850여명의 대학원생들에게 약 117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또한 1989년부터 민간기업재단으로는 국내 최초로 인재양성과 학문수준의 세계화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해외연구교수 지원사업'을 통해서는 총 687명의 대학교수들에게 200억원이 넘는 해외 연구비를 지원해왔다.

그 밖에도 LG연암문화재단은 구 명예회장이 사저를 기증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인 LG상남도서관과 첨단시설을 갖춘 LG아트센터를 1996년과 2000년에 각각 설립, 우리나라 학술ㆍ문화계에 큰 이정표를 남기기도 했다.

LG연암문화재단은 2000년 설립한 LG아트센터를 통해 예술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LG아트센터. 주간한국 자료사진
LG그룹에는 '연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재단이 또 하나 있다. 바로 LG연암학원이다. 1973년에 설립된 LG연암학원은 산하에 천안연암대학과 연암공업대학을 두고 농업의 첨단화를 위한 인재 및 기술사회의 주역이 될 공업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정부의 교육기관 지방분산 정책과 축산진흥정책에 수응해 1974년 만들어진 천안연암대학은 현재 환경친화적 생명산업을 육성, 발전시키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1984년 문을 연 연암공업대학 또한 LG계열사와 산학협력을 통해 IT기술 전문인력을 양성하며 수험생과 기업 양쪽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지극한 고향사랑의 신격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국내 10대 그룹 창업주 중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롯데그룹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호인 '상전'(象殿)를 딴 재단이나 사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롯데그룹이 부산시에 기부채납하기로 결정했던 오페라하우스의 이름을 '상전홀'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논의가 있긴 했지만 지역주민 및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해당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라 그마저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신 총괄회장의 호를 딴 재단ㆍ사업은 없지만 이를 대체할만한 것은 존재한다. 바로 신 총괄회장이 57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만든 롯데삼동복지재단이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고향인 울산지역 발전과 복지사업에 기여하고 싶다는 신 총괄회장의 제안에 따라 설립됐다. '삼동'이라는 재단의 이름도 신 총괄회장 고향 마을의 지명에서 따왔다. 1971년부터 매년 마을잔치를 열고 주민들과 덕담을 나눌 만큼 고향사랑이 지극한 신 총괄회장다운 발상이다.

연암 구인회 LG 연암문화재단 LG 연암학원
2009년 12월 울산롯데호텔에서 있었던 재단설립기념식에서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은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사랑과 희망의 옷'을 짓기 위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시작하려 한다"며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웃사랑, 고향사랑을 실천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설립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신 이사장의 설명대로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지역소외계층지원사업, 농어촌지역문화사업, 지역인재육성사업 등 지역의 문화ㆍ복지사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당초 활약하던 울산지역에서 범위를 넓혀 부산 중구, 해운대구 등의 소외계층 지원에까지 열심을 내고 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설립 이후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12억원의 사업비를 집행한 바 잇는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올해 사업비 규모를 14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나눔의 철학 강조한 허준구

GS그룹은 창업 이후 오랫동안 동업자로 일해왔던 LG그룹에서 에너지ㆍ유통 계열사 위주로 분리돼 2005년 공식 출범했다. 그룹의 나이가 8세에 불과한 만큼 창업주라 할 만한 사람도 없다. 일각에서는 고 허만정 회장을 창업주로 꼽기도 하지만 허 회장에게는 LG그룹 공동창업주라는 말이 더욱 어울린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을 GS그룹의 실질적인 창업주로 꼽았다.

'남촌'(南村)을 호로 하고 있는 허 명예회장은 조부였던 허준 선생의 효, 겸손, 나눔, 근검, 절약의 정신을 본받아 이를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고 알려져 있다. 남촌재단은 근검, 절약 정신의 바탕으로 나눔의 철학을 강조한 허 명예회장을 기리는 의미에서 탄생했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지역소외계층지원사업, 농어촌지역문화사업, 지역인재육성사업 등 지역의 문화ㆍ복지사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15일 부산시 동래구 사직구장에서 열린 소외계층 어린이 초청행사. 주간한국 자료사진
허창수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남촌재단은 소외계층 환자를 위한 의료 사업, 미래리더 육성을 위한 교육 및 저소득 가정 자녀의 장학 사업, 문화예술 활성화 및 소외계층 대상 문화 프로그램 지원과 같은 문화복지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남촌재단 설립 당시 보유하고 있던 GS건설 주식 3만5,800주를 출연한 허 회장은 2007년 8만6,310주, 2008년 2만8,660주, 2009년 3만2,470주, 2010년 4만9,020주, 2011년 3만1,500주, 2012년 6만8,000주 등 지난 7년간 총 33만주에 달하는 주식을 내놓았다. 액수로 따지면 320억원 가까운 금액이다. 창립이사회에서 "지속적인 사재 출연을 통해 재단을 500억원 이상 규모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던 허 회장의 다짐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허 회장은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이타주의자 48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학원사업에 매진한 조중훈

한국 수송ㆍ물류산업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의 호는 '정석'(靜石)이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성격인데다 기계를 좋아해서 어린 시절 집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뚝딱거리고 어질러 놓기를 좋아했던 조 창업회장을 위해 선친이 지어준 호라고 전해진다.

한진그룹에는 조 창업회장의 호를 딴 정석기업이 존재한다. 여타 10대 그룹 창업주의 아호가 대부분 해당 기업의 공익재단에 사용되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특이한 경우다. 조 창업회장의 호를 이름으로 하고 있는 정석그룹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돕는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조 회장이 27.21%에 이르는 지분을 지니고 있는 정석그룹은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주요 고리인 ㈜한진의 지분을 19.41%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상전 신격호 롯데삼동복지재단
1988년 국내 최초의 사내대학으로 설립된 한진산업대학을 모태로 하고 있는 정석대학은 조 창업회장의 유지가 가장 깊게 담겨있는 사업이다.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바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조 창업회장의 평소 지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1999년 학교법인 한진학원을 설립해 같은 해 8월 정부로부터 학위인정 사내기술대학으로 인가받은 한진그룹은 2000년 정석대학을 정식으로 개교, 2002년 95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올해까지 1,000여명의 우수 기술인력을 탄생시켰다. 전신인 한진산업대학의 졸업생 2,429명까지 포함하면 총 3,500여명의 전문인력을 배출한 것이다.

인하대학교 내에 설립된 정석학술정보관도 조 창업회장의 손길이 닿아있는 곳이다. 2002년 타계한 조 창업회장은 생전에 모은 사재 가운데 1,000억원 가량을 공익재단과 그룹 계열사에 희사했는데 그중 500억원은 수송ㆍ물류 연구발전과 육영사업기금으로 학교법인 인하학원과 정석학원, 재단법인 21세기한국연구 등 3곳에 배분됐다. 인하학원에 대한 기부금은 조 창업회장이 생전에 강한 애착을 보인 최첨단 수송ㆍ물류 전자도서관인 정석학술정보관 건립기금으로 사용됐다.

그밖에 조 창업회장이 외길인생을 걸었던 물류분야 전문의 학술연구지원을 하는 정석물류학술재단도 2004년 설립,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재중시 우선하는 박두병

남촌재단은 소외계층 환자를 위한 의료사업, 저소득 가정 자녀의 장학사업, 소외계층 대상 문화복지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26일 한국컴퓨터재생센터와 함께 수행한 동티모르 IT 정보화 지원사업. 주간한국 자료사진
두산그룹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을 담은 시리즈광고로 유명하다. 이처럼 '인재의 성장과 자립' 강조하는 두산그룹의 특징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을 유지로 내세운 연강 박두병 초대회장 때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박 초대회장의 호인 '연강'(蓮崗)에서 이름을 딴 두산연강재단은 그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78년 설립됐다. 두산연강재단은 출범 이후 장학사업, 학술연구비 지원, 교사해외학술시찰, 교육복지사업, 도서 보내기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두산연강재단에서는 매년 우수한 고등ㆍ대학생을 '두산연강장학생'으로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대학 장학생들의 재능기부 활성화 및 교육소외계층의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두산연강장학생 멘토링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초등ㆍ중학생 소년소녀가장을 대상으로 하는 두산어린이가족 장학금, 두산체육꿈나무 장학금, 다문화가정 장학금 등을 제정해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1989년부터 시작한 '교사해외학술시찰'도 두산연강재단 만의 특별한 사회공헌활동으로 꼽힌다. 전국의 초ㆍ중ㆍ고등학교 역사ㆍ사회 교사를 선발해 중국 내 고구려 유적과 일본 내 백제 유적 등 우리 고대사의 현장을 직접 탐방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 사업은 참여교사들로 하여금 우리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의식을 심어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2010년부터는 전 과목 교사들로 대상을 확대해 중국 경제를 탐방하는 '교사해외경제시찰'도 실시, 교사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경제관념을 교육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두산연강재단의 도서 보내기 사업은 일선 학교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과 학생들이 읽고 싶어하는 책을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수혜자 중심의 '맞춤식'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의 도서ㆍ벽지 초등학교와 어린이병원학교 등에 50만권에 달하는 도서를 지원해왔으며 2014년까지 해외에 설립된 모든 한국학교에 맞춤식 도서를 지원할 계획이다.

남촌 허준구 남촌재단
또한, 두산연강재단은 2007년 '두산아트센터'를 개관, 그동안 학술과 장학 분야에 한정됐던 사회공헌 활동을 문화예술 분야로 확장했다. 공연분야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자육성 프로그램'과 쇼케이스, 독회, 워크숍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 40세 이하 예술가들의 새로운 실험을 지원하는 '두산아트랩'을 운영하고 있다.

미술분야에서도 젊은 작가들에게 미국 뉴욕 아파트와 작업실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두산레지던시 뉴욕'을 운영해 왔으며, 2009년 7월 뉴욕 첼시에 개관한 '두산갤러리 뉴욕'은 한국 유망 작가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에는 박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공연ㆍ미술 분야에서 활동 중인 만 40세 이하의 잠재력 있는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두산연강예술상을 제정,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정석대학은 국내 최초의 사내대학으로 설립돼 올해까지 1,000여명의 우수 기술인력을 탄생시켰다. 사진은 지난 4월 8일 서울시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12회 정석대학 학위수여식. 주간한국 자료사진
정석 조중훈 정석기업 정석대학 정석물류학술재단
두산연강재단은 매년 우수한 학생들을 두산연강장학생으로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5일 서울시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2013 두산연강재단 장학증서 수여식. 주간한국 자료사진
연강 박두병 두산연강재단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