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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숙청' 뒤엔 국정원 오발탄?

멀쩡한 장성택 실각 발표로 '숙청' 빌미 제공 논란
3일 실각 발표한 장성택 8일 김일성 배지 달고 10시간 대토론 참석
'장성택 숙청'의 후폭풍이 거세다. 북한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미국ㆍ중국 등 주변국과 전 세계가 '장성택 이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컨트롤타워이자 서방 세계의 대화 파트너가 사라진 때문이다.

북한은 장성택의 공백부터 메우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내부 동요를 공포정치로 억누르면서 경제 불씨를 살리는 데 안간힘이다. 남한에 대해서는 경협과 위협이라는 병진 전술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희망'이 사라진 북한은 여전히 불안하다.

우리나라는 장성택 숙청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합리적인 대화 상대를 잃은데다 북한이 체제 한계의 돌파구로 이미 남한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중국ㆍ미국 등 북한과 직간접의 관계에 있는 나라들은 이전의 우호적 입장을 접고 냉랭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 관계가 장성택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되는 양상이다. 그 시발점은 국가정보원이 지난 3일 '장성택 실각'(설)을 공표하면서부터다. 이후 장성택은 실각됐고, 결국 처형됐다.

그러나 국정원이 발표한 '장성택 실각'은 사실과 다르다. 3일 당시 장성택은 멀쩡했고 8일 북한 정치국 회의에 참석해 10시간 가량의 비판토론에 나섰다. 그날 연행된 장성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쫓기듯 12일 처형됐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치권의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국정원이 꺼낸 '회심의 카드'가 오히려 장성택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3일'장성택 실각'사실 아냐

국정원은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장성택 실각'을 보고했다. 국정원은 이날 "최근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1월 하순 북한이 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공개 처형한 이후 장성택 소관 조직과 연계 인물들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성택은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당 행정부는 기능이 무력화되거나 해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장성택 실각' 의 파장은 엄청났다. 시민들은 북한 급변 사태에 깜짝 놀랐고, 준 전시상태처럼 뉴스마다 북한 소식을 쏟아내면서 모든 이슈가 묻혀버렸다. 세계는 '장성택 실각'을 긴급히 타전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방송 중간 중간 북한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이로써 '장성택 실각'은 기정사실처럼 됐다.

그러나 국정원이 '실각설'을 발표한 3일 장성택 신변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는 8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장면에서 확인된다.

먼저 장성택의 모습이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가 선명하다. 국정원 발표처럼 장성택이 3일 실각됐거나 숙청됐다면 김일성 배지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공직이 박탈되거나 범법자로 간주될 경우 가장 먼저 배지부터 뗀다. 이는 12일 장성택이 처형되기 직전 특별군사재판소에 끌려온 모습에 김일성 배지가 없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장성택이 8일 정치국 회의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참석한 것은 국정원이 3일 발표한 '실각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의 성격이다. 이날 확대회의는 '장성택 비판' 자리와 다름 없었다. 8일 회의에 참석했던 당 간부와 접촉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회의는 10시간 가량 열렸고, 장성택을 비판하는 주장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장성택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당시 회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박봉주 총리가 울면서 비판하는 모습, 김기남 당 비서 등이 손을 들고 발언을 요청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가장 격론을 벌인 부분은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 공개 처형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을 비판하는 측은 이용하ㆍ장수길의 비리가 중대하고 장성택이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대해 장성택은 이용하ㆍ장수길이 살아온 과정과 역할을 거론하면서 공개 처형은 지나친 처벌이었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특히 마무리 발언에서 김일성ㆍ김정일 시대에 나라의 무역일꾼으로 커 온 사람을 함부로 죽인 데 대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공포정치를 문제삼으며 광폭정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으로부터 의외의 지적을 받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흥분해 책상을 치며 장성택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 8일 장성택이 인민보안원에 의해 끌려나가는 모습은 김 제1위원장의 명령을 따른 것으로 국내외 언론이 반혁명 행위로 '체포' 된 것으로 보도한 것과 차이가 있다.

또한 처음부터 장성택을 제거(체포)하기 위한 회의였다면 10시간씩 가지 않고 단시간에 마무리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셋째,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의 근거로 제시한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처형 부분이다.

국정원은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장성택의 오른팔과 왼팔 두 명이 공개처형 당했으며, 그 이후 장 부위원장이 자취를 감췄다"면서 국정원의 보고 내용을 전했다.

언론 역시 '장성택 실각'과 '측근 처형'을 함께 보도해 장성택 실각에 신빙성을 높였다.

하지만 장성택과 이용하ㆍ장수길의 관계는 '오른팔ㆍ왼팔'로 비유될 정도의 '최측근'이 아니다.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은 사실 장성택보다 그의 부인인 김경희 당 비서 쪽 사람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당 조직상 이용하ㆍ장수길이 장성택 행정부장 사람으로 분류돼 있지만 실제 직책과 역할은 김경희 경공업 부장의 지휘를 받는 위치에 있다. 즉 김경희가 북한의 물자를 총괄한다면 장수길 부부장은 주로 해외에서 물품을 반입하는 일을, 이용하 제1부부장은 북한내에 물품을 보급하는 일을 주로 했다.

이용하ㆍ장수길의 처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단둥(丹東)의 대북소식통은 그(처형) 과정을 상세하게 들려줬다. 이용하ㆍ장수길에 대한 비리가 보고된 뒤 당에서 승리무역을 급습했고, 이 과정에 총격전이 있었다는 것. 위기에 몰린 이용하ㆍ장수길은 "승리무역은 장성택 부장이 관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체포된 이용하ㆍ장수길은 당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됐다.

이처럼 이용하ㆍ장수길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장성택을 방패막이로 앞세웠을만큼 북한에서 장성택의 위상은 대단했다.

국정원 '노림수' 의혹

국정원은 3일 '장성택 실각'을 발표했다. 하지만 앞서 분석했듯 장성택은 3일 실각되지 않았고, 국정원이 '실각설'의 근거로 든 이용하ㆍ장수길과도 '최측근' 관계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왜 3일 '장성택 실각'을 발표했을까?

국정원 관계자는 모기관의 감청에 의해 지난 11월 이용하ㆍ장수길 처형사실을 파악했고 장성택의 실각이라는 중대 사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긴급히 3일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의 발표에는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국정원이 이용하ㆍ장수길의 처형을 안 것은 11월말인데 왜 그때 발표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또한 '장성택 실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굳이 폭발성이 큰 카드를 꺼냈느냐 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의 '노림수'를 의심한다. 12월3일 저녁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민주당 김한길 대표. 전병헌 원내대표는 '4자 회담'을 열어 '국정원개혁특위'를 개설하는 데 합의하기로 했다.

국정원개혁특위의 임무를 보면 정보위를 통한 감시와 예산 통제, 정치 관여 행위 금지와 정보활동 위축 등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12월 3일은 국정원에게 '사자(死者) 회담'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때문에 정치권은 국정원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핵폭탄'을 공개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더구나 국회 정보위에 정보 보고한 때와 언론 마감 시간에 '장성택 실각'이라는 빅이슈를 전달한 시점을 보면 언론플레이도 의심받을 만하다.

다시말해 국정원이 조직 위기 상황에서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장성택 실각'카드를 불쑥 꺼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중국이나 미국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데서도 짐작될 수 있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한국 보도를 접하고 너무 놀라 중국 요로에 확인했지만 중국 측도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며 "한국 정부가 무모한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왔다.

장성택 궁지로 몰았나

'장성택 실각'발표는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다. 특히 당사자인 장성택은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가 결국 처형되고 말았다.

전 세계가 '장성택 실각'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상황은 북한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장성택 반대파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더욱이 국내 언론에서 10일을 전후해 장성택 측근이 북한과 관련된 극비 문서를 들고 망명했다는 보도는 장성택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한국에서 연속 보도되는 충격적인 소식들은 북한 수뇌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며 "특히 장성택 측근 망명 보도는 장성택을 수렁으로 빠트렸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을 통해 제3국으로 망명하려는 자의 신분에 대해 북한도 제대로 몰랐다. 망명자가 소지했다고 보도한 극비 문건에 대해선 더더욱 몰랐다. 한국 언론의 앞서간 보도는 장성택에겐 독이 됐다. 장성택의 국가 경영, 즉 '선군(先軍)'에서 '선당(先黨)', '선경(先經)'으로 나아간 데 대해 불만을 가진 군부(강경파), 장성택에 의해 피해를 본 또 다른 집단, 자신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 한 김정은 제1위원장까지 장성택에 등을 돌릴 수 있는 빌미가 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 숙청'에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앞장섰다. 그럴만한 게 북한 고위 인사가 중요 문건을 들고 탈북 내지 망명할 경우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곳은 국가안전보위부다. 소식통은 "장성택 처형은 '망명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장성택 제거라는 극단의 선수를 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에서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장성택 처형의 최초 원인으로 3일 국정원의 '장성택 실각'발표룰 꼽았다. 이후 북한내, 특히 군부와 장성택 반대파, 김정은 친위그룹 등이 반(反)장성택 움직임을 보였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장성택이 처형됐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장성택 실각' 발표 이후 실제 현실로 이어지면서 놀라운 정보력을 평가받았다. 그러나 국정원 답지 않게 너무 많은 사실을 공개한 것들이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중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 합리적인 파트너를 잃게 한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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