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전' 스타트 '제1야당' 쟁탈전6·4 지방선거 '두 잠룡' 분수령 安-朴 '양보-덕담'사라지고엇갈린 행보 치열한 신경전만 대권 야망 '동지에서 적으로'

서울의 한 음식점 앞에서 만난 안철수 의원(오른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함께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다.
"이미 대권전(大權戰)은 시작됐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요즘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과의 관계를 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이다. 차기 대권의 유력 주자인 안 의원과 잠재적 후보인 박 시장 간에 물밑 대권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르면 오는 6ㆍ4 지방선거는 두 잠룡의 대권 행보에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최근 안 의원과 박 시장의 상반된 모습은 그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과거 양보와 덕담으로 서로를 위하던 '동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경쟁과 신경전이 치열한 '적' 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에 속도를 내고 내부에서 6ㆍ4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박 시장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지는 양상이다.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두 사람의 예비 대권전은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2년여 전인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할 때만 해도 안 의원과 박 시장은 '동지'라고 할 만큼 가까웠다. 그해 9월 6일 서울시장 후보를 정하는 담판에서 안 의원이 박 시장에게 양보하면서 두 사람의 동지적 관계는 절정을 이뤘다.

그러한 파격적인 양보가 가능했던 것은 두 사람의 두터운 '신뢰' 때문이었다. 박 시장이 2000년 창립한 아름다운 재단, 2006년 만든 희망제작소에 안 의원은 모두 이사로 참여했다. 또한 안 의원은 안철수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아름다운가게의 일일점원도 했으며 희망제작소 '소셜 디자이너 스쿨'의 단골 강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뢰는 2012년 대선판을 떠난 안 의원이 작년 4ㆍ24 재보선(서울 노원병)을 통해 국회에 입성,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나서면서 균열의 전조를 보였다. 안 의원이 정치적 행보를 가속화하고,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로 오히려 박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두 사람의 틈새가 커졌다. 개인 안 의원과 박 시장의 신뢰 관계가 냉혹한 정치에 뒷걸음질 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안ㆍ박 모두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라는 점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의 대권 후보였고, 박 시장은 '소통령'이라는 서울시장이다. 두 잠룡의 향후 위상이 충돌하는 지점이 6ㆍ4 지방선거다.

안 의원은 신당 창당과 6ㆍ4 지방선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작년 6월 싱크탱크 격인 '정책네트워크 내일'(내일)을 결성해 신당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겼고, 11월에는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를 출범시켜 신당의 핵심 동력 역할을 맡게 했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에 올인하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다 무기력하게 물러난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데다 향후 정치력을 발휘하고 대권 행보를 펴가는 데 당이라는 기반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당의 첫 시험대가 6ㆍ4 지방선거다. 선거 결과에 따라 신당의 위상과 진로, 안 의원의 대권 야망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 의원 측은 서울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 기초자치단체 선거에도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수도권을 비롯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은 호남 지역에 승부수를 띄워 신당의 기반을 다지고 장차 제1야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안 의원 진영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중량감 있는 후보를 물색하고 있고, 경기지사 후보로 민주당 정장선 전 의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전북지사 후보로 민주당 의원을 지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박원순 시장도 6ㆍ4 지방선거에 정치적 운명이 걸린 만큼 재선을 위해 전력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박 시장은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할 수 있고, 반대로 정치권에서 미미한 존재로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에 따라 박 시장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서울시장 선거가 새누리당-민주당-안철수 신당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질 경우 오차범위 내에서 승리하거나 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당 후보의 출마 여부에 따라 박 시장의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박 시장은 지난해 초부터 "협력적 관계"를 강조하며 안 의원에게 살가운 모습을 보여 왔다. 작년 11월 관훈클럽토론회에서는 "차기 대선에 나갈 생각이 없다"며 당장 대권보다는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은 다분히 안 의원을 의식한 발언이라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시장의 행보를 볼 때 '4년 뒤는 알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 박 시장은 작년 서울시의 무상보육 문제를 두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박근혜 대 박원순'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또한 당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잦아지는 등 민주당 내부의 스킨십도 강화해 왔다. 마치 대권의 1차 관문인 당내 경선을 보다 유리하게 풀어가기 위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반면 최근 안 의원은 박 시장의 구애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지'에서 '적(경쟁자)'으로 변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지난 16일 박 시장은 안 의원 지역구인 노원구청 신년회에 참석했지만 안 의원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기도교육청 주최 토론회를 찾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만났다. 안 의원 측이 6ㆍ4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김 교육감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따랐다. 안 의원은 박 시장이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안 의원과 경쟁 아닌 상생을 하겠다'고 언급한 데 대해 "다른 분들 말씀 살필 여유가 없다"며 박 시장의 계속된 구애를 뿌리치기도 했다.

6월 4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는 안 의원이나 박 시장에게 하나의 시험대다. 안 의원 측 새정치추진위원회 윤여준 의장은 "서울시장 후보를 안 내는 것은 노른자위를 빼먹는 셈"이라며 "박원순 시장에 버금가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낼 것"이라고 밝혔지만 과연 후보를 낼 지는 미지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대권 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신당을 제1야당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안 의원이 직접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각종 여론조사에 비춰 안 의원의 당선 가능성도 큰 만큼 서울시장이 되면 그 자체가 최고의 대권 행보이고 야권이 신당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 의원이 6ㆍ4지방선거 및 신당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박 시장과는 궁극적으로 다른 길을 향하고 있는 것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박종진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