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파괴되는 생체리듬


요즘은 12시가 넘는 시간에 거리에 나가도 전혀 낯설거나 한산하지 않다. 무리지어 다니는 젊은이, 데이트하는 연인들, 쇼핑하는 가족들, 심지어는 아이들도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고 돌아 다닌다.

밤낮의 주기에 따르면 규칙적인 생활이 깨어지면 우리 몸의 생리적 리듬을 조절하는 생체시계에 혼란이 생기고, 생체시계가 고장이 나면 가장 먼저 수면이 영향을 받게 된다. 두뇌의 시상하부에 시신경교차핵이 있는데, 이 곳에서 눈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날이 밝으면 깨어나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 휴식을 취하는 것은 바로 생체시계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생체시계가 고장이 나면 특별한 병이 없이 단순히 잠이 오지 않는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잠이라는 것은 그냥 쉰다는 의미만 지니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쥐를 대상으로 살험한 바에 따르면 수면을 박탈당한 쥐는 평균 17일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잠을 자면 인체의 혈액이 간으로 귀속되어 새로 보충되어지고 저장돈다. 따라서 이 혈액으로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하는 원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피가 모자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눈이 침침해지고, 귀에서 소리가 들리고, 머리카락이 빠지게 된다. 여성들은 생리주기에 영향을 받아서 생리불순과 생리통, 심지어는 불임과 비만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수면시간은 6시간 정도다. 단 시간보다는 얼마나 알차게 잤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숙면을 위해서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며, 또한 낮에 충분한 햇빛을 쬐도록 하고 잠자리는 조용한 곳에 마련하며 실내 온도는 약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편안한 음악을 듣거나 독서, 명상등을 통해 긴장을 풀어준다. 불면을 이기기 위해서는 늦게 과식하지 말아야 하고 저녁시간에는 커피나 차 콜라 등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식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잠이 잘 안 올때 이런 약차를 만들어 마시는 것도 좋다. 파를 끓여 마시면 파의 유화알릴 성분이 신경흥분을 진정시켜 숙면에 도움을 준다.

소엽차는 특히 울화증에 의한 가슴 답답함이나 불면증에 좋은데, 일종의 향 스트레스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소엽을 1일 20g씩 끓여 식후, 취침 전 1시간에 차처럼 마시는데, 끓일때 귤껍질 20g을 가미하면 정신신경안정제 역할을 한다. 하는 일이 제대되지 않아 가슴속에 열불이 난다거나 몸이 여위고 얼굴이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잠을 못 잘때에도 좋다.

또 호박을 삶아 먹으면 잠이 잘 온다. 잠드는 시간이 짧아지고, 깨어나면 정신이 상쾌해진다. 구워서 먹거나 죽을 쒀서 먹어도 되고, 호박꿀단지를 해먹어도 좋다. 호박은 잘 익을수록 단맛과 영양이 증가하고, 소화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위장이 약하고 마른 사람, 또는 병후 회복기의 환자에게 아주 좋다.

호박중탕을 만들때 대신에 멧대추씨 볶은 것을 넣어도 된다. 300g정도 되는 애호박에 멧대추씨 볶은 것 150g을 넣고 중탕하여 즙을 내서 1일 3~4회, 1회 1컵씩 나누어 마신다. 멧대추씨는 산조인 이라는 약인데, 신경안정 효과가 뛰어나므로 볶아서 차로 달여 마시면 숙면을 이룰 수가 있다.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면증에는 호도가 좋다. 껍질 벗긴 호도를 약간 뽁아 가루를 만들어 두었다가 매일 식후에 한두 숟가락씩 끓인 물 한잔에 잘 풀어 마신다. 불면증이 고질적이라면 다량의 대추를 푹 고아 그 물로 호도를 갈아 쌀과 함께 쑨 호두죽도 도움이 된다. 단 많이 먹을 경우 설사를 유발할 수 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제 밤에 자지 않는 생활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버렸다. 그렇다고 방관만 할 수 없는 법. 되도록 밤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잠을 자도록 노력해 보자.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


입력시간 : 2003-10-01 09:46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