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보약에 대한 편견과 오해


한의학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 汗(땀을 낸다), 吐(토하게 한다), 下(설사를 시킨다), 和(안팎을 화해시킨다), 溫(찬 것을 따뜻하게 한다), 淸(열을 식힌다), 補(모자란 것을 보한다), 消(넘치고 실한 것을 깎아 내린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치료방법이 나뉘는 것은 작전 상 적군을 몰아내야 하는 것인지, 안으로 모아서 포로로 잡아야 하는지,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등등의 목적에 따라 전투방법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사실 흔히 얘기하는 보약에는 위의 여덟 가지 치료법이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좁은 의미의 보약은 역시 우리 몸의 음양기혈(陰陽氣血) 중 허한 부분을 찾아 이를 북돋아주어 몸의 정상적 활동을 도와주는 약에 해당된다. 이렇게 보자면 보약은 크게 보기약(補氣藥), 보혈약(補血藥), 보양약(補陽藥), 보음약(補陰藥)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보기약을 쓰는 경우는 기운이 없고 쉽게 피로하며 온 몸이 나른하고 식은땀을 잘 흘리고 맥이 약하고 입맛이 없으며 설사를 하는 경향이 있을 때이다. 보혈약은 몸 안의 혈액이 부족하여 안색이 누렇고 말랐으며 손톱과 입술이 창백하고 머리가 자주 어지러우며 여자의 경우 월경량이 적거나 불규칙적인 경우이다.

보양약은 에너지가 부족하여 허리 아래 부분이 차고 허리와 무릎 등이 마르고 약하며 정력 감퇴, 조루증, 야뇨증, 유정 등이 있는 경우에 쓴다. 보음약은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부족하여 몸이 마르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피부가 몹시 건조하며 마른기침을 잘 하고 열이 나며 뺨이 붉어지고 손바닥과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경우에 쓴다.

이렇게만 보면 약 쓰기 매우 쉬운 듯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 증상만 가지고 오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 없이 쓴다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 한 장부의 기능이 과다하게 항진되면 다른 약한 장기의 기능은 더욱 위축되어 병이 심해지고, 전체적으로 몸의 기운도 오히려 떨어지는 결과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흔히 보약은 여름에 먹으면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는 여름에 보약을 먹어봤자 땀으로 다 나가 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땀은 땀으로 나가야 할 성분이 나가는 것이지 약 성분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여름에도 써야 할 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여름에 식욕이 없고 나른할 때 몸의 기능을 바로 잡아주고 대사 활동을 왕성하게 해주는 보약을 먹으면 오히려 여름을 쉽게 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노인들 분이 보약을 드시면 돌아가실 때 힘들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노인들은 정혈(精血)이 많이 쇠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보하는 것이므로 같은 증상이라도 노인들께 쓸 약은 달라지게 된다. 남녀노소와 사계절에 따른 약의 운용은 한의학이 갖고 있는 최고의 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임신부의 보약 먹기에 대한 편견도 우리사회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잘못된 인식 중 하나 이다. 임신 입덧에 쓰는 약이 따로 있고, 하혈에 쓰는 약이 따로 있고, 출산 할 때 힘들지 않게 하는 약이 있고, 심지어는 태아의 위치가 잘못 된 경우 쓰는 약에 이르기까지 한약의 효용은 매우 넓다.

임신부의 상태에 따라 약의 투여 여부를 결정하되, 임신 초기는 약물에 영향이 민감한 때이기 때문에 양약과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약물을 투여하게 된다.

한방에서는 임신 중 금해야 할 약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대로부터 문헌적으로 알려진 약이 있고, 최근에는 지속적으로 실험을 통해 임신 중 금기약과 써도 좋은 약을 가려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맥, 망초, 천남성, 목단피, 천오, 부자 등의 약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전문 지식이 있는 한의사라면 임신 중에 이런 약은 쓰지 않는다.

편견과 오해는 아예 모르는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 때로 잘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단순한 보약으로만 취급받는 한약이 그 진정한 가치를 찾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


입력시간 : 2003-10-02 11:18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