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도둑질에 투영된 시대상과 문화


■ 도둑의 문화사 와타나베 마사미 등 지음/송현아 옮김/이마고 펴냄.

도둑질은 가장 오래된 범죄다. 동시에 가장 흔한 범죄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도둑질은 반사회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모세의 십계명과 불계의 오계에도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도둑질을 계율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라. 어린 시절 무엇을 훔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 기억이 있지 않는가.

우리들에게는 도둑질을 관대하게 보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로빈 후드나 홍길동을 도둑놈이라고 부르지 않고 의적(義賊)이라 부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부유층의 집만을 털었던 조세형,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긴 지강헌, 탈주에서 도피까지 수많은 화제를 뿌렸던 신창원 등을 내심 영웅시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심지어 남화경(南華經) 외편에서는 도둑의 도(道)를 말하기도 한다. 먼저 성(聖)이다. 집에 간직해 둔 물건이 있나 없나를 알아내는 것이다. 용(勇)은 맨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반대로 나올 때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義)다. 지(知)는 일의 되고 안됨을 판단하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인(仁)은 훔친 물건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다.

도둑의 문화사는 이런 생각을 토대로 도둑질을 단순히 범죄행위라는 측면에서 보지않고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모두 일본 고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5명의 공동 저자는 각각의 전공분야에 맞춰 문학작품과 신화, 민간 풍속 속에서 도둑질이 어떻게 행해졌으며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시대와 공간을 넘어 추적했다.

제1장 ‘도둑질의 미학’에서는 도둑질을 문화의 한 형태로 바라보고, 의적이나 여장 도둑, 괴도 루팡 등 도둑의 형태와 종류, 그 성격에 대해 개괄했다. 헐벗고 고통받는 백성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문학 작품 속의 도둑들의 이야기와 권력에 대한 불평불만이 의적을 통해 표출된 일본 도쿠가와 시대의 상황들이 담겨있다.

2장 ‘도둑에게도 도덕은 있다’에서는 도둑을 엄연한 직업으로 여기면서 나름대로 그들만의 사회를 형성했던 도둑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고, 4장 ‘농작물 훔치기의 풍습’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각 고장에서 나타나는 농작물 도둑질 전통을 살펴보면서 이를 대입 수험생들이 대학교수의 문패를 훔치는 행위와 연관짓기도 한다.

입력시간 : 2003-10-0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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