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층층나무


한동안 숲 마다 층층나무 꽃이 한창이었는데, 이번 비에 꽃잎이 떨어져 안타깝다. 수백 개는 됨직한, 접시처럼 둥근 꽃차례를 한 나무 가득 층층이 달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층층나무는 그렇게 풍성한 꽃들을 만들어 내는 나무 치고는 수수하고 은은하여 더욱 좋다.

꽃은 희지만 우유빛이 돌아 부드럽고, 꽃들은 많지만 그 하나하나는 아주 작고 미약하여 수수하게 느껴진다. 자신은 언제나 숲 속에 속한 일부분임을 말하듯.

층층나무는 층층나무과 층층나무속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이다. 어느 숲이나 층층나무가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흔한 나무이다. 쑥쑥 잘도 자라, 키도 우뚝 솟고 둘레도 한 아름씩 되는 나무를 만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봄이면 붉은 빛이 돌던 어린 가지에 잎이 난다. 타원형의 잎에는 잎의 모양을 따라 마치 평행맥처럼 잎맥이 발달하여 특징적이다. 다만 이런 잎들은 층층나무와 형제가 되는 말채나무나 산딸나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들이 서로 마주나는 반면 어긋나게 달려 구별이 가능하다.

늦은 봄, 아니 초여름에 피는 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고 그 자리엔 콩알보다 작은 둥근 열매들이 녹색에서 점차 붉게 그리고 나중에는 검은 보라빛을 띠도록 진하게 익어 하나하나 떨어진다.

층층나무란 이름이 왜 붙었을까? 나무를 한번 바라만 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무의 가지가 갈피갈피 수형으로 갈라져 층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층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계단나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은 하도 두드러져 나무에 대해 초보자라도 한번 알려주면 절대 잊지 않는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이 층층나무가 유난히 많음을 느끼곤 한다. 우거진 숲에 길이 나거나 빈 공간이 생겨 햇볕이 비교적 충분히 들어 올 수 있는 조건이 생기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나무가 바로 이 층층나무이기 때문이다. 기회에 아주 강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좋게 말하여 선구자라는 뜻으로 ‘선구수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숲 속의 무법자라하며 ‘폭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가장 먼저 때가 되었음을 포착하고 쑥 쑥 키를 올려 사방에 가지를 펼쳐내어 숲 속의 공간에 쏟아지는 햇볕을 차지한다. 햇볕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같은 나무들이 한 곳에 모아 자라는 일도 없다. 서로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굵게 잘 자라니 단단한 나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목재로 이용하기에는 충분하다. 목재의 색이 연하고 나이테로 인한 무늬가 두드러지지 않아 깨끗하여 가공품을 만드는데 이용한다. 특히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 산벚나무 등 몇가지 나무의 목재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층층나무도 그 중에 하나 들어 있다. 불경을 새기기에 앞에서 말한 목재의 특징이 잘 맞기 때문이다.

조경수로 심기에도 괜찮을 듯싶다. 꽃도 좋고 나무의 모양도 특별하지만 가을에 달리는 열매들은 새를 부르니, 아기자기한 작은 정원은 어울리지 않지만 공원같은 곳에 풍치수로 쓰기에는 좋은 점이 많다. 정말 마지막 봄이 가기 전에 숲으로 가 층층나무를 한번 찾아 불러보자.

입력시간 : 2003-10-0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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