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자가 상징하는 글꼴과 의미분석


■ 욕망하는 천자문 김근 지음/ 삼인 펴냄

천자문이 욕망을 하다니, 책 제목이 기괴하다면 기괴하고, 도발적이라면 아주 도발적이다. 전작 ‘한자는 어떻게 중국을 지배했는가’에서 의식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한자의 역할에 줄곧 주목해 온 지은이가 이번에는 천자문을 펼쳐 들었다.

지은이는 천자문이라는 텍스트를 오늘의 시각으로 다시 읽을 수 있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 지를 자문하고 자답한다.

지은이에게 ‘문자로 짜여진 텍스트’는 “잠재의식이 어떤 형태를 갖추려고 준비하는 경계 영역”이다. 지은이는 이런 전제 아래 천자문 250개 절구와 1,000개의 글자를 대상으로 자형 분석을 통해 의미를 추적하고, 한자의 이미지가 드러내는 의미를 상상력을 통해 이를 재구성한다. 그것이 텍스트의 진실과 그 효과에 접근하는 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책은 천자문 자체에 대한 해설이라기 보다는, 천자문을 대표주자처럼 내세워 한자에 숨어 꿈틀대는 상징성 전반을 분석하고 있다. 지은이에게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것은 한자란 청각성(字音)과 함께 시각성(字形)을 동시에 함유한 상징 부호이기 때문이다.

사언(四言)시로 이뤄진 천자문 구절 중에 ‘배회첨조(徘徊瞻眺ㆍ배회하면서 여기저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조망한다, 바라본다는 뜻으로 쓰이는 眺(조)라는 한자에 대한 지은이의 접근방식은 이렇다.

“눈 목(目)과 함께 이 글자를 구성하는 조(兆)는 원래 점을 치기 위해 거북 등껍질이나 사슴 어깨뼈 같은 갑골에 불을 지져 생겨난 균열 모양을 본뜬 글자다. 따라서 眺는 ‘불규칙한 시선으로, 삐딱하게 바라보다’가 된다.”

‘옥은 곤륜산에서 나온다’는 ‘옥출곤강(玉出崑岡)’을 보자. 훌륭한 인재는 좋은 가문에서 나온다는 이 구절은 명문가를 따지고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는 전통의 진원지가 아닌가. ‘배우면서 여력이 있으면 벼슬에 오른다’는 뜻의 ‘학우등사(學優登仕)’는 또 어떤가. 배움의 궁극적 목표가 벼슬을 얻는 데 있다는 유가의 이 가르침은 지식인들의 출세욕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텍스트에 다름 아니다.

‘첩어적방(妾御積紡)’이란 구절도 있다. 부인과 첩은 길쌈을 한다는 뜻인 데 이 구절에는 길쌈과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들어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해석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에 대해 자신의 실존을 포기하고 남성과 같은 어떤 타자(他者)나 사회질서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의식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개개 문자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구의 조합에서 지은이는 개인보다 집단의 가치와 윤리를 우선시하고 개인의 개성은 억압하는 집단 이데올로기를 발견해 낸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7:01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