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비비추


요즈음 어디 가나 비비추가 한창이다. 제 계절을 만난 것이다. 이 꽃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알려져 심고 가꾸는 일이 많아져 더욱 그러하다. 무더운 여름, 늘씬한 잎새에 연보라빛 꽃송이들을 차례로 매어단 이 꽃송이들을 보노라면 절로 시원한 느낌이 든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붓고 난 뒤 꽃잎마다 잎새마다 조랑조랑 빗방울을 매어 단 비비추의 모습은 무더위에 짜증스럽기만 하던 여름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곤 한다. 계절마다 피는 꽃들을 보면 그 계절과 잘 어울린다 싶다. 비비추는 여름과 정말 잘 어울린다. 어떻게 그렇게 적절한 모습으로 때맞추어 피어날까?

비비추는 일부 섬 지역을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 전역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우리의 꽃이다. 여러 곳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다소 습기가 많은 곳에서 주로 자라며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봄이면 여러 장의 파릇한 새잎을 한자리에서 내 보내 포기를 만들고 제철을 만나 싱그럽게 자라는 길쭉한 잎새는 아랫 부분이 길게 늘어져 주걱처럼 보인다. 길이가 한뼘이 훨씬 넘는 이 잎새는 선명한 세로줄 무늬며, 반질한 잎새의 느낌 때문에 꽃꽂이 소재로도 많은 사랑을 받곤 한다.

한여름이 다 되면 이 잎새의 포기사이로 길게 꽃대가 자라 나오고 그 위로 새끼손가락 길이쯤 되는 길쭉한 깔대기 모양의 예쁜 꽃송이들이 차례차례 달린다. 이 연보라꽃의 곱디 고운 꽃송이들은 가장자리가 여섯 갈래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길게 뻗어 나온 수술과 암술의 조화로 더욱 아름답다.

우리나라에는 비비추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비슷비슷한 종류가 자란다. 일월비비추는 잎이 심장형으로 둥글고 예쁘면서 꽃송이들은 줄기 끝에 모여 특색 있고, 좀비비추는 전체적으로 식물체가 작고 잎의 아랫 부분이 뾰족하게 빠진다. 꽃이 활짝 펴지지 않는 것은 참비비추이며 주걱비비추는 줄기의 아랫 부분이 자루를 타고 흘러 말 그대로 주걱처럼 생겼다.

산옥잠화는 잎이 길쭉하게 빠지는 편이고 잎이 진한 녹색으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것이 특색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향기로운 흰꽃이 피는 옥잠화 역시 비비추와 같은 종류의 식물이다. 흰 꽃봉오리가 옥으로 만든 비녀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비추는 약용, 식용, 관상용으로 두루 이용되는 쓸모있는 우리 꽃이다. 사포닌 성분이 있으며 종자나 또는 식물체 전체를 한방이나 민간에서 이용하는데 생약명으로는 자옥잠(紫玉簪)이라 부른다. 잎은 즙을 짜서 젖앓이를 하거나 중이염을 앓을때 쓰고, 잎에서 추출한 기름은 만성피부궤양, 뿌리즙은 임파선 결핵 등에 바른다고 한다.

식용으로는 잎이 담백하고 약간 미끈거리는 듯하며 씹는 맛이 느껴져서 좋다는 사람도 있다. 어린 잎은 따서 우려 낸 후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고, 날것은 쌈으로 혹은 샐러드로 무쳐 먹기도 한다. 죽에 넣어 혹은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뜰앞에 줄지어 혹은 무리지어 심어 놓은 비비추의 모습은 참으로 고우니 정원 가장자리에 심어 놓으면 길과의 경계가 되고 흙이 드러나는 경사면에서는 좋은 지피용 소재가 된다. 혹은 한 두 포기 떼어다 분에 심어 놓아도 그 자태가 뒤지지 않는다. 잎이나 꽃만을 잘라 꽃꽂이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미래가 더 기다려지는 여름 식물 비비추. 이땅의 각기 조금씩 다른 빛깔과 모습으로 자라는 이땅의 아름다운 비비추들이 우리의 사랑을 기다린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05 20:39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