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계수나무


돌이킬 수 없이 가을이 이미 와 버렸음을 알았다. 무심히 걷던 수목원 산책에서 코 끝으로 그 향기가 밀려오는 순간, 가슴에서 올라오는 복받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계수나무였다.

계수나무는 수목원에 살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나무이다. 하트 모양의 귀여운 잎들은 노랗게 혹은 주홍빛으로 가장 먼저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낙엽이 진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이 계수나무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무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다.

상큼한 꽃향기가 아니라 더없이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난다. 그것도 온 대지에 진동을 할 만큼 풍부하다. 그래서 이 즈음부터 계수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한 두 그루 큰 나무만 있어도 충분하다) 길을 걷노라면 그 감미로운 향기와 운치에 누구나 마음을 내어주곤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향기와 대면을 하며 이미 가을이 문턱을 넘어버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향기란 꽃가루받이를 하기위해 곤충을 유인하는 수단일 경우가 많고, 좋지 않은 향기는 쫓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제 한 해의 성장을 멈추고 모진 추위를 앞에 둔 겨울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그런 향기를 세상에 내어 놓은 계수나무의 심사를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몇몇 나무들의 가지 끝에서는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다.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이다. 커도 아주 크게 자라서 30m까지도 큰다. 그런데 토끼와 함께 달나라에 살고 있다는 계수나무는 사실 우리나라가 고향인 나무는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 자연 분포하는 동아시아 특산 나무이다. 동화에도 나오고 노래에도 나오는 이 나무가 예전에는 이 땅에 살고 있지 않은 나무라니 이상하지만 그만큼 세 나라의 문화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계수나무는 이 땅에 들어와 잘 적응하여 자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들어와 있으니 식물학적으로는 아니지만 좀 더 넓은 의미의 우리나무 범주에 넣는다고 그리 탓할 일은 아닐 듯 싶다.

계수나무는 봄에 피는 꽃들도 독특하다. 잎도 나기 전에 붉은 꽃이 핀다. 붉다고 하지만 꽃잎이 화려한 그런 꽃이 아니라 꽃잎도 없이 수나무에는 수술들만 암나무에는 암술만이 있는 원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자잔한 꽃들이 나무 가득 달리니 봄이면 전체적으로 붉은 빛은 은은하게 돌아 그 또한 멋지다. 계수나무의 나무 모양 또한 아주 보기 좋다. 줄기가 올라가면서 가지가 갈라지는데 마치 부채살을 펼치듯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앞에서 말한 모든 장점을 생각해 보면 조경수로 아주 좋다. 하지만 아주 빨리 그리고 크게 자라는 나무여서 작은 집의 정원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목재는 건축용, 가구를 만들거나 조각을 하는데 사용한다. 주의할 것은 흔히 향신료나 약재, 차로 많이 이용하는 계피가 계수나무의 껍질로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이는 별도의 다른 나무이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 계수나무 한 그루 앞에 두고 그 가지 끝의 변화를 읽으며 보내려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06 11:19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