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가을철 보약


무더위가 한풀 꺽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가을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숙강의 계절. 즉, 천지자연이 엄숙해지고 맑아지면 장차 겨울을 대비해 기운이 가라앉고 갈무리하는 시간이다. 나무들은 낙엽을 떨으뜨리고 열매을 맺고, 동물들도 겨울 식량을 비축한다. 우리도 마찬가지. 여름내 무더위와 피로에 지친 몸을 추수려야할 이때, 보약을 먹어야 되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이맘 때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 겨울에 감기 많이 걸리는 어린이, 추위를 잘 견뎌내길 원하는 노인들이 병원을 많이 찾는다.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으레 사람들은 환절기에 앞서 보약을 찾는다. 봄과 가을은 급격한 기온의 변화로 말미암아 인체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내 대사의 손실이 큰 시기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기에 앞서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한다는 한방의 치료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을철에는 일찍 일어나 마음을 인정해야 하며 정신을 수렴하여 가을의 기운에 응해야 건강하 수 있는데 건조한 날씨로 인해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질환이 쉽게 생길수 있으므로 체액을 증강시키고 차갑고 건조한 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약을 글자적으로 풀이해 보면 '보(補)'는 '옷 의(衣)'에 '클 보(甫)'를 짝지은 글자로 '낡은 옷감을 다시 튼튼하게 깁는다'는 뜻이며 '약(藥)'은 '즐거운 낙(樂)'에 '풀초(草)'를 합한 것이니 '먹으면 좋은 풀'이라는 뜻이다. 즉 보약은 여러가지 원인으로 쇠약해진 인체에 활력을 주고 체력을 유지시켜 질병을 막는 약이라는 뜻이다.

좁은 의미의 보약은 단지 허약한 상태를 도와주는 약인데, 넓은 의미로 보면 허약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항진된 기능은 약화시켜 우리 몸의 기능을 조화시켜주느 약으로 볼 수 있다.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을 예로 들면 물독을 채우는 것만이 보(補)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물독으로 깨져있다면 아무리 물을 부어도 물은 차지 않으므로 그 깨진 틈을 막아주어야 한다.

또 물독의 물이 뜨거워져서 끓어 넘치는 경우라면 물을 끓이는 열일 없애주어야 한다. 이것들도 중요한 보법(補法)이다. 그러므로 보약은 인체의 정기를 길러주어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예방약일 뿐만 아니라 병을 고치는 약으로도 사용된다.

기혈의 균형이 맞추어지므로 기분이 좋아지고소화도 잘되며 밥맛이 좋고 잠을 깊이 자며 피로감이 덜해지고 대소변을 잘 보게 된다. 너무 마른 사람은 살이 찌게 되고 반대로 비만한 사람은 신진대사가 원할해져 적당히 빠지며 얼굴색이 좋아지게 된다.

따라서 보약을 먹는데 어떤 특별한 계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의 면역 기능을 높여주는 보약은 계절의 특서에 맞게 언제라도 쓸 수 있고 몸이 안 좋으면 지금 당장 보약이 필요하다. 즉 현재 어떤 부분이 약해져 있느냐는 계절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봄 가을의 보약은 일반적으로 병이 없는 사람드이 미리 예방 차원에서 먹으려면 환절기인 봄과 가을이 가장 무난하다고 해서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보약을 먹을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보약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보약만 믿고 생활습관을 엉망으로 한다면 차라리 보약을 먹지 않고 생활 습관을 바로 가지며 건강수칙을 지키며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낫다. 몸에 좋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신다는 말도 있지만, 몸에 좋다고 무조건 건강식품을 맹신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크다.

특히 어떤 병에 특효라는 말만 믿고 무조건 먹는 것은 환자에게 무척 위험한 일이다. 보약이 몸에 좋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허한 정도에 따라 각각의 처방이 다르다. 보약도 엄연히 치료약이므로 진맥과 진단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약을 처방 받아서 먹어야 한다.

이경섭 강남경희 한방병원장


입력시간 : 2003-10-06 11:38


이경섭 강남경희 한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