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욕망을 벗어던진 이 시대의 선인들



■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김나미 지음/황금가지 펴냄.

이 책은 숨어사는 도인들의 이야기다. 머리카락 보일까 꼭꼭 숨어사는 그 같은 도인들을 어떻게 찾아냈으며,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등등 쓸데없는 의문은 품지 말자. 그냥 책을 펼치면, 제목 그대로 ‘물같이 바람같이’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20명의 도인을 만났다. 그 가운데 다섯 도인의 삶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지은이가 보기에 이들 도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이 오로지 지금의 한 순간 한 순간에 정신을 집중하며 순간을 영원처럼 살고 있었다. 그들은 또 욕심이 없었다. 몸과 마음 속에서 이미 욕망이라는 두 글자가 사라진 절제된 상태에서 조용히 자기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무위(無爲) 도인은 60∼70년대 청계천에서 셔츠공장을 운영해 큰 돈을 벌었다. 무위 도인은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와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20여년 넘게 산속에서 살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비 새는 집에서 홀로 살면서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복지시설에 익명으로 매달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을 10여년 이상 냈다. “버리면 버린 세상이 온통 다 내 것이 됩니다. 가질수록 멀어지고, 버릴수록 다 내 것이 되는 이치입니다. 세상을 버리면 마음이 비워지고 대자유가 찾아옵니다.”

요가 도인은 도시에 사는 도인이다. 교수직도 마다하고, 요가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30여년 전부터 오로지 호흡과 명상수행을 중요시하는 전통요가 하나에만 매진해 온 한국 요가의 대가다. “우리는 하루에 1만6,000번에서 2만번 숨을 쉽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뿜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중요한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한때 해인사 스님이었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티베트를 다녀온 다정 도인은 강원도 홍천강가에 살고 있다. “미리 죽어 버리면 됩니다. 미리 죽어 버리면 한 템포 느리게 갑니다. 한 템포 느리게 욕망도 늦추고 조금 천천히 살면 평온이 옵니다. 미리 죽어 버리면 모두 덤으로 사는 게 아닙니까?”

산풍 도인은 깊고 깊은 전라남도 산속 쓰러져 가는 움막집에서 20여년이 넘도록 바깥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산다. 노인들에게 침을 놓아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과거에 집착하면 절대로 이 순간을 잘 살 수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미래도 곧 과거가 될 테니 지금 숨쉬는 이 순간만을 잘 살면 정말 잘 사는 겁니다.”

산속으로 들어오기 전 서울에서 사업을 했던 자연 도인은 십 여년 전부터 태백산 깊숙이 들어가 수많은 종류의 나무를 혼자서 심고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삶의 현장 속에서 용맹정진하면 그가 바로 도인이 아닐까요? 먼 데서 구하지 말고 가까이에서 구하세요. 깨달음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09 18:47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