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극 전개로 인기몰이, 역사 왜곡 등 문제점도 많아

무늬만 사극이 뜨고 있다
현대적 극 전개로 인기몰이, 역사 왜곡 등 문제점도 많아

안방에선 장금(이영애)이 눈길을 사로잡고 집밖에선 조원(배용준)이 시선을 당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휩쓸고 있는 사극 바람이다. 그것도 태풍급 이다.

방송 4주만에 MBC사극 ‘대장금’은 40%대 가까운 높은 시청률(36.8%)을 기록하며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에 올라서 독주 채비를 갖췄으며 개봉 전부터 예매율 신기록을 세운 영화 ‘스캔들’은 개봉 10일만에 230만명을 동원하는 예상외의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에는 10대 후반에서부터 좀처럼 극장을 찾지 않은 중년층 관객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 시청률 1위와 영화 관객 흥행 1위를 사극이 차지하는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극 드라마와 영화가 속속 시청자와 관객들을 만나거나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는 일회성 소비라는 특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방송이 끝난 사극인데도 여전히 동호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드라마 다시 읽기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 영화 '황산벌'

현재 방송되고 있는 사극은 네 편으로 MBC ‘대장금’, SBS ‘왕의 여자’ KBS ‘장희빈’(23일 방송 종영), ‘무인시대’ 등이 있고 사극 영화는 ‘스캔들’ 과 ‘황산벌’ 두 편이 상영 중에 있으며 11월, 12월 개봉을 예정으로 ‘천년호’ 와 ‘낭만자객’의 촬영이 한창 진행중이다.

현대적인 영상과 화려한 와이어 액션, 군더더기 없는 무협 멜로 사극 ‘다모’가 젊은 시청자의 열렬한 호응 속에 끝난 직후 곧바로 방송된 ‘대장금’은 조선시대 임금의 유일무이한 여성 주치의였던 장금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인간주의 얼굴을 한 성공이데올로기의 전개, 건강과 음식에 관련된 정보 제공, 아역과 이영애의 연기 등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많이 제공해 방송 초반부터 열기가 대단하다.

또한 근래 들어 사극을 통한 흥행 성공을 한번도 거두지 못한 영화에서 ‘스캔들’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은 매우 의외다.

물론 외국 소설 ‘위험한 관계’를 각색해 조선시대의 양반사회의 성 문제를 우리 식으로 드러낸 ‘스캔들’은 일단 대중의 섹스에 대한 관심 고조와 배용준이라는 스타의 상품성 등으로 중년층 관객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사를 모두 전라, 경상 사투리로 진행하며 박중훈의 코믹연기를 볼 수 있는 ‘황산벌’도 개봉은 얼마 안됐지만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 ‘용의 눈물’ ‘허준’ ‘태조 왕건’ ‘여인천하’ 등 엄청난 인기를 얻은 사극 등도 있었으나 전통적으로 사극 드라마는 나이든 기성 세대들이 주로 보는 장르라는 고정관념이 강해서 현대극에 비해 시청률 면에서는 저조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극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의 초창기와 전성기 때인 1910~1960년대 사극 제작이 활발해 ‘성춘향’ ‘연산군’ 등 대중적인 인기를 모은 작품이 많았으나 근래 들어서는 사극 제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극 영화 제작의 어려움, 그리고 엄청난 예산 소요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극 영화에 관객의 눈길을 끌지 못한데 있다. 근래 들어 제작된 ‘단적비연수’ ‘비천무’ ‘무사’ 에서 올 들어 개봉한 ‘청풍명월’에 이르기까지 모두 흥행 참패를 당했다.

심지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 역시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관객의 외면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같이 외면을 받아온 映蔓?최근 들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사극의 관객과 시청자층이 아니라고 인식돼 온 10~20대들을 사극의 주소비층으로 부상시키면서 시청률과 관객 동원에 성공한 이유는 사극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적 의미는 뒷전으로

가장 큰 원인은 사극의 형식만 취하고 섹스, 사랑, 성공 등 요즘 대중들의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를 현실성 있게 그려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킨 데 있다. ‘스캔들’ 역시 섹스 멜로물에 조선시대 한복을 입혔을 뿐이고 ‘대장금’은 성공하는 전문직 여성에 나인의 의상을 씌운 것이다.

무대와 세트, 의상은 사극이지만 등장하는 인물과 주제가 현대극의 성격과 방식을 견지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감성과 부합돼 인기를 끄는 것이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광풍에 가까운 ‘다모’ 역시 젊은이의 사랑을 가볍게 멜로 드라마식으로 전개해 인기를 끈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여성들의 권력 암투를 그린 전형적인 치마사극 ‘왕의 여자’가 김재형 PD의 연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10%대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고려시대의 무인정권을 그린 ‘무인시대’가 외면을 받는 것은 주제와 내용이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7월 상영된 ‘청풍명월’의 참패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형식에 있어서도 요즘 사극 드라마와 영화는 그 동안의 사극과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대사의 현대화이다. 요즘 대부분의 사극 드라마나 영화는 사극 특유의 고어투를 모두 버리고 현대어, 그것도 젊은이들이 구사하는 구어투의 대사를 사용하고 있어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심지어 사투리로만 대사를 처리하는 ‘황산벌’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또한 눈에 띄는 사극의 변화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제음악이 락, 발라드 심지어 클래식까지 등장하는 등 현대화했고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 빠른 템포 등을 구사해 젊은이들을 안방과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언뜻 트렌디 드라마를 보는 듯 하는 착각마저 낳고 있다.

요즘 사극을 트렌디 사극, 퓨전 사극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이 같은 형식상의 변화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이자 사극의 발전은 특수효과이다. 와이어 액션,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특수화면 등이 과거 사극에선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고 있는 사극 붐과 앞으로 제작될 사극 영화나 드라마는 적지 않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극은 현대극과 다른 본질이 존재하고 그 본질을 담아야 사극으로서 의미가 있는데 요즘 사극 드라마, 특히 사극 영화는 사극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볼거리에 치중, 가벼움 일관

사극은 어제와 오늘의 대화를 시도하는 장르이다. 어제의 인물과 시대 상황 등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봐야 할 개인, 사회 그리고 역사의 의미를 되새김질시키는 것이 사극의 존립의미이다.

하지만 단순한 섹스와 코미디의 장치로 사극의 문양만을 빌리는 경향이 요즘 사극 영화와 일부 드라마에서 짙게 드러난다. 사투리 코미디로 일관한 ‘황산벌’ 그리고 자객들이 처녀귀신들의 복수를 대행해준다는 내용으로 섹스 코미디 사극을 표방하며 촬영을 하고 있는 ‘낭만자객’, 그리고 무협과 멜로에 무게중심을 둔 드라마 ‘다모’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내용이나 주제들이 한결같이 섹스나 멜로로 집중되면서 사극의 진중함은 사라지고 가벼움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우리 대중문화 특성상 하나의 코드가 인기를 끌면 획일적이고 자극적으로 유행 코드를 쫓아가는 경향이 높아 당분간 앞으로의 사극은 가벼운 사극들이 집중 제작되는 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역사 교과서로서의 사극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도 비판받을 부분이다. 역사 교과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극 드라마나 영화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부분이나 무대, 의상 등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감각적인 볼거리를 위해 역사 왜곡마저 서슴지 않아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사극은 고증난, 예산난, 제작난이라는 3난(難)속에서 성장한 장르이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리를 지켜온 사극이 모처럼 붐을 일으킨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가볍고 감각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치달아 결국 소탐대실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진중함은 오래가지만 가벼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가벼움을 맛본 대중은 더 가벼운 것을 원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23 14:47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