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치질


날씨가 추워지면서 고생하는 질환 중에 남에게 차마 말 못하는 질환이 있다. 바로 치질이다. 심장을 빠져 나온 피가 다시 정맥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돌출된 치핵에 모여 망사처럼 부풀면서 약한 혈관벽을 밀어내거나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치질이다. 기온이 떨어져 모세혈관이 수축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이맘때는 증세가 악화되기 쉽다.

특히 찬 바닥에 앉거나 오래 서있거나 앉아 있으면 묵직한 통증과 함께 출혈이 생긴다.

치질 자체는 인간에겐 피할 수 없는 질병이다. 치질은 인류가 손을 사용하기 위해 두발로 일어섰기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혈액이 아래쪽으로 내려가 치정맥이 어혈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항문과 심장의 높이가 같은 네발짐승에서 치질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실 치질은 50세 이상 성인의 절반이 앓고 있을 만큼 국민적인 질환이다.

항문 주위에는 많은 혈관이 분포돼 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힘을 주면 혈액이 항문 쪽으로 몰리면서 혈관이 늘어나고, 일을 마친 뒤에는 혈관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늘어난 혈관이 제자리로 회복하지 못하고 그 위를 덮고 있는 항문 점막이 늘어나게 될 경우 치핵(痔核)이 항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치질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따로 있을까? 잘못된 배변 습관과 과로로 인한 항문 근육의 약화 등이 주원인이 된다. 또 과음을 하면 치핵 내 혈관이 확장되어 출혈이 생기게 된다.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치질에 걸리기 쉽다.

여성들은 잘못된 배변 습관, 임신 출산과 관련되어 치질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출산하는 여성의 3분의 1, 두 번 출산하는 여성의 3분의 2, 세 번 출산하는 여성의 전부에 치핵이 생긴다. 임신하면 변비가 생기는데다 태아에 의해 혈관이 눌리며 자궁 아래쪽의 혈액 순환이 잘 안되고, 출산하면서 힘을 주다보면 항문 주위 혈관이 부어 치핵이 잘 생기기 때문이다.

치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문을 항상 청결히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좌욕을 생활화하는 게 좋다. 아침 저녁 또는 배변 후 40도쯤 되는 물에 10~20분 좌욕하면 된다. 항문 주위의 원활한 혈액 순환을 도와 예방뿐만 아니라 증세도 나아진다.

변비는 치질을 악화하는 주범이므로 변비를 유발할 수 있는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섬유소가 많은 음식과 수분을 섭취해 쾌변을 보도록 해야 한다. 책이나 신문을 보며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항문 주위에 피가 오랫동안 몰려 증세를 악화시키므로 좋지 않다. 과로와 과음도 치질을 악화하며,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거나 서있지 않는다.

시금치에는 식물성 섬유가 풍부하고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 주는 작용이 있어 변비 치료에 효과적이다. 시금치에는 장 속의 열을 내려 주는 약효가 있으며 변비에 잘 듣는 검은깨와 함께 먹으면 효과가 더욱 뛰어나다.

한방에서는 치질의 원인은 피곤한 상태에서 포식을 하거나 평소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 생활을 함부로 하면 그 폐해가 오장(五臟)에 들어가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지나친 음주, 과식, 과도한 성생활,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의 지나침 등이 모두 원인이 된다. 따라서 치질 환자들이 금해야 할 것은 욕심을 절제하고 차가운 음식, 술, 밀가루 음식, 맵고 열이 많은 음식은 삼가야 한다. 이런 것을 지키지 않으면 치료해도 효과가 없고 다시 재발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대장암ㆍ직장암 발병과 치질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다만 직장암을 치질로 착각해 초기증세가 있는데도 병원을 찾지 않다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장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쾌변이 중요하다. 장 속에 변의 노출시간이 길수록 인체에 해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남경희 한방병원장


입력시간 : 2003-10-28 15:13


강남경희 한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