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참나무


참나무가 가득한 산길에 가을빛으로 얼룩지는 단풍이 참으로 그윽하다. 간혹 아직 남아 돌아다니는 동글동글 도토리나 떨어져 나간 도토리 모자도 귀엽기만 하다.

참나무는 말 그대로 진짜 나무인데 과연 어느 나무가 진짜 나무일까? 그러나 막상 식물도감을 찾아보면 참나무란 이름은 찾을 길이 없고, 참나무가 맺는 열매 도토리를 두고 부르는 도토리나무란 이름 역시 없다. 대신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있고 조금 동떨어진 이름의 상수리나무가 있어 우리는 흔히 이들을 한데 묶어 참나무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수리나무가 이러한 동족과는 조금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한 선조는 제대로 먹을 만한 음식이 없자 토리나무의 열매 토리, 지금으로 말하면 도토리를 가지고 묵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때 도토리묵에 맛을 단단히 들인 선조는 그 후로 도토리묵을 즐겨 찾았다.

그래서 상시 수라상에 올랐다 하여 상수라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말이 상수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 신갈나무는 짚신 바닥에 깔아서, 졸참나무는 참나무 중 잎이며 열매가 가장 작아서, 떡갈나무는 떡을 싸먹던 잎이어서 붙은 이름이란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모든 나무들은 도토리를 열매로 맺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잎의 모양새와 쓰임새와 자라는 곳이 조금씩 다르다. 이 여섯 가지 기본적인 참나무는 잎의 차이를 가지고 구분할 수 있으나 산에는 워낙 잡종도 많아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이외에도 남쪽지방에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성 도토리나무들이 있는데 이들은 가시나무라고 부른다.

이러한 모든 도토리나무들은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한다. 참나무속은 학명으로 쿠에크쿠스(Quercus)인데 이 라틴어 역시 진짜, 즉 참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나무들을 나무들의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사실 가장 손쉽게 생각되는 참나무의 용도는 역시 도토리로 만든 도토리 묵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종류가 어떤 나무이건 열매는 모두 도토리라고 부르며 다 묵을 만들 수 있다. 떡갈나무는 잎으론 떡을 싸고 수피로는 굴피집 지붕을 덮고 염료로 쓰이기도 하고, 속껍질에서 코르크를 만들고, 옛날 연료인 숯은 주로 참나무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소나무를 중시하는 문화여서 참나무들을 활잡목이란 이름으로 조금은 대우를 하지 않았지만 사실 잘 자란 참나무는 귀한 목재이기도 하다. 자연미가 넘치는 가구가 바로 참나무 목재로 만든 가구요, 목재에는 술의 향기와 맛에 영향을 미치는 모락톤이라는 성분의 함량이 높아 술통으로 참나무가 장 좋다고 한다.

요즈음은 생태공원이 많다 보니 자연 참나무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두빛 고운 신록과 무성하여 그늘이 시원한 잎새, 갈색으로 물드는 분위기 있는 단풍과 그 낙엽, 그리고 이 나무들이 만드는 도토리로 다람쥐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 숲의 주인 자리는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산엔 참나무들이 지천이다. 참나무들은 가는 계절에 미련이 많은지 오랫동안 잎을 달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절은 간다. 지금쯤 산길로 나가 떨어진 참나무 잎을 들고 어떤 참나무인지 구별하여 이름 한번 불러주고 보내면 어떨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1-04 15:30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