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맑은 영혼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고



■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이오덕 권정생 지음 한길사 펴냄

이 책은 편지 모음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선남선녀의 연애 편지도 아니고, 세기적인 지성이 주고 받은 묵직한 논문 같은 편지도 아니다. 그저 한 평생 맑게만 살다 간, 그리고 아직 맑게 살고 있는 두 아동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이 서로의 애틋함을 전하고 보듬어 안은 편지글이다.

두 사람이 나눈 편지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소박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그러나 그 감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떤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70년대와 80년대의 고단한 상황을 이겨내면서 진정한 문학과 교육의 길을 헤쳐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가슴이 저려온다.

두 사람은 1972년 가을 처음 만났다. 이오덕이 권정생을 물어 물어 찾아간 것이다. 이오덕이 어느 기독교 잡지에 실린, ‘강아지똥’이라는 권정생의 동화를 읽은 직후였다. 권정생이야말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보배라 여겨졌던 까닭이다.

당시 47세였던 이오덕은 경북 문경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미 그는 아동문학가로서 중견의 자리에 올라있었다. 이오덕 보다 12살이나 젊은 권정생은 경북 안동에서 시골교회의 종지기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가난과 전신 결핵의 고통을 참아가며 글을 쓰는 무명작가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오덕은 지극 정성으로 권정생을 보살폈다. 권정생은 아름다운 동화로 그 정성에 보답했다.

“선생님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지도 않고 지내온 것이 죄스럽습니다. 우편환으로 칠천원 부쳐드립니다. 우선 급한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 확보하십시오. 요즘 출판 사정이 악화된 것 같은데 그래도 어찌해서라도 책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이오덕)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권정생)

올 여름이 다할 무렵 이오덕은 세상을 떠났다. 이오덕은 유서에서 자신의 무덤 가까운 곳에 권정생의 시비를 세워달라고 했다. ‘밭 한 뙈기’라는 시다.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은/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의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것 ‘내’것이 아니다/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1-19 15:41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