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해국


해국이 피기 시작하면, 아니 정확히 말해 해국의 무리가 눈길을 모으기 시작하면 겨울인가 생각하여도 좋다. 불과 얼마 전까지 흐드러지던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며 하는 무리들조차 그 빛깔을 잃고 사라져 가는 가을의 끝에서 해국은 그 절정을 이룬다.

피기 시작하는 시점이야 훨씬 이전이었을 것이지만 이 산야에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그 숱한 경쟁 식물들이 제 색깔을 잃고서야 비로소 돋보이기 시작한다.

해국은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쪽의 바닷가 절벽에서 볼 수 있다. 이웃하는 일본이나 중국에도 분포한다. 키는 어떤 곳에서 살고 있냐에 따라 차이가 조금 나지만 무릎 높이 정도로 큰다.

둔한 톱니가 있고 주걱처럼 생긴 잎에는 바람의 저항을 견뎌내야 하는 바닷가의 식물들이 그러하듯 털이 보송하다. 어긋나게 달리지만 주로 줄기의 아랫 부분에 몰려 모여 달리듯이 보인다. 길이도 잎에 따라 차이가 많은데 3~20㎝ 정도가 된다. 연한 보라색으로 지름은 3.5~4㎝되는 결코 작지 않은 꽃송이들이 여름에서 겨울이 오도록 피고 지고를 계속하여 오래 오래 볼 수 있다.

꽃의 생김새로만 비교해 보면, 또 분류학적인 기준으로 볼 때도 이 해국은 쑥부쟁이와 아주 비슷하지만(물론 쑥부쟁이와 같은 속에 속하는 식물이다) 살아가는 본질적인 태도는 이 유사한 분류군의 식물들과는 다른 독특한 점들이 많다.

우선 나무라고도 풀이라고도 할 수 없어 반 목본성 식물이라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여러해살이 풀이었지만, 풀처럼 싹이 올라 커나가던 식물의 줄기며 잎이 겨울에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몇 해씩 견디다 보니 나무처럼 굵고 목질화되어 버려 나무이기도 풀이기도 한 상태로 커나가는 경우가 많다.

개화기도 큰 특징의 하나이다. 꽃이 피는 시기로 치면 여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리 저리 지고 피고 이어져 겨울의 길목까지, 더러는 12월까지 그 꽃구경이 가능하다.

다른 계절이야 제 철에 알맞게 워낙 흐드러진 다른 꽃들이 많아 그 틈에 묻혀 눈여겨보는 이가 별로 없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이 잎을 떨구고 말라버리는 그러한 계절에 여전히 싱그럽게 꽃을 피워내고 있으니 얼마나 장한가. 그래서 이 무렵 남쪽의 바닷가 여행을 다녀 온 이들은 누구나 해국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 강인한 생육 특성도 유래가 없다. 이름에서 잘 나타나 있지만 해국은 이름 그대로 바다의 국화이다. 어떤 식물이 살 수 있을까 싶은, 바닷가의 매서운 바람을 맞대 서 있는 척박한 돌 틈에 뿌리를 박고 잘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 돌틈새가 조금만 평평하고 넉넉해지면 이내 한 무리를 이루어 멀리서 보면 검은 바위 틈새의 보라빛 꽃 무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아직 약용이나 식용으로 특별한 쓰임새가 기록된 것은 없지만 남쪽이라면, 특히 바닷가라면 정원에 심기 매우 좋은 소재이다. 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꽃이 없는 늦가을에 절정을 이루는 꽃이 어디 흔하랴.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풍성하니 더욱 좋다. 어떤 이는 겨울에 죽지 않고 목질화되는 특성을 잘 활용하여 분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2-03 16:19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