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고 닳도록 웃어보자"포복졸도할 북한군 표류기, 조연들의 걸쭉한 연기로 재미 더해

[시네마 타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웃어보자"
포복졸도할 북한군 표류기, 조연들의 걸쭉한 연기로 재미 더해


언젠가 영화 장르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다 학생들에게 ‘홍콩 느와르’와 ‘일본 사무라이’ 혹은 ‘중국 무협’처럼 한국의 독특한 장르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것이 가능하겠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학생들의 답변은 다양했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보면서 그 중 한 학생의 의견이 떠올랐다. “분단 현실에 기인한 영화들로 <쉬리>, <공동경비구역JSA>등”이라는 말이었는데, <쉬리> 이후로 꾸준히 남북 상황을 근거로 한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아마 통일이 되기 전까지 유효한 장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흥행대작으로 꼽히는 위의 두 작품을 제외하고도 <간첩 리철진>, <휘파람 공주>, <남남북녀> 등이 이런 유형의 영화들의 흐름을 이어왔다.

남북의 남성 2인조: 형사팀과 군인팀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그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 북한 군인들 중 가장 웃기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최백두(정준호)와 림동해(공형진)라는 장교와 병장은 2인조 남성 코미디의 계보를 잇는다.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고 있는 과묵한 백두와 놀라운 순발력과 잔머리 굴리기의 일인자인 동해가 티격태격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남한의 남성 형사팀과 비교되고 엇갈리면서 폭소를 터트리게 만든다.

백두와 동해가 술에 취해 보트에서 잠든 사이 폭풍이 불고 이들은 남한의 해변가에서 눈을 뜬다. 한 여름 동해의 해수욕장 풍경은 백두와 동해에게 계속해서 상반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남한 방송을 즐겨 들으며 왁스의 <오빠>를 즐겨 부르고 속옷만 입고 있는 남한 여성의 사진을 모자 안에 숨겨 갖고 다니며 자랑하던 동해에게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로 뒤덮인 해변의 풍경은 경외스럽지만, 철저하게 인민해방정신으로 똘똘 뭉친 백두에게 이 외설스러운 남한의 풍경은 더욱 그의 귀소본능을 강화시킨다. 이 상반된 개성의 커플이 주는 웃음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전국노래자랑’에서 극에 달한다.

한편 가출소녀를 찾으러 해수욕장으로 파견 나온 안 형사(박철)와 박 형사(박상욱)는 백두와 동해에게 수영복을 빼앗겨 알몸으로 해변을 탈출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이들이 옷을 훔쳐가는 바람에 동네 부녀회 운동복을 입고 다니며 온갖 수모(?)를 겪게 된다. 특히 이 영화 때문에 다시 몸무게를 늘린 박철은 과거에 보여줬던 특유의 코믹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들이 찾으러 다니는 가출소녀는 경찰서장인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며, 아버지 신용카드를 무기로 또래 친구들을 ‘시녀’로 부려먹고, 일상 대화에 욕이 빠지지 않는 고등학교 3학년의 한나라(류현경) 다. 자신은 놀러온 거지 가출한 게 아니라는 나라는 ‘불량소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외로움을 제시한다.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전화조차 주지않는다며 백두와 동해에게 술주정을 하고, 그런 나라에게 백두는 갈대밭의 반딧불을 친구로 소개시켜 준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이야기의 전개에서 지속적으로 웃음을 주고 있는 부분은 바로 조연 같지 않은 조연들의 등장, 숨어있는 카메오 출연진(이재룡, 김원희, 오지혜, 녹색지대 등)과 수다스러운 대사의 재치에 있다. 예를 들어, 안 형사와 박 형사는 차를 잘못 후진해 오징어 건조대를 무너뜨리게 되고, 달려 나온 어부들 중에는 형사보다 더 험악한 거구의 남성 두 명이 있다. 형사들은 이들에게 자신들이 형사라고 사정을 하지만 한 어부는 “니들이 형사?나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 중사”라고 받아 친다.

조폭식 웃음의 가벼운 코미디

최근 영화들에서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이는 조폭들은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도 양념처럼 등장한다. 나라와 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백두와 동해는 우연히 몇 명의 깡패들을 혼내주게 되는데, 이들은 어느날 두목과 수십 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백두와 동해를 공격한다. 일당백의 싸움은 슬로우 모션으로 백두를 영웅화시키고 백두, 동해, 나라의 결속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조폭들이 단순히 조연으로 등장한다고 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북한 장교와 병장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 백두와 동해의 관계는 오히려 조폭의 두목과 부하의 관계라는 점이다. 가장 먼저 이들이 조폭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되는 점은 이들의 ‘무식함’이다. 동해는 곧 제대할 말단 병장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장교라는 백두가 남한에 대해 너무 모를 뿐 아니라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는 모든 과정들에서 보여주는 아이디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원시적이다.

그리고 백두가 동해에게 행사하는 폭력적인 행동들은 조폭의 위계질서가 폭력에 근거하고 폭력에 의해 행사되고 있는 것과 똑같고, 이들이 제공하는 웃음의 원천도 모두 상하 관계의 유지 혹은 전복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장교와 병장이라는 계급을 넘어 동지애 혹은 우정이 형성되는 과정의 우여곡절도 조폭영화로 익숙해진 부분들이다.

무엇보다도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가벼운 코미디로 즐겁게 보고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장점은 어느 누구도 희생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분단 이데올로기’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분단 현실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무게는 모두 던져버린 채 가벼운 해프닝만 벌어질 뿐, 백두와 동해는 안전하게 바다를 넘어 어느 이국적인 섬에 안착하는 것이다.

시네마 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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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1-02 18:09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