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소나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새해인 만큼 푸르른 나무 이야기로 한 해를 열고 싶다. 이 모진 겨울에도 푸른 나무들이야 적지 않지만 어렵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리잡고 자라 올라 푸른 잎들을 사시사철 달고 사는 소나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이 심겨진 나무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물론 소나무이다. 고향 집 뒷산에 언제나 그렇게 서있던 소나무, 나무를 이야기하자면, 절개와 기상을 이야기 하자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나무.

그 소나무는 언제부터 이땅에 자라고 있었을까. 신화적으로 보면 무당들의 성주풀이가 소나무의 탄생신화다. 성주신과 솔씨(소나무 씨앗)의 근본이 안동땅 제비원인데, 천상 천궁에 있던 성주가 죄를 짓고 땅에 내려와 제비원에 거처를 정했다. 이들이 집짓기를 원하여 제비에게 솔씨를 주어 전국의 산천에 소나무를 퍼트리고 재목감이 되도록 키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좀더 과학적으로 소나무의 자취를 더듬어 올라가면 소나무 종류는 신생대에서부터 지구상에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소나무의 종류만도 세계적으로 100 여종이 넘으며, 한반도에 우리의 소나무가 살기 시작한 것만해도 약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고, 3,00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많이 자라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 소나무와 함께 살면서 만들어낸 그 많은 이야기와 시와 노래와 그림 등 소나무의 자취들은 짐작할 만 할 것이다.

소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큰키나무이다. 학명이 파이너스 덴시플로라(Pinus densiflora)인데 속명 파이너스는 산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의 켈트어 핀(Pin)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솔이라 부른다. 이 솔의 말뜻은 위(上)에 있는 높고(高) 으뜸(元)이란 의미를 지니는 말로써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의 수리라는 말이 술로 , 이것이 다시 솔로 변하여 되었다는 학자들의 풀이가 나와 있다. 한자 이름으로 줄기가 붉어서 적송(赤松), 여인의 자태처럽 부드러운 느낌을 주어 여송(女松), 육지에서 자라 육송(陸松) 등으로 부른다. 소나무 송(松)이란 한자는 옛날 진시황제가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소나무 덕으로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자 고맙다는 뜻으로 공작의 벼슬을 주어 목공(木公), 즉 나무 공작이 되었고 이 두 글자가 합하여 송(松)자가 되었다고 한다.

소나무는 세계적으로 중국에도 없고 오직 우리나라와 이웃 일본에만 자란다. 우리 중심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는 남쪽으로 제주도, 동쪽으로 울릉도, 북쪽으로 백두산까지 우리 국토의 모든 지역에 자라지만 일본에서는 제일 북쪽섬 큐슈에서는 자생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적 의미의 식물학에 눈을 뜨기도 전에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세계에 먼저 소개하여 재페니스 레드 파인 즉 일본 붉은 소나무라는 영어 이름이 통용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흔히 일본소나무는 곧고 우리소나무는 굽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를 두고 일본인들은 좋은 나무는 남겨두고 나쁜 나무를 먼저 베어 쓰고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곧고 좋은 나무들은 모두 베어 써서 이제 아무 쓸모 없는 굽은 나무만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이 말은 사실이다. 본래부터 우리나라 소나무의 형질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고 곧은 나무만 골라 썼고, 다른 나무들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산성토양에서도 강하게 살아 남다 보니 그리 되었다.

그러나 우리 소나무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나무들도 있다. 강원도와 경북지방을 중심으로 우리가 특별히 금강송 또는 강송이고 부르는 올 곧고 붉은 소나무가 바로 그 나무들이다..

구태여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던 배고픈 시절로 돌아가지 않아도 꽃가루로는 송화 다식을 만들고, 솔잎은 몸을 맑게 해주는 신선들의 음식이 되고, 목재는 가장 빼어난 재목으로 궁궐에 세워지고, 비싼 송이버섯은 소나무가 있어야만 나오고, 사람이 태어나면 솔가지를 달고 소나무로 집을 지고, 그 나무로 짠 관에 담겨 소나무가 사는 산에 묻히니, 우린 소나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는다는 말이 맞다.

소나무 이야기로 치면 글이 모자라지만, 새해를 열며, 용의 기품으로 하늘을 솟구치는 기상을 가진, 속기(俗氣) 없는 소나무의 냉ㅏ?운치를 흠모해볼 만 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4-01-09 16:30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