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맛에 예스런 즐거움까지

[맛이 있는 집] 인사동 '궁' 조랭이 떡국
어머니 손맛에 예스런 즐거움까지

올해는 설날이 유난히 빠르다. 신정 다음에 곧바로 설날이다. 이 즈음에 소개할 음식으로 떡국 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옛날에야 떡국은 설날에만 먹는 것이고 밖에 나가 사먹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요즘 세상이야 어디 그런가. 돈만 있으면 못 먹을 음식이 없다. 집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가정식 백반집이 유행하고, 어머니 손맛을 재현해 준다는 따뜻한 도시락까지 점심시간에 딱 맞춰 배달해 주는 것이 요즘 세상 아닌가. 물론 아무리 재현했다고 해도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살려내지는 못하겠지만….

집집마다 떡국 맛이 다르고, 가래떡의 상태에 따라, 혹은 그 날의 재료에 따라 같은 집에서도 다른 맛이 나올 수 있는 게 떡국이다. 기분 내키면 가게에 파는 떡국 재료를 사다가 언제든지 해먹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설날 먹는 맛과는 딴판이다.

필자는 설날 차례를 큰댁에서 지냈는데, 차례가 끝난 뒤면 항상 많은 양을 한꺼번에 삶아 떡이 퍼지기 일쑤고, 또 차례를 지내는 동안 식어버린 떡국을 먹곤 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의 떡국을 먹기도 하지만 왠지 필자에게 있어 떡국이라고 하면 큰댁의 떡국 맛이 떠오르곤 한다. 그다지 맛은 없지만 오랫동안 먹어서인지 그것에 익숙해져버렸다.

‘떡국 맛이 거기서 거기지 뭐’하는 생각을 없애게 해준 것이 ‘궁’에서 맛본 조랭이 떡국이다. 메뉴에 떡국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시켜본 것인데 생각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조랭이 떡국은 개성 지방에서 끓이는 떡국이다. 가래떡을 가늘게 늘여서 써는데, 가운데를 대나무 칼로 살짝 굴려 마치 동그란 구슬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떡이 새하얀 것이 눈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김새나 크기도 앙증맞아 마치 아이들 소꿉장난 같다.

장난처럼 보이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떡이 퍼지지도 않고 훨씬 쫀득하다. 이것은 아마 떡을 한번 삶아 찬물에 헹구어 두었다가 다시 끓는 국물에 넣어 떡이 떠오르면 바로 그릇에 퍼 담기 때문일 것이다.

입 속에서 기분 좋게 씹히는 떡 맛도 좋지만 핵심은 국물 맛이다. 떡국은 물론, 만두국, 만두전골의 기본이 되는 국물은 사골과 양지머리를 넣어 끓인다. 이렇게 마련한 국물에 떡을 넣어 한소끔 더 끓이면 국물 맛이 한결 좋아진다. 같이 나오는 시원한 동치미와 손맛이 느껴지는 김치까지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거뜬하다. 만두는 피가 얇고 속이 꽉 차있다. 보통 당면이나 숙주 등을 많이 쓰는데 반해 이 집에서는 고기를 많이 넣고 김치, 두부, 부추 등도 넉넉하게 넣는다.

궁은 개성이 고향인 임명숙 할머니(87)가 차린 식당이다. 개성 만두 전문점인데 만두 못지 않게 인기 있는 메뉴가 조랭이 떡국이다. 손으로 일일이 빚어 만드는 개성식 만두와 떡국을 한꺼번에 맛보려면 조랭이 떡만두국을 주문하면 된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만두를 빗는 할머니의 손놀림은 젊은 사람 못지 않다. 속도나 모양새에 있어서 오히려 한수 위다. 계산대 안쪽, 창가에 마련된 자리는 할머니가 만두 빗을 때 앉는 지정석. 유리창 밖에서 할머니의 만두 빗는 단아한 자세에 반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들도 적잖다. 할머니가 여전히 정정하시지만 식당의 크고 작은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그 동안 맏며느리를 거쳐 큰손녀한테로 이어져 어느새 3대가 이어온 집이 되었다.

△ 메뉴 : 조랭이떡국 6,000원, 조랭이떡만두국 6,000원, 개성만두국 5,000원, 만두전골 20,000~38,000원. 02-733-9240

△ 찾아가기 : 인사동 길의 중간쯤에 있는 수도약국 옆 골목으로 꺾어진다. 경인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왼쪽 골목 첫 번째 집이 ‘궁’이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1-09 17:52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