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엽서/신영복 지음/돌베개 펴냄

[출판] 행간 가득 녹아든 현대사의 아픔들
신영복의 엽서/신영복 지음/돌베개 펴냄

1988년 출간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이미 고전이 됐다. 감옥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자연과 인간과 사회와 역사를 반추해 가는 신영복 선생의 사색의 여정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이제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그 책은 삶이 고달파 위안을 받고 싶을 때면 마치 자석처럼 우리의 손을 잡아 끈다.

신영복의 엽서는 바로 이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육필 원본을 영인한 것이다. 이 영인본은 또 다른 감동과 충격을 준다. 작은 엽서에 한자 한자 철필로 새기듯 또박또박 눌러 쓴 고뇌어린 글씨는 마치 선생이 인고해 온 힘든 하루하루인 듯 하다. “바쁘고 경황없이 살아 온 우리들의 정수리를 찌르는 뼈아픈 일침이면서,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자기 성찰의 맑은 거울”이다.

영인본에는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시절부터 1988년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옥중생활 전 기간에 씌어진 기록과 엽서들이 골고루 담겨있다. 죽음이라는 극한상황에서의 심경의 기록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쓴 엽서, 소박하고 인간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그림 등에는 신영복 선생의 체취와 당시의 고뇌어린 모습이 절절하게 우러난다.

특히 1969년 1월부터 1970년 9월까지의 기록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것으로, 어두운 현대사의 아픔이 박혀있는 듯 하다. 이 시기에는 글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화장실용으로 지급된 누런 갱지에 글을 썼다고 한다. 또 1969년 당시에 씌어진 선생의 시 두 편도 실려있다. 이 시들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무기수가 돼버린 아픔과 고독이 절절하게 배어있다.

1970년부터 1988년까지 쓴 봉함엽서에는 감옥이라는 공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 기약할 수 없는 무기수의 위치에서도 성실함과 건강함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선생의 고뇌와 사색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깨알 같은 글자들 사이로 선명히 박혀 있는 검열필 도장은 당시의 냉혹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고화질 촬영과 정밀 인쇄 덕에 230여 편의 엽서와 조각글, 그림 등이 종이의 재질이나 상태는 물론 미세한 흔적까지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독자들의 원본 체감도를 높이려는 배려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4-01-12 15:39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