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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프레소] <재즈북> 펴낸 한종현
"재즈에 두른 '금테'는 벗겨져야"

'재즈북’이란 이 책. 충분히 튈 법도 한 테마를 담았는데, 외양으로 봐서는 퉁명스럽기까지 하다. 이래 갖고서 요즘 독자들의 눈길이나마 제대로 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시커먼 커버가 자못 위압적이다. 명조체로 제목 하나 덜렁 박아 놓은 게 표지 디자인의 전부다. 속을 펼쳐 보니, 한술 더 뜬다. 무려 760쪽에 달하는 분량에 글자가 빽빽하다. 언필칭 영상의 시대를 의도적으로 비껴가기로 작정한 듯.

재즈라면 이땅에서 1990년대에 급격 부상한 유행 아이템 아닌가. 멋지게 색소폰 부는 장면과 섹시한 여인이 재즈라는 이름 아래 함께 팔려 나갔고, 정기ㆍ부정기 간행 인쇄 매체들은 화려한 재즈 관련 기사로 새바람을 추인했다. 재즈라는 데에 들이닥친 영일(寧日)은 그렇게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처연하도다, 유행 문화 아이템으로서 재즈의 일몰이었던가. 제2의 IMF를 맞아 한결 추워진 한겨울 거리에 노숙자는 늘어 나는 형국인데, 먹고 사는 일과 도통 무관한 재즈 같은 데에다 어느 누가 눈길을 줄 것인가. 지금 한국땅에서 재즈란 풍물은 화려한 클럽에서 옹송거리며, ‘그들’만의 소일거리로 전락한 형국이다. 재즈의 자의식(대중 문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여타 대중 문화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또는 허위 의식(그래도 명색이 재즈인데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이라 해도 좋다.

바로 이 때, ‘재즈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이 번역돼 나왔다. 재즈 열풍에 발맞춰 재즈를 주제로 한 갖가지 서적이 잇달았으나, 크게 보아 주관적 에세이류를 벗어나지 못 했던 게 사실이다.독일의 세계적 재즈 비평가 요아힘 베렌트가 쓴 책은 혼돈스런 풍경속에서 오히려 더욱 빛난다(이룸刊). 1953년 초판이 선 보인 이래 꾸준히 증보돼 온, 언필칭 고전이다. 역자 한종현(41)은 그 중심에 있다.

“2,000명도 넘는 뮤지션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우선 들이 닥쳤죠. 국내에서 생소한 유럽 등 비영어권의 재즈가 특히 그랬어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려 온다. 골치 아픈 고유 명사가 나오면 만만한 영어식으로, 또는 일본어 번역서를 참고하는 게 고작이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활동한 아프리카의 타악 주자 ‘Mtume’가 좋은 예다. 아마도 머튜메, 므튬, 므튜머…, 정도로 읽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인터넷 등을 뒤져 그가 안착한 표기는 ‘음투메’이다. 아프리카 토속어의 질감이 생생히 살아 있다. 그것은 작은 사례이다. 무려 42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이뤄진 권말의 ‘찾아보기’에 수록된 표제어는 웬만한 학문 서적도 따를 수 없는 분량이다. 인터넷에서 자료들을 긁어 와 놓고는 그것들이 마치 내 자료입네 하고 내 놓는 작금의 폐습이 그의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같은 치밀함은 곧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박람강기(博覽强記)으로 이어진다.

20년 넘게 별러 왔던 일이다. “ 1980년대 카투사에 근무중이던 친구를 통해 영내 도서관에서 빌려 입수한 책이죠. 그 내용에 반해 복사ㆍ제본해 뒀어요.” 본격 번역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책의 서문에 기록된 바, 인도네시아에도 번역돼 호평을 얻고 있다는 말이 내내 걸렸기 때문. 문화를 향유하는 데 잘 살고 못 사는 게 기준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초라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사실 부담은 컸지만 남이 안 하는 걸 하고픈 마음이 더 컸죠.”

인터넷상의 ‘오디오 갤럭시’, ‘kazaa.com’ 등 국외의 음악 사이트를 헤집고 다니며MP3 파일 등의 도움으로 실체에 다가서려 노력했다. 미국의 재즈 정보 아니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외화내빈한 국내 재즈 현실탓이다. 알고 지내던 인디 밴드 ‘인디언 서머’의 기타리스트 이종석(37)이 제공하는 실제적 음악 지식 덕에 책은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탄탄한 짜임새가 유독 돋보인다. ‘말발’이나 ‘글발’로 밀어 부치는 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고려대 철학과 83학번인 그가 재즈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시절 빽판(해적판)을 통해 키스 재릿의 ‘My Song’ 등 재즈를 듣게 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재즈에 미쳐, 먼 발치에서나마 박성연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본 기억을 소중히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고급 상품화된 현재의 한국 재즈 상황이 대단히 거북스럽다. “재즈가 강남이나 상류 사회의 이미지로 포장돼 있어요. 나 같은 사람들은 비싼 재즈 클럽에 가서 재즈를 즐길 엄두조차 못 낼 정도죠. 인디 록 밴드는 무보수로 클럽 연주를 들려 주는데, 한국의 재즈에는 정신이 점점 퇴색돼 가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이 대학 교재로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저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키취(kitschㆍ복제 오락물)에로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의 재즈를 모른 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의 의미에 값하는 출사표라는 생각이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1-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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