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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자토이치
마음으로 적을 읽고, 벤다
맹인검객의 전광석화 검술, 기타노 다케시의 첫 시대극


현재 살아있는 감독들 중 베스트 10을 뽑는다면 꼭 들어갈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는 1989년 <그 남자 흉폭하다> 로 데뷰했다. 첫 작품부터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등단, <소나티네> (1993)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하나-비> (1997)를 통해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작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자토이치>는 기타노의 11번째 작품이다.






에도시대의 금발머리의 자토이치와 나막신 탭댄스

<자토이치(座頭市)>는 후두암으로 1997년 사망한 카츠 신타로(勝新太郞) 주연으로 1962년부터 26편의 영화와 약 100편의 TV 에피소드로 만들어진 메가 시리즈. 일본에서는 <007 제임스 본드>시리즈만큼 유명하다. 기타노는 19세기 봉건주의 시대가 배경이고, 자토이치는 검술의 달인이며, 맹인 안마사이고 도박의 천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현대적으로 원작을 재해석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기타노의 자토이치는 고전 스타일의 검정머리가 아니라 짧게 커트한 금발머리에 선명한 붉은 빛의 지팡이(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모노 대신 무릎 선의 검정색 기모노와 검정 바지, 그리고 검정 끈이 달린 나막신을 신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게다가 나막신에 색색의 끈을 달아 발목에 묶고 기모노를 입은 채 신나는 리듬에 맞춰 자토이치를 제외한 전 등장인물이 탭댄스를 추면서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영화는 자토이치의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잠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번개처럼 가로 지르는 검술은 비록 CG에 힘입어 사실적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칼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한 기존 사무라이 영화와 비교해 볼 때 강렬하고 순간적이며, 조용하고, 흠 하나 없이 말끔하다. 검술의 안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주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시작하는 이 도입부는 앞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기본 형식과 스타일을 요약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무라이 액션과 코미디의 적절한 조합과 감정조절

악행을 일삼는 야쿠자 긴조파 탓에 민심이 흉흉해진 마을에 자토이치가 당도한다. 오우메라는 아줌마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기거하며 마사지와 장작패는 일로 숙식비를 대신하던 그는 마을의 도박장에서 오우메의 조카 신키치를 만난다. 자토이치의 도움으로 큰 돈을 딴 신키치는 게이샤 자매를 방으로 불러들인다. 자매를 돕다가 긴조파에게 쫓기게 되자 넷은 모두 오우메의 집으로 피신한다. 남매로 밝혀진 게이샤들은 남동생 오세이가 여장까지 한 채 가족을 학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십 년 동안 춤과 음악을 연습했다고 토로한다. 이들을 돕게 된 자토이치는 긴조가 고용한 떠돌이 무사 하토리(타다노부 아사노)와 대결을 벌여야 한다.

긴조파와의 대결이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진행된다면, 신키치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갖가지 유머스러운 행동과 언사로 웃음을 선사한다. 긴조파에게 들키지 않게 해준다면서 자토이치 얼굴에 요상한 눈을 그리고, 오세이가 남자인데도 화장을 하니까 예쁘다며 자신도 화장을 한다든지, 도박을 잘하기 위해 자토이치 처럼 맹인 흉내를 내는 등 계속해서 어수룩하면서도 밉지 않은 행동으로 폭소를 터트리게 만든다.

이런 코믹한 장면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의 인물들이 신키치나 자토이치의 얼굴을 보고 이런 저런 반응을 해서 관객을 궁금하게 한 다음에서야 그들의 재미있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한 박자 느리게 관객에게 다가오는 웃음은 영화 전반에 걸친 탭 음악의 리듬과도 연결되어 있다. 액션과 코미디, 폭력과 웃음,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편집에 의해 펼쳐지고, 순간적이며 강렬한 칼의 번개같은 움직임은 한 장면 느린 웃음과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화면의 편집에 담긴 리듬 외에도 음악과 소리를 통한 리듬이 영화를 즐겁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의 신명나는 탭댄스 외에도 밭에서 일하고 있는 세 명의 농부는 농기구를 사용해 스윙을 연주하듯 박자를 만들어내고, 오우메의 집이 불에 타자 새로 집을 짓는 일꾼들도 망치 같은 도구로 박자를 맞추며 일한다. 자토이치의 외모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듯, 전통적 배경이라는 외피 속에서 현대적 맥박이 뛰고 있는 셈이다.



정의와 징벌의 이야기 그러나 탈정치적인 자토이치

극대화된 폭력(hyperviolence)이 난무하지만 무표정하거나 아이러니하게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타노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자토이치도 자신이 순식간에 수십명의 신체를 절단내야 하는데 어떤 극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있거나 혹은 정의로움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다. 비록 정의와 징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눈까지 감고 있는 무표정한 자토이치의 얼굴에서 슬픔, 욕망, 야망과 같은 인간의 감정은 발견되지 않는다.

긴조파가 고용한 하토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그와 대조된다. 아무런 개인사가 드러나지 않는 자토이치와는 다르게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사연이 있고, 아내는 중병에 걸렸지만 약 지을 돈도 없다. 그는 청부살인을 할 때 감정이 배제된 채 차갑게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아도 곧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그 행동에 대한 도덕적 감정을 드러낸다.

가끔 웃음과 미소를 유발시키는 행동을 하지만 거의 묵묵히 정지된 표정의 자토이치는 사명감과 의리에 불타는 사무라이와 애초에 거리를 두고 있다. 과거 사무라이가 봉건영주와 천황에게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충성했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 현대판 맹인 사무라이는 정치적인 현실에서 냉혹할만큼 떨어져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스코세스의 폭력이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상기시키면서 스타일화되고, 타란티노의 폭력이 복수라는 프레임 내에서 반복적으로 과잉노출된다면, 기타노의 폭력은 전광석화같은 ‘비트’의 스타일로 불꽃을 뿜는다.

시네마 단신
  
<파이란>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박철수ㆍ허진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신인 류장하 감독의 데뷔작 <꽃피는…>에서 최민식은 강원도 탄광촌 중학교에서 임시 음악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된 트럼펫 연주자로 출연한다. 최민식은 떠나가는 사랑을 잡지 못한 주인공 현우 역을 맡는다. 다음달 말 촬영을 시작해 추석 시즌에 맞춰 개봉할 예정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마리아>가 다음달 5일 개막하는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로써 김기덕 감독은 2002년 <나쁜 남자> 이후 두 번째로 같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하게 됐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


입력시간 : 2004-01-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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