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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프레소] 피아니스트 한지연
재즈를 움켜 쥔 옹골진 新星



피아니스트 한지연(29)이 남자 친구를 사귀지 않은 지가 얼추 3년 됐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 재즈 하는 것도 바쁜데 신경을 딴 데 분산하기 싫은 거죠.” 야누스(수ㆍ금), 천년동안도(화ㆍ목), 올 댓 재즈(토) 등 서울의 내로라 하는 재즈 클럽에서 3년째 무서운 신예로 각광 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한국 재즈의 대모로 통하는 재즈 보컬 박성연이 “ 함께 연주하면 가장 마음이 편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까운 사람이라면 다 안다. 자신이 출연하는 오후 8시 30~11시 30분에 맞춰 클럽을 찾는 사람이 늘어 가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부쩍 각광 받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직계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그의 정통성이 어느 정도는 입증될 터이다.

그가 재즈에 빠져 든 것은 때마침 경제 한파로 재즈의 거품이 걷히고 난 뒤였다. 이후 재즈에 몰두하기까지의 시간은 이 시대 한국 재즈 최일선의 정황으로서 새삼 주목된다. 그의 궤적은 동시에 ‘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해답도 되지 않을까. 클래식에서 출발, 록을 거쳐 재즈에 안착하기까지의 시간을 들여다 보자.

강원도 원주에서도 변두리 출신의 그가 처음 접했던 피아노란 시골 성당 오르간이었다. 동요나 성가를 한 번 듣고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 음감 덕이 컸다. 1995년 강릉 관동대 피아노과에 적을 얹은 그는 재학 당시 알게 된 록의 피는 못 속였다. 2학년부터 록 그룹을 결성, 딥 퍼플이나 레인보우 등 외국 그룹을 따라 하더니 졸업 후에는 보다 깊이 알고자 서울의 재즈 아카데미에 들어 갔다. 그룹 리더로 나설만큼 적극적이었다.

“1999년 ‘100개의 황금 손가락’ 공연에서 만난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의 연주에 깊은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 멜다우에 빠져, ‘라르고’ 등 모을 수 있는 앨범은 다 모아 현재 10장이다. 물론 감상용만은 아니다. “ 철학적이랄까요, 그는 앨범 재킷에 써 둔 글만으로도 저를 매료시키죠. 재즈란 것을 정확히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인터넷상의 도메인(www.bradmehldau.com)까지 다 뒤진 것은 그래서다. 그가 좋아 한다는 릴케의 시, 바흐ㆍ베토벤ㆍ브람스 등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이 다시 각별한 의미를 띠고 다가 오는 통에 클럽 출연을 하면서도 더 열심히 치게 됐다.

2002년 4월은 ‘ 한지연 트리오’가 빛을 본 때다. 허여정(드럼)ㆍ오구일(베이스) 등 선배한테 했던 제안이 먹혀 든 것. “오빠들이 나가던 홍대앞 클럽 에반스에서 잼(즉흥 연주)을 해 보니 서로 생각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왔어요.” 기존의 곡을 계속 편곡해 환골탈태시켜 오며, 현재는 임민수(드럼)ㆍ김호철(베이스) 등으로 이뤄진 제 3기 밴드까지 왔다. 그 해 11월부터는 천년동안도에 나가 유영수 이동기 방병조 등 “선생님들”과 함께 연주하며, 여유로움과 리듬 타는 능력을 체득하고 있다.

모든 음악이 그렇지만 재즈는 특히나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예술이다. 순간 순간 멤버들이 주고 받는 음악적 대화가 하나의 정점에 달했을 때, 거기서 받는 감동의 세계는 선(禪)의 경지다. “ 칼라 블레이의 ‘ Lawns’를 연주했는데, 한 관객이 울더군요. 마침 2003년 육순이 넘은 블레이 할머니가 서울 공연을 왔을 때, 그 곡을 연주했는데, 눈물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래서 한지연은 말한다. “재즈는 잔인한 현실”이라고. “나도, 관객도 속일 수 없어요.”

“버클리 음대로부터는 2000년, 장학금 제공까지 약속 받았는데 한국 학생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죠. 또 메네스 음대 재단의 뉴스쿨로부터는 2003년 입학 허가까지 나왔지만 너무 비싸 포기했어요.” 올 상반기중 뉴욕 주립대 재즈 피아노과 석사 과정에 입학하기로 돼 있다. “학비도 적당하지만, 특히 커리큘럼이 우수한 데죠.”

허튼 모습으로 나타나기 싫다. 세 번에 걸친 음반 제작 제의를 물리친 것은 그녀의 결벽증일까. 미국 가서 재즈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그 동안 집중해 볼 틈이 없었던 국악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고 싶다는 다짐에서는 차세대 한국 재즈의 변신이 감지된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2-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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