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오곡밥과 정월대보름


“내 더위 사가게~”이날 만은 남이 아무리 자기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면 말이다. 정월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의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한다.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을 나타낸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한다.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 술마시기, 오곡밥과 묵은 나물 먹기, 다리 밟기,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을 하며 올 한 해 장수와 부귀를 염원했다.

대보름날 초저녁 홰에 불을 붙여서 달을 먼저 보기 위하여 뒷동산에 올라간다. 보름달이 솟을 때에 횃불을 땅에 꽂고 합장하며 제각기 소원을 빈다. 보름달을 보고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붉으면 가물고, 희면 장마가 있을 징조라고 한다. 달의 사방이 두꺼우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얇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며,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달집태우기’에서 그 타는 모양을 보고도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원래 오곡이라 함은 쌀, 보리, 조, 콩, 기장을 말한다. 그러나 대보름에는 이 오곡만을 고집해서 먹지 않고 밤, 잣, 대추 등을 대신 넣기도 한다. 오곡밥을 지을 때는 차진 곡식이 많이 들어가므로 보통 때보다 밥물을 적게 넣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서는 찌기도 한다. 오곡밥은 탄수화물 섭취에 치우친 백미 밥과는 달리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함유하므로 쌀밥보다 균형잡인 음식으로 평가된다. 이날은 3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해서 집집마다 서로 나누어 먹었다.

나물은 묵은 나물을 쓰는데, 가을에 호박, 가지, 시래기, 곰취, 갓잎, 무청, 버섯, 무 등을 손질해 말려두었다가 대보름이 오면 삶아서 기름에 살짝 볶는다. 이런 음식들은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줄이고, 배설을 증가시키며, 당의 흡수를 느리게 해 당뇨병 환자에게 유용하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므로 현대인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럼을 깨는 풍속도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밤은 허약한 사람과 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 아주 좋다. 전분을 비롯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B 등이 풍부하며, 위와 장의 기능을 강화시키며 입맛을 돋구어 피로와 원기를 회복하게 해준다. 배탈과 설사병에 군밤이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다. 호두는 호흡기 기능을 보강하고 기침, 가래를 삭여주므로 천식 해소에 좋다.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정력증진,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크다. 출산, 유산 후에 체력이 많이 소모돼 있을 때도 좋고 피부에 윤기를 준다. 호두로 변비를 치료하기도 하는데, 간혹 설사를 일으키므로 평소에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

잣은 자양강장약으로 단백질과 지방유가 있어 관절질환, 신경통 환자에게도 좋다. 변비를 없애주며 건조한 호흡기의 윤활제로서 기흉, 천식에도 사용한다. 은행은 진해제로 호흡기 기능을 도와주고 기침과 담을 다스린다. 소변이 잦거나 조루증이 있을 때 구어서 먹기도 한다. 단, 날것은 독성이 있으며 구운 것이라도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풍속과 전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정월대보름의 전통처럼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풍속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들과 함께 1년 중 가장 큰 달을 바라보며 서로의 건강과 사랑을 기원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럼도 깨고, 오곡밥과 나물반찬을 먹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어떨까?

입력시간 : 2004-02-06 14:0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