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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라스트 댄스
스텝 속에 스민 삶의 굴곡들
귄터 그라스 지음/이수은 옮김/민음사 펴냄


“잘 길들여진 독일 문단에 나타난 야생의 괴물.” 독일 시인 엔첸스베르거가 이렇게 함축한 이는 다름 아닌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다.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은 채 평생을 작업하고, 싸우고 사랑해 온 그라스의 열정에 대한 최상급의 평가다.

이 책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화가이자 조각가이기도 한 그라스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묶어 펴낸 자전적 시집이다. 성(性), 전쟁, 죽음 등에 관한 36편의 시와 32점의 그림에서 그라스는 춤꾼으로, 연인으로, 아버지로 그리고 열렬한 평화주의자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라스는 원스텝 탱고 폭스트롯 왈츠 등의 춤을 통해 독일과 세계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온 자신의 생애사를 그리고, 성(性)적 사랑을 통해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 충동)를 이야기한다. 그라스의 그림 속의 남녀들은 거침없이, 주저하지 않고 춤을 춘다. 잽싸게 또는 질질 끌며 스텝을 밟고, 대담하게 몸을 구부리면서 박자를 따라간다.

그라스가 쓰는 언어들은 매우 단순하다. 그 언어 속에 살아있는 리듬은 강렬하기 그지없다. 리듬은 마치 음악과 같고, 듣는 이의 귓속을 맴돈다. 그라스는 의식적으로 단순하고 짧은 어휘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언어들을 다시 단순하고 명료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긴밀하게 조직했다. 그 결과 시들은 악기를 켜는 듯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춤추는 남녀의 아름다운 동작과 리듬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라스가 선택한 시어들은 끈적끈적한 에로티시즘을 전달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시가 단지 성적 쾌락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라스트 댄스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바와 같이, 단지 나이 든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즉 라스트를 노래하고 있는 것 만도 아니다. 타나토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으로 삶에의 의욕을 분출한다.

그라스에게 춤은 삶에 대한 은유가 된다. 그라스가 열정적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춤꾼이라는 것은, 특히 탱고에서 더욱 그러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바로 그 춤으로 그라스는 자신의 생의 기복, 그 절정과 절망을, 그 예기치 못한 삶의 굽이를 표출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4-02-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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