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전통에 바치는 경의로 가득

[재즈 프레소] 정제美의 화신 밥 제임스 피아노 트리오
재즈의 전통에 바치는 경의로 가득

재즈 피아노 트리오란 재즈 캄보에서의 가장 기본적 편성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정제된 양식이다. 피아노-베이스-드럼이라는 세 악기만가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빚어 올리는 모습은 클래식의 피아노 3중주와 버금가는 정제된 표현력을 요구한다. 일찍이 빌 에버스나 오스카 피터슨 등 거장들이 펼쳐 보였던 순수의 양식 아니던가. 그들은 거기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주제곡들을 거듭 나게도 했고,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에 버금 가는 음악적 혁명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순수한 재즈 피아노 트리오는 점점 찾아 보기 어렵게 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다양한 어법을 극한적으로 추구하는 이 포스트모던 재즈에서 어쿠스틱 피아노 트리오의 표현 영역, 또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가 가장 클 듯 싶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어쿠스틱 재즈 피아노의 가능성을 극한적으로 추구하는 브래드 멜다우가 각광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 심장한 대목이다.

최근 CNL 뮤직에서 내 놓은 두 장의 음반은 이 시대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 주고 있다. 두 장이 음악적으로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어쿠스틱 재즈의 다양성을 체감시켜 주고 있다. 미국의 인기 재즈 뮤지션 밥 제임스, 오래 전 미국을 떠나 자신의 재즈 어법을 탐색하고 있는 듀크 조던 등 60줄을 훌쩍 넘긴 두 노장이 그 주인공이다.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제임스부터 먼저.

밥 제임스라 하면 국내의 적잖은 사람들은 1980년대의 인기 TV 드라마 ‘택시’의 테마 뮤직 작곡자, 그렇지 않으면 스카를라티 등 클래식 작곡가들의 피아노 소나타를 신시사이저로 편곡ㆍ연주한 주인공으로 알고 있기 십상이다. 그의 인기란 것도 대부분이 그 같은 대중성에 기인한 것이 사실이다. 그야말로 퓨전 재즈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한 35번째 앨범 ‘Take It From The Top’은 이전의 그를 알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뜻밖이다.

밥 제임스 트리오라고 이름 붙여진 자신의 그룹을 이끌고 만들어 낸 이 앨범에는 위대한 재즈의 전통에 바치는 경의가 가득하다. 첫 곡 ‘Billy Boy’는 레드 갤런드에게 바치는 작품이며, 이어 펼쳐지는 ‘Straighten Up And Fly Right’는 왕년의 명가수 냇 킹 콜의 작품이다. 또 제목만큼이나 서정적인 ‘Tenderly’는 그 같은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던 오스카 피터슨에게 바치는 곡으며, ‘Nardis’는 자신의 1962년 데뷔 앨범에서 펼쳐 보였던 과격한 해석을 다시 한 번 재현한다. 이처럼 고도의 테크닉을 강조하던 그는 ‘Django’에 이르러서는 극도로 단순하고 절제된 해석을 가해 작곡자 존 루이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듯 하다.

재즈를 테마로 한 저 같은 선곡에서 조금 비껴난 작품이 ‘Downtown’이다. 적잖은 사람들은 그 선율을 듣는 순간, 50~60년대의 인기 가수 패튤라 클락의 히트곡을 얼른 떠올리리라. 그러나 제임스에게서 이 곡은 클락이 아니라, 글렌 굴드라는 클래식의 귀재와 연결시켜 주는 통로이다. 바흐의 작품을 파격적으로 해석해 충격을 던졌던 굴드가 무척 좋아 했던 유행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클락의 노래들이었다는 것. 그 관심이 어찌나 뜨거웠던 지, ‘페튤라 클락 탐구’라는 논문까지 썼을 정도다. 이렇게 훗날 밥 제임스라는 괴짜 굴드에 대한 존경을 음악적으로 표시하고 싶었는데, 그 연결 고리는 굴드가 좋아 했던 팝 송이었나니. 좀 꼬여 들긴 하지만, 예술적으로 타인에게 오마쥬(경의)를 표한다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고향 미국을 떠 북유럽에서 살아 온 지 20여년이 넘은 듀크 조던(사진)의 새 앨범 ‘Beauty Of Scandinavia’은 낭만주의란, 잘 정제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Dear Old Stockholm’ 등 유럽적 색채가 강한 곡서부터, ‘Misty Thursday’ 등 자신의 창작곡에 이르기까지 11편의 수록곡은 21세기에 유효한 낭만주의적 정신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그의 앨범이 정식 라이센스를 받아 국내 발매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2-18 15:48


장병욱 차장 aje@hj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