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저기 오는데 여긴 아직도 눈꽃세상청량리역 출발, 문경 승부 추전역 들르는 '환상 여정'

[주말이 즐겁다] 환상선 눈꽃열차
봄이 저기 오는데 여긴 아직도 눈꽃세상
청량리역 출발, 문경 승부 추전역 들르는 '환상 여정'


겨울 여행의 참맛은 아무래도 눈꽃 감상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깊은 산속으로 달려가 눈꽃을 보고싶어도 빙판이 되었을지도 모를 도로 상황 때문에 선뜻 길 나서기가 걱정된다. 이럴 때는 열차를 타보자. 승용차로는 접근 조차 어려운 눈 덮인 산골을 힘차게 달리는 열차를 보면 왠지 경외감조차 드는 건 인지상정이리라.

△ 7시 45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눈꽃열차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해 경북 문경역과 승부역, 그리고 강원도 추전역을 들른 뒤 청량리역으로 당일로 되돌아오는 ‘환상선 눈꽃열차’는 철도청이 내놓은 겨울상품 중 최고의 히트작. 눈꽃열차는 아침 7시 45분, 청량리역을 출발한다. 열차가 기적을 힘차게 울리며 서서히 역을 벗어나면 객차를 가득 메운 승객들이 술렁거린다. 회색도시 서울을 벗어난 열차는 중앙선과 나란히 흐르는 남한강을 끼고 달린다. 차창 밖으론 물안개 자욱히 피어오르는 강물이 스친다.

양평을 지난 뒤에는 남한강과 헤어져 눈 덮인 들판과 산을 뚫고 달린다. 원주를 벗어나서는 치악산 남쪽에 뚫린 또아리굴(금대2터널)을 통과한 뒤 단양역에서 잠시 멈춘다. 겨울 정취 물씬 풍기는 단양공원을 거닐고 다시 열차에 오르면 힘차게 기적을 울리며 출발한 열차는 소백산 자락에 뚫린 또 다른 또아리굴(대강터널)을 지난 뒤 죽령터널로 백두대간을 통과해 영주 땅으로 들어선다. 열차가 오르기 힘든 가파른 곳을 뱀이 똬리 틀 듯 한바퀴 돌려 뚫은 또아리굴은 루프식 터널이라고 하는데, 여행객의 눈으로 보면 터널로 들어가기 전후의 경치가 똑같은 게 재미있다.

영주에서 중앙선을 벗어나 영동선으로 들어선 열차는 기수를 돌려 북진한다. 멀리 서쪽으론 흰눈으로 뒤덮인 백두대간의 소백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꽁꽁 얼어붙은 낙동강을 거슬러오르던 열차가 숨을 고르며 멈추는 곳은 경북 봉화땅의 승부역.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 마당도 세 평’이라고 하는 승부마을은 1998년에 환상선 순환열차가 운행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열차가 아니면 오기 어렵다는 낙동강 상류의 깊은 산골마을이다.

이 마을엔 이승만 전대통령의 친필로 쓰여진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서있다. 영암선은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 철암간(87km)의 철도를 이르던 이름이다. 1955년 태백의 석탄 등을 수송하기 위해 순수한 우리 기술로 험준한 산줄기를 뚫어 33개의 터널을 만들고 험한 강에 55개의 다리를 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승부마을 앞의 물줄기는 낙동강이라 하지만 최상류인 탓에 강의 폭은 그리 너르지 않다. 강에 걸린 나무다리를 지나 건너편 언덕으로 간다.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얼음기둥도 만져보고, 영남 북부의 산골 민가도 살펴본 뒤 다시 강으로 내려선다.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을 마구 뛰어다니고, 어른들도 눈싸움을 하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다.

마을 주민들이 환상선 눈꽃열차 손님들을 대상으로 간이역 옆에 마련한 언덕의 조촐한 식당에서 육개장으로 허기를 달랜다. 산채비빔밥과 청국장도 인기 있는 메뉴. 간단히 반주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것 역시 열차 여행의 장점이 아닌가. 식당 한쪽의 간이장터엔 깊은 산골에서 채취한 각종 산나물과 약초 따위가 도시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는 사이 어느덧 떠나야 할 시간이다.

승부역을 떠난 열차가 낙동강 상류를 거슬러 오르며 태백의 상징인 구문소를 스쳐 철암으로 들어선다. 산처럼 쌓인 검은 연탄과 그 주변을 덮은 하얀 눈이 빚은 흑백의 절묘한 조화가 펼쳐진다. 태백역을 지난 열차는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하며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듯하더니 추전역으로 들어선다.

△ 추전역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열차역

■ 눈꽃열차 정보
환상선 눈꽃열차는 07:45에 청량리역을 출발해 단양역(10:50~11:30)에 잠시 정차한 후 승부역(13:25~14:45)과 추전역(15:49~16:15)에 들른 뒤 20:57에 청량리역으로 되돌아온다. 올해는 2월 29일(일)까지 운행. 요금은 청량리역 출발(어른 1인) 기준으로 월ㆍ금요일은 30,300원, 화ㆍ수ㆍ목요일은 27,100원, 토ㆍ일요일과 공휴일은 31,900원. 주말 표는 늦어도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璲?있다. 자세한 정보는 철도청 홈페이지(www.korail.go.kr)를 참조.

해발 855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열차역인 추전역은 한여름에도 밤이면 난로를 피워야 할 정도로 평균 기온이 낮다. 역사 한쪽의 눈밭을 거닐며 강원도 오지의 적막강산을 감상한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역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전리품’인 추전역 표지석. 기찻길 옆 펑퍼짐한 언덕은 자연 눈썰매장이다. 떠날 시간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사람들은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인 강원도 찰옥수수를 사들고 열차에 올라탄다.

추전역을 벗어난 열차는 이내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정암터널(4.5km)로 진입한다. 이 터널은 난공사로 여겨지던 태백선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공사구간으로 꼽혔다. 방송에선 열차가 굴을 벗어나는 데 8분이 걸린다는 안내설명이 곁들여진다. 정암터널을 벗어난 열차가 탄광의 도시 고한, 사북을 지날 무렵 잿빛 하늘에서 굵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열차에서 마음 편히 감상하는 새하얀 눈발이다.

글 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4-02-19 13:57


글 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